이상돈
 
 
 
 
 
  빙 웨스트, 잘못된 전쟁 (2011년)
2011-08-09 11:13 1,881 이상돈


빙 웨스트, 잘못된 전쟁 (2011년, 랜덤 하우스, 307쪽, 28달러)

Bing West, The Wrong War (2011, Random House, 307 pages, $28.00)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며 이라크 전쟁을 종군(從軍)한 기록으로 베스트 셀러 책을 낸 빙 웨스트가 이번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책을 냈다. 웨스트는 아프가니스탄 오지(奧地)의 미군 기지를 방문해서 장병들과 생사를 같이 한 후에 책을 펴냈다. 책의 첫 페이지에서 웨스트는 자신이 머무는 동안에 그곳에서 전사한 미군 장병들을 기리고 있다. 책은 아프가니스탄의 북부 코난 지방과 남부 헬만드 지방에서 펼치는 미군의 작전과 그 한계를 다룬 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방향을 전환할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코난 지방

카불의 동북쪽에 위치한 코난 지방은 험준한 산맥과 그 사이의 밸리로 이루어져 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미군은 특수부대와 해병대 병력을 보내서 이 지역으로 피신한 테러 집단을 추적했다. 2005년 4월, 이곳의 고지를 지키던 미 해군 특공부대 실(SEAL) 대원 4명이 반군(叛軍)의 포위공격을 받자 19명의 특수부대원을 태운 헬기가 긴급하게 출동했는데, 이 헬기가 반군에 의해 격추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때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하룻동안 가장 많은 미군이 희생된 이 사건은 큰 충격을 주었다. 미 해병 1개 대대를 파견해서 반군을 소탕하려 했지만 험준한 지형 때문에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2006년 4월에 육군 산악사단 소속 부대가 임무를 교대했다. 미군의 전략은 소규모 전진기지(outpost)를 두고 경계하는 것이었으나 주민들의 불협조와 지형적 어려움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 2008년 7월에 탈레반은 미군 전진기지를 일제 공격했고, 미군은 큰 피해를 입었다.

2008년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테러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고 공약했다. 대통령에 취임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파견 병력을 50,000명에서 63,000명으로 증강시켰다. 코난 지역에는 육군 32연대 1대대가 다시 배치됐다. 미군은 탈레반과 파키스탄과의 연결을 끊기 위해 산맥 줄기를 따라 40Km 거리에 네 개의 전진기지를 건설했다. 전진기지에 배치된 소대 병력은 광활한 지역을 순찰했고, 주민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다. 주민들은 탈레반 동조자들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미군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미군은 반군을 포로로 잡아도 적절하게 관리할 수가 없었다. 반군 포로를 넘겨 받은 아프간 경찰은 재판도 없이 이들을 그냥 석방하곤 했다. 전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걱정하는 미군 고위 지휘관들은 현지 지휘관들에게 작전을 자제하라고 지시했고, 자연히 현지 중대장과 소대장의 사기는 소침할 수 밖에 없었다.

9-11 테러를 보고 육군에 입대해서 이라크에서 참전했던 에릭 린스트롬 하사는 제대 후에 애리조나 주 경찰이 되었지만 보병의 동지애를 잊지 못한 그는 다시 입대해서 이 지역의 바지 마탈이라고 부르는 지점에 배속되었는데, 탈레반의 기습공격으로 전사했다. 저자는 린스트롬 하사가 전사한 지점은 지각 있는 지휘관이면 보병을 배치하지 않는 지형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먼 지역을 지키는 일이 전쟁의 목표와 무슨 관련이 있는가 묻고 있다. 미군은 결국 바지 마탈에서 철수했고, 이어서 미군이 키팅 기지라고 명명했던 곳도 탈레반의 집중공격을 받고 많은 희생자를 낸 후에 철수하고 말았다. 2010년 1월, 32연대 병력은 이곳에서 철수하고 미 본토로 돌아왔다. 10년 동안 미군은 멀고 고립된 이 지역에서 탈레반 반군과 싸우면서 현지민을 회유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한 것이다.

헬만드 지방

헬만드 지방은 아프가니스탄 남서부인데, 대부분 사막이고 가운데를 흐르는  헬만드 강 주변만 농사를 할 수 있는 지역이다. 헬만드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아편 생산지이기도 하다. 2006년에 영국군 8,000명이 헬만드에 진주했는데, 영국군은 자신들이 평화유지군인 것으로 생각하고 소대 단위의 전진기지를 만들어서 주민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했다. 헬기 지원도 없고 무장이 빈약한 영국군 소대  기지는 하나 둘씩 탈레반 반군에 의해 포위되었고, 영국군 지휘부는 자신들의 능력으론 헬만드를 지킬 수 없다고 결론 내리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결국 미 해병대 4개 대대 병력을 이곳에 파견해야만 했다.

헬만드 같이 위험한 지역에 배치된 소규모 일선 지휘관들은 순찰을 강화하면서도 부하들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적은 그대로 남아 있기 마련이고, 적이 그대로 있는 한 전쟁을 빨리 끝내주기 원하는 본국 정부의 희망을 충족하기는 불가능했다. 이라크 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도 미군은 뚜렷한 목표와 비전이 없었고, 지휘관이 자주 바뀌었다.

2005년까지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지낸 데이비드 바르노 중장은 대(對)반군 작전(counterinsurgency)을 강조했지만 이를 수행할 충분한 병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 뒤이은 칼 아이켄버리 중장은 “카르자이 정부를 개혁하지 않는 한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런 조치도 이루어 지지 않았다. 2006년 11월에 국방장관이 된 로버트 게이츠는 댄 맥네일 대장을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맥네일 대장은 탈레반 소탕을 내걸고 공세를 폈지만 탈레반 세력은 오히려 강해졌다. 2008년 여름에 맥네일은 경질됐고 후임에 데이비드 맥키어난 대장이 임명됐다. 맥키어난 대장은 교전 수칙을 보다 엄격하게 하고 대민협력을 강조했고, 헬만드 지방을 장악하기 위해 해병여단을 증파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게이츠 장관은 그를 해임하고 특수부대 출신인 맥크리스탈 대장을 임명했다.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맡았던 지휘관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이력에 오점을 남긴 채 그만 두고 말았는데,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이 전쟁 정책을 너무 자주 바꾼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은 방대한 국토에 3,100만 명 인구가 4개의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자부심이 강한 많은 부족으로 구성된 나라이다.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의 병력은 이런 방대한 나라를 통제하기에 턱없이 부족할 뿐이다. 지난 10년 동안 탈레반 반군들은 정교한 은익 폭발물을 개발하고 미군의 전략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미군은 별다른 기술적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병력을 보호하기 위해 장갑을 두텁게 한 무장차량은 기동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야기했다. 작전상황의 디지털화로 인해 국방부와 합참의 지휘관과 참모들은 현지 보병과 호흡을 같이 하지 못하는 문제점을 야기했다.

2009년 9월, 맥크리스탈 대장은 국방부에 보낸 긴급 메모를 통해 병력 40,000명을 증파해 줄 것으로 요청했다. 그는 기존 병력으로는 반군을 패퇴시킬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략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아프가니스탄 주재 미국 대사인 칼 아이켄베리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보낸 서신에서 카르자이 대통령이 무능하고 파키스탄이 미국의 전쟁 노력에 협력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로 병력 증파에 반대하는 서신을 보냈다. 그 해 연말에 오바마는 병력 30,000명을 증파하겠다고 발표했다.

헬만드 지역에서 미군이 탈레반과 힘든 전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카불에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은 미군 작전으로 인해 민간인 피해가 크다고 공식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그러자 맥크리스탈 장군은 현지 지휘관에게 부대원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이 아닌 한 민간인이 있는 시설에 대해 무력사용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 아프간 민간인 사상자 중 70%는 탈레반에 의한 것이지만 아프간 주민들은 탈레반에 대해선 그런 불만을 표현하지 않는다. 한 조사는 아프간 주민들은 미군이 없었다면 이런 전쟁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말하자면, 미군이 존재한다는 것이 전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은 매우 빈곤하지만 그럼에도 8명 중 한명은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 탈레반들은 그들이 이동할 때는 휴대전화 서비스를 중단시켜서 자신들을 신고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법을 쓰고 있다.

위험한 지역을 거의 방문하지 않던 카르자이 대통령이 2010년 3월에 헬만드의 마르자 시(市)를 방문해서 “보다 정직한 정부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썰렁했는데, 카르자이가 임명한 헬만드 지사는 공문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결국 그가 문자를 해득하지 못하는 사람임이 밝혀져서 파면되고 말았다. 문제는 어떻게 해서 이런 사람을 카르자이가 지사로 임명했나 하는 것이다. 아프간 주재 미국 대사는 물론이고 오바마에 의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담당 외교사절로 임명된 홀브루크 대사도 카르자이를 싫어해서 양국의 협력관계는 이미 금이 가버린 상태였다. 2010년 6월에 ‘롤링스톤’지가 맥크리스탈 장군이 비(非)보도를 전제로 한 솔직한 논평을 무단 게재해서 파문이 일었고, 맥크리스탈 장군은 사임했다. 오바마는 중부군 사령관을 지내던 데이비드 페트레어스 대장을 아프가니스탄 주둔군 사령관을 임명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 문제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특수부대를 중심으로 한 미군 병력은 탈레반 반군을 공격적으로 소탕하고 있지만 탈레반과의 전쟁은 이미 소모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카르자이를 직접 정중하게 대우했기 때문에 카르자이는 이제 미국 대통령이 아닌 다른 관리와는 접촉하려 하지 않는다.  아프간 군대와 경찰은 돈을 주어야 움직이고 도무지 애국심이 없다. 헬만드의 감시르 지역은 미군이 탈레반을 격퇴해서 치안을 확보한 지역인데, 무자헤딘 출신의 하지 잔이란 전설적인 지도자가 통치를 해 오고 있었다. 미 특수부대가 탈레반을 소탕하는 작전을 했는데, 그 지역의 물라(이슬람 지도자)들이 칼이 꽂힌 코란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자 군중들이 지방정부 건물에 난입하는 일이 벌어졌다. 하지 잔이 이 사태를 빨리 수습하지 못하자 카르자이는 그를 파면하고 카불에 살고 있는 장성의 22살 된 아들을 후임으로 임명했다. 현지 미군은 카르자이 정부의 이런 난맥상을 보고 좌절했다. 감시르는 미군이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군이 철수하면 과연 이 지역이 탈레반으로부터 계속 안전할지 의문이며, 그렇다고 카불의 중앙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때까지 미군이 주둔하는 것은 기약이 없는 일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나오는 방법

9-11 테러 후에 미군은 알케이다와 탈레반을 섬멸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했다. 하지만 미군은 이들이 파키스탄으로 숨어 들자 추격을 중지했다. 그런 후 미군은 이들을 섬멸하기 보다는 아프가니스탄을 민주적 국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미국은 파슈튼 부족 출신의 카르자이를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대통령이 지사 등 지방정부 책임자를 임명하도록 헌법을 개정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카르자이는 부족 친인척과 부패한 패거리를 정부 자리를 나누어 주었다. 카르자이 정부는 부패할 뿐더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집단이 되고 말았다. 카르자이는 아프간 전쟁은 미군과 탈레반 사이의 문제라고 보고 이권 챙기기와 권력 유지에 몰두하고 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현지 지휘관들이 사실상 지방정부 책임자가 되어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중요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돈과 물자를 주어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주민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거대한 평화봉사단의 모습을 띄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승리를 목표로 삼는  정신을 잊고 단순히 민간인을 보호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서, 미군은 아프간 국가 재건 과업에서 손을 떼고, 이 문제는 국무부에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미국이 잘못된 전략을 갖고 잘못된 전쟁을 하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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