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크리스 헤지스, 진보계층은 죽었다 (2010년)
2011-08-24 17:46 2,250 이상돈


크리스 헤지스, 진보계층은 죽었다 (2010년, 네이션 북스, 248쪽, 24.95 달러)

Chris Hedges, Death of the Liberal Class
(2010, Nation Books, 248 pages, $24.95)

책 제목만 보면 진보의 몰락을 다룬 보수 성향의 책 같으나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책은 이제 진보 마저 인간의 삶과 정의를 잊어 버리고 있다면서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다.

책의 저자 크리스 헤지는 1956년생으로 하버드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크리스챤 모니터 기자를 거쳐 1990년부터 2005년까지 뉴욕타임스 특파원으로 중동과 발칸의 분쟁과 전쟁을 취재했다. 2003년 5월, 그는 일리노이주 록포드 대학 졸업식에서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연설을 해서 물의를 일으켰고,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하여 경고 조치를 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그는 신문사를 사직하고 미국 진보 지식인의 진지인 네이션 연구소로 소속을 옮기고 독자적으로 기고를 해 오고 있다. 그는 여러 권의 책을 썼는데, 2007년에 나온 ‘아메리칸 파시스트’는 미국의 기독교 우파를 비판한 것이고, 2008년에 낸 ‘부수적 피해’는 이라크 민간인의 희생에 대한 것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0년에 펴낸 이 책에서 저자는 민주당 등 미국의 진보진영도 이제는 체제에 순응하여 부(不)정의에 동조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민주체제 하에서 진보 계층은 안전판으로 기능한다”고 화두를 연다. 진보 계층은 점진적인 개혁을 가능하게 하고, 변화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국가(democratic state)에 대한 기업국가(corporate state)의 공격으로 인해 진보 계층도 함락되고 말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전통적으로 진보 진영이던 미디어, 교회, 대학, 민주당, 예술계, 그리고 노조는 기업의 돈으로 무너졌다는 것이다. 언론은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는 홍보 역할을 자원하고 나셨고, 대학은 스스로를 취업학교로 전락시켰으며, 노조는 자본가들과 적당하게 타협하는 협상가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NAFTA를 통과시켜서 근로계층을 배반했고 복지를 축소했으며, 1999년에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사이에 있던 장벽을 헐어서 은행 시스템을 투기장으로 만들었다. 대선자금 6억 달러를 기업으로부터 모금한 오바마는 기업 이익을 위해 미국의 국고를 탕진했지만 그럼에도 어려움에 처한 근로계층은 외면했다.                       

진보 계층은 레이건 행정부 이래 진행되어 온 기업국가화 현상에 저항하지 않고 야합해 버렸으며, 진보지식인들은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 correctness) 운동’ 같은 부티크 운동에 안주해 버렸다. 진보 계층은 파워 엘리트와 야합해서 진정한 양심적 세력을 침묵시켜 버렸다. 조지 W. 부시와 딕 체니가 저지른 전쟁에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들도 그대로 따라가고 말았는데, 이들의 자식들도 대개는 군에 복무하지 않았다.

진보 정치인들의 이런 모습은 결코 최근의 일이 아니다. 진보층의 지지를 받고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이 독일에 대한 전쟁을 선포하자 윌리엄 월링, 업튼 싱클레어 등 당시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들이 전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윌슨은 전쟁 반대자들은 침묵시키기 위해 방첩법을 제정했고, 이에 유진 데브스 등 수천 명이 방첩법 위반으로 체포되고 기소됐다. 

1960년대에 들어 진보계층 다시 한번 큰 변화를 겪게 됐다.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과격한 운동에 대해 정작 자식들을 베트남에 많이 보낸 근로층은 반전운동을 하는 중산층을 의심으로 눈초리로 보았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66년 동안 고등학교를 졸업한 근로계층 젊은이들의 20-30%가 베트남에 갔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베트남 전쟁에 참가한 장병은 전체 참전용사의 2%가 안되었다. 조지 미니가 이끄는 전미 노조(AFL-CIO)는 베트남 전쟁 반대를 주장하는 젊은이들을  백안시했다. 이 때 생겨난 뉴레프트 단체들은 근로계층을 적대시하고 보다 폭력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으니, 블랙 팬더와 웨더 언더그라운드가 그런 경우였다. 뉴레프트는 신기루로 끝나고 말았으나 조지 맥거번과 유진 매카시는 새로운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1972년 선거에서 민주당의 기득권층은 오히려 닉슨을 지지했고, 정당 규칙을 개정해서 다시는 맥거번 같은 인물이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하게 했다.

오늘날 미국 대학에서 정년보장을 받은 교수들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어가서 이제 교수들도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하지 않고 있다. 언론인들은 이미 언론기업에 예속되어서 고용주의 관심을 거스르지 못하게 되었다. 뉴욕타임스 기자로 크메르 루즈의 대학살을 취재해서 영화 ‘킬링 필드’를 만들게 한 시드니 챈버그, 유태인 로비의 역사왜곡을 고발한 노만 핑클스타인은 언론계와 학계에서 추방되고 말았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해서 징병서류를 소각한 베리간 형제 신부들도 교계에서 소외되었다.

대기업은 진보 계층을 완전히 장악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페덱스 대표인 프레데릭 스미스를 들었는데, 노조가 없는 기업인 페덱스는 근로자를 소모품처럼 다루기도 악명이 높다. 프레데릭 스미스는 그러한 자신의 경영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당과 공화당에 막대한 헌금을 하고 있다. 저자는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의 당선은 환상을 선택한 것이라면서, 오바마는 기업권력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또한 인터넷이 이미지에 근거한 저급한 문화를 전파해서 대중의 판단을 무디게 하고 있으며, 인터넷을 운영하는 몇몇 기업들의 영향력이 과다하게 커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본다. 저자는 기업을 움직이는 극소수 엘리트들이 대중에게 “다른 대안이 없다”고 세뇌시키고 있다면서, 거기에 속지 말고 진정한 자유와 인간성 회복을 위해 ‘반란(rebellion)’을 하자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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