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필립 하워드, 변호사가 없는 세상 (2009년)
2011-12-01 00:44 1,683 관리자


필립 하워드, 변호사가 없는 세상 (2009년, 노튼, 225쪽, 15달러)

Philip K. Howard, Life without Lawyers (2009, Norton, 225 pages, $15.00)

2000년 기준으로 미국의 변호사 숫자는 1970년에 비해 두 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미국 사회엔 변호사가 널려 있고 소송도 대폭 증가했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소송의 지뢰밭(legal minefield)’에서 나날을 살아가고 있다. 많은 미국인에게 미국은 더 이상 ‘자유와 선택의 땅’이 아니라 ‘법률의 질곡(桎梏)’이 되고 말았다. 법규와 소송이 증가함에 따라 사회비용도 증가하고 있다.

지방정부는 혹시 있을 수 있는 사고로 인해 손해배상 소송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서 어린이 놀이터와 비치를 폐쇄하고 있다. 수영장은 성 희롱 책임을 피하기 위해 수영교사에게 실습생의 신체를 접촉하지 못하게 하고 있어서, 수영교습 도중에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증가했다. 제조사들은 혹시 있을 지 모르는 소송에 대비해서 온갖 우스운 경고문을 제품에 부착하고 있다. 레터 오프너에는 “사용시 고글 착용을 권장합니다”는 경고문이, 낚시 미끼에는 “삼키면 위험합니다’라는 경고문이 부착되어 있다. 의사는 의료소송에 대비해서 필요치도 않은 비싼 검사를 하도록 해서 의료비용을 증가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의료보험료가 올라가고 있다.

소송 남용으로 인해 ‘위험을 택하는(risk taking)’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미국의 문화가 위협받고 있다. 극소수 사람에게 알레르기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는 이유로 대다수 사람들이 좋아하는 잣나무 숲을 베어버리거나, 경미한 위험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들여서 오염된 토양을 제거해서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것도 그러한 경우다. 지방정부가 야외 놀이터를 폐쇄하자 어린이들은 밖에 나가서 노는 기회를 상실했고, 이로 인해 체력과 사회성이 떨어지고 비만이 늘고 있다. 개인의 법적 권리를 지나치게 보장함으로써 다수가 피해를 입는 경우도 늘고 있다. 자폐증 아동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을 보통 학교에 보내도록 하고, 학교는 이들을 적절하게 통제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법적 수단이 없기 때문에 정상적인 학생들이 자폐증 학생의 발작으로 수업 손실을 입는 경우도 있다.

2002년 위스콘신 주 밀워키 시에선 마리아 레지오 소속의 자원봉사자가 마리아 상(橡)을 와병중인 신자에 전달하러 차를 몰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내서 82세 노인이 불구가 된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 가족을 대리한 변호사는 돈이 많은 천주교 밀워키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1700 만 달러 배상판결을 얻어 냈다. 천주교 교구는 아무런 해악을 끼치지도 않았음에도 천문학적 배상을 하게 됐으니, 교회는 선의로 하는 일체의 봉사행위를 중단해야 할 지도 모른다. 

2007년에 워싱턴 DC의 한 변호사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자기가 맡긴 바지 한 벌을 잃어 버렸다는 이유로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백만 달러가 넘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그 변호사는 세탁소가 사기 마케팅을 했으며 잃어 버린 바지를 입을 권리를 1,200일간 박탈당했고, 멀리 있는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위해 매주 렌탈 카를 빌려야 했다는 이유를 댔다. 2년 간의 소송 끝에 법원은 원고의 제소가 실체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했지만 변호사 경비를 10만 달러나 써야 했던 세탁소 주인은 가게를 닫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저자는 이 같은 소송남용을 억제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대책을 세우자고 제언한다. 첫째, 법관은 ‘합리성(reasonableness)’이란 한계를 법률 문제로서 다시 확립해야 하고, 둘째, 법관은 재판에서 사건을 보다 적극적으로 관장해야 하며, 셋째, 특별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에선 특별법정을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송남용은 많은 기관으로 하여금 그 조직을 관료적이고 방어적으로 운영하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로 이 기관들은 원래의 목적 달성을 거의 포기하다시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미국의 공립학교를 들 수 있다. 오늘날 미국 공립학교에선 의욕적인 교사를 찾아 보기 어렵다. 교사들은 창의성을 발휘해서 학생들을 보다 잘 가르칠 자유와 권리를 이미 상실했고,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해서 안 된다는 식의 관료적 규칙에 얽매여 있다. 열성을 가진 교사들은 좌절해서 교직을 떠나고 있으며, 면학분위기를 해치는 소수 학생들을 통제하지 못하는 교실에서 좋은 학생들이 희생되고 있다. 학교는 교원노조, 직원노조, 교장 협의체, 교육위원회 등 집단이기주의를 추구하는 단체에 의해 지배되어 가고 있다.

오늘날 미국의 공무원 조직 전체가 관료주의와 무능으로 병들어 있다. 노조가 너무 강해서 가장 무능한 공무원마저 파면하는 것마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오히려 바보가 되고 있다. 폭설이 오면 폭설을 치워야 할 공무원들이 폭설 때문에 출근할 수 없다면서 결근을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 미국 공무원 사회이다. 콜럼비아 하이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과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 사건도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음은 주변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학생들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던 것도 팽배한 관료주의와 과도한 적법절차 때문이었다.

관료주의와 무책임의 극치는 연방정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연방정부는 1억 단어가 넘는 법률과 규칙에 의해서 크루즈 콘트롤 모드로 운항하고 있다. 연방정부 부채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크루즈 콘트롤 모드를 바꿀 방법이 없다. 워싱턴 정가에서 ‘성공’ 여부는 국민생활을 실질적으로 개선했는가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을 정치적 함정에 빠뜨렸냐 하는 것이 오늘날의 ‘성공 잣대’인 것이다. 워싱턴은 로비 집단과 노조 등 조직된 이익단체에 의해 움직여 지고 있고, 이런 단체와 관련을 맺게 되면 거기서 빠져 나오기란 조직범죄에서 이탈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미국은 새 대륙에 자리잡은 사람들이 세운 공동체로 이루어진 나라였다. 미국은 훌륭한 리더가 세우고 이끌어 온 나라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리더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교사는 자기 수업을 이끌어갈 수 있는 지도력을 상실했고, 법관은 터무니없는 소송을 기각해 버릴 수 있는 권한을 상실했으며, 정치인은 자신을 지지하는 조직과 단체의 대리인 역할이나 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 미국은 공동체 정신과 창의성과 리더를 잃어 버린 사회가 돼 버렸다. 미국이 스스로 자유롭게 책임을 지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누적된 법률과 관료주의를 씻어 버리는 ‘법률 혁명’을 이룩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c) 이상돈
* 축약된 형태로 주간경향 2011년 12월 5일자에 게제되었습니다.


마크 스타인, 미국 이후 (2011년) 
필립 하워드, 공동선(共同善)의 붕괴 (200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