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조선일보 2000년 9월 9일)
2008-02-21 00:03 2,112 관리자

<서평>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토머스 프리드먼 지음, 신동욱 옮김 (창해, 2000)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펴낸 이 책은 작년에 출판되자마자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미국에선 이 책을 읽지 않고는 웬만한 대화에 끼기가 어려울 정도다.
우선 제목부터가 특이하다. 도요타 자동차의 최고급 모델과 지중해 주변국가에서 기르는 올리브 나무가 도무지 어떻게 됐단 말인가. 조금 읽다 보면 “아, 그런 이야기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냉전 종식 후 미국 중심으로 판도 변화

세계를 발로 뛴 기자가 쓴 이 책의 강점은 충만한 현장감에 있다. 이 책은 주(註)가 없다. 그래서 더욱 쉽게 읽힌다. 저자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소련 붕괴 후 세계는 미국 중심의 세계화 판도로 짜여가고 있으며, 미국의 시스템은 가장 합리적이고 또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국경이 허물어진 오늘날 어느 나라도 미국식 합리주의로 무장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세계화 시대에 모든 국가와 개인은 매일매일 단거리 경주하듯 해야 한다. 저자는 이를 디지털로 무장한 국제금융, 창의성만이 내일을 약속하는 기업경영 등 풍부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

‘맥도날드’ 있는 나라끼린 전쟁 안 해

저자는 세계화가 평화를 가져온다고 주장하면서 ‘골든 아치’ 이론을 제기한다. ‘골든 아치’는 맥도날드 햄버거점(店)의 상징인 ‘M’를 말하는데 그에 의하면 맥도날드 햄버거점이 들어선 나라들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맥도날드 햄버거를 먹게 될 정도라면 중산층이 넓어진 것이고 또 미국 문물을 받아드린 것이니 이런 나라들끼린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이다. 초판이 나온 후 나토군(軍)이 세르비아를 폭격함에 따라 이 이론은 심각한 도전을 받았다. 세르비아에 맥도날드점이 있었던 것이다. 2000년 판에서 저자는 나토군은 국가가 아니며 세르비아 사태는 내전이고, ‘골든 아치’ 이론은 내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 ‘명답’이 또 화제가 됐다.
저자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오렌지 네 개를 룸 서비스로 부탁했다가 겪은 일화도 재미있다. 처음엔 오렌지 주스를 넉 잔 가져오더니 다음엔 오렌지를 생선회 치듯 해서 갖고 오고, 결국 통 오렌지 네 개를 가져 왔는데 계산서가 무려 22달러였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작은 일화를 통해 렉서스를 만드는 제조업 강국 일본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말하려 했던 것은 아닐까.

IMF 이후 깨닫는 우리 경제 걸림돌

1997년에 불어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는 세계화를 논하는데 있어 좋은 소재가 아닐 수 없다. IMF에 도전했던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에 대해 저자는 매우 비판적이다. 한편 세계화를 수용한 한국에 대한 평가는 우호적이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저자의 식견은 깊지 못해서 이홍구 전(前) 주미대사의 말을 빌려 설명하고 있다. 김영삼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이홍구 씨는 비효율적인 관료 조직과 관치금융이 세계화 시대의 걸림돌임을 경제위기를 통해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가장 세계화 된 대권 주자(走者)’라고 내세웠던 이홍구 씨의 이런 언급은 다소 실망스럽다. 1980년대 말부터 금융개혁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젊은 전문가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부를 움직였던 사람들이 무지하고 부패하고 또 안일했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닥쳐온 것이다.

돌다리 두드리듯 ‘逆(역)세계화’에 대비를

저자는 한국 국민들이 경제위기를 겪은 후 세계화 추세를 받아들여 김대중 후보를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한다. 이것도 물론 정확한 평가는 아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는 ‘DJP 연합’과 ‘이인제 변수’가 결정적이었다. 게다가 우리 경제는 금년 봄부터 또다시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것 역시 세계화가 미진한 탓일까. 
저자는 세계화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세계화 때문에 세계화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그는 인간이 과거부터 누려온 전통과 가치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올리브 나무’인데 이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다지 명쾌하지 못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논리적으로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지도 모른다.   
책 제목으론 ‘토러스와 올리브 나무’가 더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토러스’는 1980년대 초 적자 수렁에 빠진 포드사(社)를 구해낸 포드의 대표적 모델이다.)  굳이 ‘렉서스’를 사용한 것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라는 시선을 피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하튼 이 책을 읽은 미국인들은 많은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인들 보다는 미국식 세계화가 무엇인지를 깨달아야 할 우리가 읽어야 할 것 같다. 저자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간에 말이다.
(조선일보 2000년 9월 9일자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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