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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발렛 외, 위독한 상태 (2004년)
작성일 : 2013-03-30 07:43조회 : 2,132


도널드 발렛 – 제임스 스틸, 위독한 상태 (2004년, 더블데이, 179쪽, 24.95달러)

Donald L. Barlett and James B. Steele, Critical Condition
                          (2004, Doubleday, 179 pages, $24.95)
           
미국의 의료체계는 심각한 정도가 아니라 위독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 2004년에 나온 이 책의 결론이다. 저자들은 의료를 시장경제에 맡겨 놓은 결과로 보험회사와 기업형 병원 그룹이 미국인의 건강을 좌우하고 있고, 이에 따라 많은 미국인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료체계야 말로 미국 정치에 있어 뜨거운 감자인데, 오바마 정부 들어서 개혁안이 의회를 통과했으나 이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뜨겁다. 이 책은 미국의 기존 의료체계가 안고 있는 문제를 잘 보여준다.

미국 의료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같은 의료 서비스에 대해 지불하는 비용이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그룹 의료 보험에 가입한 환자는 수가(酬價)가 낮지만 보험을 들지 않거나 들지 못한 사람은 터무니 없이 높은 수가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노령자와 빈곤자는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라는 연방정부 차원의 의료혜택을 받는다. 그 외의 보통 사람들은 민간의료보험을 들어야 한다. 직원이 많은 직장은 보험회사와 협상을 통해 그룹 보험을 들기 때문에 보험료가 상대적으로 싸다. 반면 자영업자와 자유업 종사자들은 비싼 보험료를 내야 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경제적 이유 등으로 아무런 의료 보험을 갖고 있지 않은 미국인이 무려 4,400만 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의료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셈이다. 의료 기술이 가장 앞선 미국에 이런 기막힌 일이 있는 것이다. 

병원과 의료 사업이 경쟁에 맡겨 진 탓에 의료 질이 낮아 지고 있고, 이윤을 추구하는 보험회사가 병원과 의사, 그리고 환자 위에 군림하는 형상을 초래했다. 상황은 최근에 부쩍 나빠져서 적절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니 미국이 과연 선진국인지 의심할 정도다. 미국 병원은 보험을 들지 않은 환자에게 높은 수가(酬價)를 적용하고, 보험회사와 의료보장기구(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 HMO : 사전에 계약된 병원 진료를 보장하는 집단 보장제도로 25인 이상을 고용하는 사업장은 이를 유지하도록 요구된다.) 및 메디케어(Medicare : 65세 이상 노령자 및 장애가 있는 미성년자에 대한 연방정부 의료보장 제도) 환자에게는 저렴한 수가를 적용한다. 형평성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지만 제도가 복잡해서 행정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병원과 보험회사, 그리고 환자가 의료 비용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과 소송은 심각한 수준이다.

트루먼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커버하는 단일한 의료보험 체계를 제안했는데, 미국의료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 AMA)의 반대에 봉착해서 실패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들어서자 이런 논의는 사라져 버렸다. 1965년에 존슨 대통령은 65세 이상 노령자의 의료비를 연방정부가 부담하는 메디케어와 빈곤 계층의 의료비를 연방정부가 부담하는 메디케이드(Medicaid)를 도입했다. 취약계층 의료비를 정부가 부담함에 따라 전국민 의료보험 문제는 일단 사라져 버렸다. 1980년에 의료 보험을 들지 않은 사람이 전체 인구의 12.6%에 해당하는 2660만 명이라는 보고서가 나와서 의료체계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기존 시스템이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보험 환자들은 응급실을 불필요하게 드나들고, 의사들은 소송이 무서워서 꼭 필요하지도 않은 고가 장비 검사를 환자에 강요해서 의료비를 증가시켰다. 보험회사는 보험료 지급을 줄이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병원에 요구하고, 의사와 병원은 보험회사의 이런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1980년대 들어서 의료도 경쟁을 해야 서비스가 향상된다는 논리가 팽배해졌다. 하지만 다른 상품이나 서비스와 달리 의료는 서비스를 많이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병원을 덜 가고 병원에 비용을 적게 지불하는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니 의료 체계에 경쟁개념을 도입하는 자체가 문제인 것이다. 경쟁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처방약품 비용의 급격한 증가가 잘 보여준다. 1980년의 처방약품 지출은 120억 달러였는데, 2002년에는 1620억 달러로 12배나 증가했다. 제약회사들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오랫동안 약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파이자 등 대형제약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는데, 미국에서 팔리는 약품은 캐나다나 멕시코에선 반값 이하로 살 수 있다. 처방약을 저렴하게 사기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로 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미네소타 같은 접경지역 주에선 주정부가 보다 싼 값으로 캐나다에서 약을 사는 방법을 주민에게 홍보하고 있다. 환자들이 약을 보다 싸게 사기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로 단체여행을 하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지만, 미국 제약회사들은 해마다 막대한 이윤을 내면서 워싱턴 정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많은 병원이 상업적 대형의료기업으로 넘어가자 이들은 병원도 기업이라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병석과 직원을 감축했다. 실제로 1980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전체의 병석은 29%가 줄었다. 응급실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서 어느 병원이든 응급실이 포화상태에 있어 응급환자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사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월가(街) 출신의 투자전문가들이 운영하는 대형의료기업들은 병원이 기대했던 만큼 수익이 나지 않자 회계 조작을 서슴지 않아서 증권거래위원회는 몇몇 대형업체를 사기혐의로 기소하기도 했다. 

1973년 의회는 의료보장기구법(The HMO Act)을 통과시켜서 정부가 비영리병원단체에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했는데, 당시에는 이 시도가 매우 신선한 것으로 받아 드려졌다. 이 법으로 인해 1970년에 30개 불과하던 HMO가 불과 10년 만에 300개가 되었고, 이에 따라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예산도 대폭 증가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HMO에 대한 지원금이 감축되었고, 경영이 어려워진 HMO는 영리병원으로 탈바꿈했다. 이렇게 해서 많은 병원들이 의료기업에 인수 합병되었는데, 이런 결과로 의료 서비스는 더욱 나빠졌다.

1980년대 이후 미국 의료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행정적 사무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환자를 어느 병원에 보내느냐, 수가(酬價)를 어떻게 정하고 환자 부담을 어떻게 하는가 등을 정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해졌다. 의료에 있어 의사와 간호사 보다 사무직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 보험회사와 병원 경영진이 의료체계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고, 전체 의료비의 1/3이 행정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심각한 상태에 와 있는 미국의 의료체계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 저자들은 연방준비위원회 같은 독립적 의료관리 기구를 설치하자고 제안한다. 모든 미국인들에게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고 암 등 중증질환 비용을 정부가 보장하도록 하며, 보험회사가 아니라 환자가 병원과 의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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