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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바세비치, 워싱턴 법칙 (2010년)
작성일 : 2013-04-12 07:50조회 : 3,982


앤드류 바세비치, 워싱턴 법칙 (2010년, 메트로폴리탄 북스, 286쪽, 15달러)

Andrew J. Bacevich, Washington Rules
(2010, Metropolitan Books, 286 pages, $15.00)

앤드류 바세비치 교수는 웨스트포인트 출신으로 공화당원이면서도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고, 2008년 대선에선 오바마를 지지해서 주목을 샀다. 그는 군사력에 의존하고 또 군사력에 이끌려 가는 미국을 비판한 ‘미국의 새로운 군사주의’(The New American Militarism, 2005년)와 ‘강대국의 한계’(The Limits of Power, 2008년)를 연거푸 펴냈다. ‘항구적 전쟁으로 가는 미국’(America’s Path to Permanent War)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바세비치 교수의 생각이 잘 정리되어 있다.

저자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얼마 지나서 다른 미 육군 장교들과 함께 옛 동독 지역을 여행했는데, 그러면서 자신이 ‘철(鐵)의 장벽’ 건너편을 너무 몰랐음을 깨달았고,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세계를 이끌어 가야 하고 미국이 실수를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선의였다”는 그 때까지의 자신의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고 서두(序頭)를 연다. 저자는 제2차 대전 후 미국은 군사력이 그 정체성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는데 이제 그런 사고(思考)를 버려야 한다고 논지를 편다.

지난 60년 동안 미국은 국제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군사력을 세계에 유지해야 하며(‘global military presence’), 그 군사력을 전세계적 권력으로 투사(透寫)하고(‘global power projection’), 또한 현존하거나 예상되는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대외적으로 개입해야 한다(‘global interventionism’)는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이 세 가지 신념은 ‘신성한 3위 일체’(holy trinity)가 되었다. 이런 신념 하에서 워싱턴은 통치를 해 왔는데, 이런 합의가 트루먼 대통령에서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워싱턴을 지배해 왔으니 이를 ‘워싱턴 법칙’(the Washington Rules)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워싱턴’은 백악관과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엘리트 언론, 워싱턴에 자리잡은 싱크탱크와 로비스트 등을 함께 지칭하는 것이다. ‘워싱턴 법칙’은 미국의 영향력과 국력이 최고점에 달했을 때 나온 것으로 이제는 폐기돼야 한다. 미국은 더 이상 세계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미국에서의 군산(軍産)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를 경고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 CIA 국장을 지낸 알렌 덜레스와 전략공군사령관을 지낸 커티스 르메이는 CIA와 공군을 전세계를 상대로 한 거대한 조직으로 키웠고, 아이젠하워가 퇴임할 무렵에 이에 입각한 ‘워싱턴 법칙’은 이미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후였다. 케네디 행정부는 피그스 만(灣) 침공이 실패로 돌아가는 낭패를 맛보았지만 해외에서의 비밀작전을 오히려 증가시켰다.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 군사적 대응을 주장하는 맥스웰 테일러 합참의장과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의 주장을 배척하고 소련과 막후협상을 통해 위기를 해소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고 딘 디엠 남(南)베트남 대통령 암살을 승인하는 등 베트남 전쟁을 보다 복잡하게 만들어서 후임자에게 인계했다. 케네디-존슨 행정부 시절에 맥나마라 국방장관, 맥스웰 테일러 베트남 주재 대사, 맥조지 번디 안보보좌관 등은 ‘워싱턴 법칙’을 추종했는데, 그 결과는 대재앙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 알렌 덜레스와 커티스 르메이가 남긴 거대한 유산은 심한 손상을 입었다. 닉슨 대통령은  징병제를 포기해야만 했고, 의회는 ‘전쟁권 결의’(The War Powers Resolution)을 통과시켰으며, 상원은 CIA의 비밀작전에 관한 청문회를 열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를 흔들었던 젊은 운동권은 대학에 자리잡아서 이른바 ‘정년보장 급진파’(‘tenured radicals’)이 됐다. 

1980년이 되자 베트남 전쟁의 교훈은 잊혀졌다. 로널드 레이건은 “동남아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실패는 ‘고상한 목적’이 있었고, 오랫동안 우리는 베트남 증후군과 함께 살아왔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미국은 베이루트, 그러너다, 중남미 등에 군사 개입을 했다. 이런 추세는 조지 H. W. 부시 행정부를 거쳐서 클린턴 행정부로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낸 마들레인 올브라이트는 단지 미국이 특별한 나라라는 점을 강조했을 뿐이고 냉전 이후 세계에 걸 맞는 대외정책을 전혀 제시하지 못했다. 21세기 들어서서 ‘신성한 3위 일체’는 전에 없이 더욱 강하고 비대해졌다. 미군은 중남미, 페르시안 걸프, 발칸 등 세계 곳곳에 나가있게 됐다. ‘전쟁권 결의’는 사문화됐고, 9-11 테러 후 부시 대통령은 ‘예방 전쟁’(preventive war)이란 부시 독트린을 만들어냈다.

1991년에 쿠웨이트를 해방시킨 ‘사막의 폭풍 작전’(Operation Desert Storm)은 콜린 파월과 미국 장교단의 작품이었다. 이들은 장기전(long war)은 그 자체가 재앙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걸프 전쟁은 산업화 시대의 전쟁의 결정판이라기 보다는 그 종말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미 군부는 정보화 시대에 부응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9-11 후에 시작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작품이었다.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에서 성공을 거두자 미국은 이라크를 그 다음 타깃으로 정했다. ‘자유 이라크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에서 미군은 한달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역에서 내전과 테러가 발생했고, 미국이 의도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은 미궁에 빠져들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무한정 계속되는 장기전이 되고 말았다. 미국인에게 이제 전쟁은 새로운 정상상태가 되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패배하자 부시는 럼즈펠드를 경질하고, 이라크에 병력증강(surge)을 결정했다. 증원군이 파견됐고, 전쟁의 양상은 반(反)비정규전(counterinsurgency)으로 바뀌었다. 전쟁의 주역이 군복을 입은 현역 장군들로 바뀌었고,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대장이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반비정규전은 인내를 요구하기 때문에 전쟁은 신속해야 한다는 상식에 반하는 것이다.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은 재앙이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꼭 승리해야 하는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워싱턴 법칙’은 오바마 정부로 그대로 계승되었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이 같은 장기전으로 인해 미국은 재정과 국가부채가 악화되었고, 전사한 장병들의 가족들이 상처를 입었으며 장병들은 부상과 정신적 손상에 시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 법칙’은 그대로 있다. 그러나 ‘워싱턴 법칙’에 대한 대안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제 그 대안을 실천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은 자신의 문제를 먼저 되돌아 보아야 한다. 다른 나라 문제를 생각하기에 앞서 미국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한 조지 케냔과 윌리엄 풀브라이트를 본받아야 한다.

이제 필요한 바는 ‘새로운 3위 일체’이다. 첫째, 미국의 군사력은 악(惡)과 싸우거나 세계를 새로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방어하고 미국의 중요한 국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미군의 주된 주둔지는 미국이 되어야 한다. 셋째, 미국은 마지막 수단으로 그리고 자위(自衛)를 위해서만 군사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국방비는 점차 줄이고, 워싱턴 주변의 세금 도둑들은 문을 닫도록 해야 한다. 미국은 바그다드와 카불을 재건할 것이 아니라 클리블랜드와 디트로이트를 재건해야 한다. 번영과 평화를 약속했던 ‘워싱턴 법칙’은 미국을 파산과 영원한 전쟁으로 몰아 넣었던 것이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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