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조선일보 2001년 4월 14일)
2008-02-21 00:35 1,347 관리자

<서평> 「국민은 왜 정부를 믿지 않는가」

조셉 나이 등 편저, 박준원 옮김 (굿인포메이션, 2001년)



국민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나 있는 풍조다. 하지만 민주정부를 운영해 온 선진국에서도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미국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은 월남전과 워터게이트 사건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뢰 실추 ․ 리더십 위기 확산

미국에서는 카터, 레이건, 클린턴, 조지 W. 부시 같이 주지사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경우가 많아 졌는데, 이들은 워싱턴 정치와 무관함을 내세워 백악관에 입성했다.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레이건은 “정부가 바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유럽 국가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일본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 실추와 더불어 리더십 위기까지 겹쳐 있는 실정이다. ‘정부불신 증후군’이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셈이다.
우리의 경우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문민정부’임을 내세우고 개혁을 추진했던 김영삼 정부는 측근의 부패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종지부를 찍었다. ‘국민의 정부’를 자처하는 김대중 정부도 온갖 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렸다. 대통령에 대한 신뢰 뿐 아니라 정부 그 자체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졌다. 교육인적자원부를 없애야 교육이 바로 서고, 보건복지부를 해체해야 의료체계가 바로 잡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정부 불신은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 국민의 수준이 성장한 데 따른 자연스런 현상인가 ? 국민이 정부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많아 그런 것인가 ?
하버드대 케네디 정책대학원장 조셉 나이(Jeseph Nye) 교수가 엮은 이 책(원제 : Why People Don't Trust Government)은 미국에서의 정부불신 문제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하버드대 총장을 지낸 데릭 보크, 대통령학(學)의 권위인 리차드 노이스타트 등 저명한 학자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나이 교수는 1995년 4월에 발생한 오클라호마시(市) 폭탄참사를 계기로 이 책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왜 정부를 증오하고 불신하는가

걸프 전쟁  참전용사인 맥베이는 연방정부에 환멸을 느끼고 전역한 후 무정부 사상에 빠지는데, 그는 1993년 4월19일 연방정부 요원들이 텍사스주(州) 웨코의 신흥종교단체를 공격한데 대해 몹시 분개한다. 웨코 사건 2주년 되는 날에 맥베이는 오클라호마시 연방정부 건물을 폭파해서 169명을 죽게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큰 논란거리가 됐던 것이다.
이 책은 국민이 정부를 믿지 않는 현상을 여러 측면에서 고찰한 10편의 논문과 나이 교수의 결론으로 구성돼 있다. 연방정부의 영역이 지나치게 넓어진 것이 정부불신을 초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연방정부의 성과가 좋지 않은 것이 더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많은 미국인들은 연방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일을 망치며, 공무원들은 예산을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960년대 이후 연방정부가 추구해온 정책이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정부불신이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인들은 주정부나 지방정부보다 연방정부를 더 불신하고, 워싱턴의 정치인들을 비윤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불신 받게 된 데는 정치인의 사소한 신상문제를 보도해 온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견해는 언론의 영향력을 과장한 것이지만 언론이 정부에 대한 냉소주의를 조장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불신을 경제적, 사회문화적 상황과 결부시켜 설명하기도 한다. 1970년대 이후 경제가 장기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기 때문에 정부불신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휘몰아친 사회문화적 균열도 정부불신을 조장했다. 인종문제, 낙태, 성차별 등 많은 사회적 쟁점에 대해 합의를 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부가 어떤 정책을 내놓아도 많은 사람들은 화를 내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중도적이지만 정치인들은 갈수록 극단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은 자연히 정치인들이 벌이는 공방전을 공허한 정쟁으로 보게 된다. 정치인마저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를 정부 탓으로 돌린다.
1960년대 이후 신문과 TV가 공격적으로 변한 것도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한다. 정부에 관한 언론의 보도는 사실전달보다 논평이 주류(主流)를 이루고 있는데, TV 뉴스가 특히 그러하다. TV 매체시대에 방송언론인들은 그들이 선거로 뽑힌 공직자들보다 더 우월한 정당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정부를 왜곡시켜 보도하곤 한다. 정부를 음모의 덩어리로 묘사한 영화, 선거 때만 되면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는 부정적 정치광고 등도 정부에 대한 냉소주의를 키우고 있다.

큰 정부 버리고 새 모델 찾아야

결론적으로 나이 교수는 정부에 대한 불신은 큰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역할을 재평가할 것과, 제3의 산업혁명을 맞아 과거부터 운영해 온 큰 정부를 버리고 정부운영의 새 모델을 제시할 것을 제안한다.
일반독자가 읽기에 이 책은 다소 벅차고 난해하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룬 가설들을 우리의 현실에 적용해서 검증할 필요는 절실하다. 번역을 감수한 임길진 박사(KDI 국제정책대학원장)는 경제정책 실패, 권위주의적 정치, 가치관 혼돈, 언론의 편파보도가 한국에서 정부불신을 초래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반론할 여지가 있다. 현 김대중 정부가 정부불신 풍조의 희생양이 돼서 좌초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부불신을 조장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이 책을 읽고 난 독자들의 몫이다.

(조선일보 2001년 4월 14일자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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