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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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차드 미니터, 배후에서 이끈다 (2012년)
작성일 : 2013-06-10 16:33조회 : 3,721


리차드 미니터, 배후에서 이끈다 (2012년, 세인트 마틴, 287쪽, 25.99 달러)

Richard Miniter, Leading from Behind (2012, St. Martin’s Press, 287 pages, $25.99)

2012년 1월 미국 대선을 몇 달 앞두고 탐사전문기자가 펴낸 이 책은 오바마가 중요한 결정을 하지 못하는 등 리더십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해서 주목을 샀다. 오마바가 빈 라덴 살해 작전에 대해 우유부단했고 이에도 발레리 자렛 보좌관이 개입했었다는 주장에 대해선 백악관이 이례적으로 사실이 아님을 반박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저자는 오바마가 ‘이해하기 어려운 리더’라고 본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찬조 연설원으로 각광을 받은 그는 젊은 나이에 자서전을 써서 유명해졌다.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진정으로 워싱턴 정치를 혐오했다. 또한 자신은 “더 이상 ‘새로운 친구’가 필요치 않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된 후에는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도운 많은 사람들을 외면했다. 이 같은 오바마를 외부에 대리하고 또 오바마를 움직여 온 단 한 명의 사람은 발레리 자렛 보좌관이다.

‘고립’이야 말로 오바마를 적절하게 표현하는 단어다. 그나마 오바마와 가까운 사람은 오바마와 같은 흑인이며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와 연결되어 있다. 오바마는 백악관에서도 공식 집무실 보다는 3층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자신만의 사적 공간에 머물기를 좋아한다. 이 같은 ‘고독’은 그가 평생 살아 온 패턴이기도 하다. 그의 생부는 오바마를 낳고 사라져 버렸고, 그의 어머니는 오바마를 고독하게 키웠다. 인도네시아에서 새 아버지와 살았을 때도 오바마는 외톨이였고, 나중에 대학에서 가르쳤을 때도 그러했고 일리노이 주 의회 의원과 상원의원을 지낼 때도 그러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이 된 후에 오바마는 모든 결정을 혼자하며, 누구와 의논해서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런 결정이 내려졌는지에 대해선 아는 사람이 없다. 

오바마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오바마의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은 강한 여인이었다. 그녀의 부친은 일정한 직업이 없었지만 모친은 은행 직원으로 출발해서 간부직에 올랐다. 책을 좋아하고 진보적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하와이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공부했는데, 그러다가 케냐에서 온 유학생 버락 오바마를 만나 결혼해서 오바마를 낳았다. 오바마의 부친은 소련의 경제체제와 마오쩌뚱에 관심이 많아서 스탠리 앤과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나 버락은 곧 하버드로 옮겨 갔고 거기서 다른 미국 여인과 결혼하고 케냐로 돌아가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사회주의를 주창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두 다리를 절단하게 됐고, 20년 후에 가난하게 사망했다.

홀로 된 오바마의 어머니는 하와이 대학에서 공부하던 인도네시아 학생과 결혼해서 어린 오바마를 데리고 인도네시아에 가서 살았다. 인도네시아에서 학교를 다닐 때에도 오바마는 외톨이였다. 아버지는 인도네시아 사람이고 어머니는 백인 미국인인데 오바마는 흑인 아이였으니 학교와 동네에서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만 한 일이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다시 이혼하고 오마바를 데리고 하와이의 친정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하와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리고는 다시 연구자료를 수집하러 인도네시아에 혼자 돌아갔다. 오바마의 어머니는 오바마와 떨어져서 살고자 인도네시아로 갔다고 추측되는데, 이렇게 해서 오바마는 외조부와 외조모에 의해 키워졌다. 따듯한 가정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오바마는 아내 미셀과 아이들에게 충실하고, 특히 미셀의 어머니가 백악관에서 살고 있을 정도다.

이렇게 성장한 오바마는 속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친구나 동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대통령이 된 후에도 이 같은 성격은 변하지 않아서, 오바마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고 있다. 유일한 예외는 부인 미셀과 그의 멘토인 발레리 자렛이다. 발레리 자렛의 공식명칭은 고위 보좌관에 불과하지만 그녀는 백악관에서 열리는 모든 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다. 시카고의 영향력 있는 흑인 가정 출신인 자렛은 스탠포드와 미시건 로스쿨을 졸업한 이혼녀인데, 시카고 정치에 깊숙이 간여했다. 오바마와 미셀을 시카고 정치에 접목시킨 장본인은 다름아닌 자렛이었다.

백악관에 입성한 자렛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오마바 행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램 에마누엘은 자렛의 영향력을 배제하려 했다가 오히려 자기가 밀려서 2010년 10월에 비서실장을 그만두고 시카고 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오바마는 2016년 올림픽 게임을 시카고로 유치하기 위해서 미국 대통령으론 이례적으로 코펜하겐에 가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압박했는데, 이도 자렛이 강력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자렛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백악관 직원들의 사기는 침체되어 있다. 

오바마가 자신의 가장 큰 업적으로 말하는 것은 건강보험과 의료체계 개혁이다. 그래서 이 개혁을 흔히 ‘오바마 케어’(‘Obama Care)라고 부르지만 실제로 의료체계 개혁법안이 통과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다. 오바마는 의료체계 개혁에 대해 관심을 둔 적이 없다. 오바마는 공화당이 반대하는 의료체계 개혁을 강행할 생각이 없었다. 백악관에서도 에마뉴엘 비서실장은 의료체계 개혁이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을 우려했지만, 캐스린 시벨리우스 보건장관과 펠로시 하원의장은 의료체계 개혁안을 막후에서 조정해서 밀어 붙였다. 이렇게 해서 결국 의회를 통과한 것이 ‘환자 보호 및 적정한 의료에 관한 법률’(The Patient Protection and Affordable Care Act)인데, 이 과정에서 오바마는 방관자 같은 태도를 보였다. 이렇게 해서 법안은 통과됐지만 2010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은 패배했고 하원은 다시 공화당 지배에 들어갔다.

오바마는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공약을 내걸고 당선됐다. 하지만 2년이 지난 2010년 미국의 정부 부채는 부시 행정부의 마지막 해이던 2008년에 비해 50%가 증가했다. 9조 달러이던 정부 부채가 13조 5000억 달러로 늘어나서 미국의 GDP 15조에 육박했다. 연방정부 부채에 주 정부와 지방정부의 부채를 합치면 GDP의 170%에 달하고 있어 유럽과 다를 것이 없다. 2010년 미국의 실업인구는 2008년에 비해 200만 명이 늘어났다. 오바마의 경제진흥책(Economic Stimulus Package)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연방예산을 축소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채 상한선을 두려는 예산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공언했다. 공화당이 지배하는 하원과 백악관은 충돌했고 2년 동안 연방정부는 하원의 동의 없이 임시예산으로 운영됐다. 대통령의 덕목은 자신과 견해가 다른 정치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인데, 오바마에겐 그런 모습이 전혀 없다. 

오바마가 오사마 빈 라덴을 살해하도록 한 명령은 가장 인기 있었던 결정이었다. 그러나 내막을 보면 딴판이다. 오바마는 2010년에서 2011년 초에 이르는 기간 동안 작전 명령을 3번이나 취소시켰다. 오바마의 이 같은 무결정(indecision)과 침묵은 위험할 정도였다. 오바마가 이렇게 망설이게 된 데는 이 작전이 실패하는 경우에 있을 수 있는 정치적 부담을 자렛이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망설임과 무결정 때문에 레온 파네타 중앙정부국장,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자신들이 이 계획을 밀고 나가야만 했다. 오바마는 결국 이 작전을 승인했고, 작전이 성공하자 이로 인한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돌렸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은 부시 행정부 시절부터 중앙정보부와 국방부가 추진해 왔다. 상원의원 시절에 오바마는 오바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군과 정부당국의 조치를 반대하고 비난했었다. 게이츠 국방장관과 클린턴 국무장관은 무인 공격기와 미사일 공격으로 오사마 빈 라덴이 머물고 있다고 여겨지는 지점을 파괴하고자 했지만 그 때마다 자렛이 반대해서 무산됐다. 자렛이 헬기를 통한 지상군 투입에 찬성해서 결국 오사마 빈 라덴 살해 작전이 실행에 옮겨 지게 됐다. ( * 여기에 대해 백악관은 자렛이  오사마 빈 라덴 작전에 간여한 적이 없으며, 이 작전은 안보관계자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게이츠 전 장관도 이 작전은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오바마의 각료 중 가장 문제가 많은 인물은 에릭 홀더 법무장관이다. 하지만 오바마가 가장 총애하는 각료도 역시 에릭 홀더인데, 그가 흑인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바마의 최측근인 발레리 자넷도 홀더 장관과 가깝다. 홀더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법무부 차관을 지내면서 클린턴 대통령 후원자인 마크 리치을 사면하는 작업을 하면서 공화당으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클린턴 부부는 이에 대해 고마움을 표하지 않았다. 그런 구원(舊怨) 때문에 2008년 민주당 경선 때 홀더는 오바마를 지지했고, 오바마는 홀더를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홀더가 지휘하는 법무부는 ‘신속과 분노 작전’(Operation Fast and Furious)이란 스팅 작전을 실시했다. 법무부는 애리조나 등 국경지대 총포상에 대해 현금으로 총기를 사고자 하는 의심스러운 경우에도 총기를 팔라고 지시했다. 이렇게 총기를 구매한 자를 감시한다는 것이 이 작전이 뜻하는 바였다. 그러나 이 스팅 작전은 처음부터 실패했다. 총기를 사간 사람을 추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렇게 팔려간 총기가 멕시코 갱단들에 의해 이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2010년 12월 14일 밤, 애리조나 주의 멕시코 국경지대에서 국경 경비대 요원 브라이언 테리가 멕시코 쪽에서 발사한 AK-47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테리를 죽게 한 총은 한 사람이 현금 48,000 달러 주고 애리조나의 총기상에서 사간 총기와 탄약 중 하나였음이 확인됐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총기 판매가 거부되었을 거래였으나 법무부의 스팅 작전 때문에 판 것인데, 오히려 연방정부 요원을 죽게 한 것이다. 

현지 요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법무부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스팅 작전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2011년 2월에는 텍사스 국경지대에서 미국 이민국 요원이 역시 멕시코 갱단의 AK-47 총격을 맞고 사망했다. 공화당 의원들은 상임위원회에서 홀더 장관을 출석시켜서 질문을 했으나 홀더는 책임을 부인했다. 오바마는 자신이 이 작전을 명령한 적이 없으며, 홀더도 이를 명령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오바마와 홀더가 총기 규제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위험한 스팅 작전을 승인했을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저자는 오바마가 리더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주장한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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