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로렌스 라이트, 타워가 다가온다 (2006년) (계속)
2013-07-11 19:02 2,858 이상돈


로렌스 라이트, 타워가 다가온다 (2006년) 계속

미국의 테러 대응 팀

클린턴 행정부 말기에 백악관에서 테러 대응책을 조율하는 책임을 졌던 사람은 리차드 클라크였다. 1995년에 클린턴 대통령은 FBI가 테러를 방지하고 수사하는 주된 역할을 하도록 했는데, 존 오닐이 FBI의 테러 대응 팀을 책임지고 있었다. 오클라호머 시티 연방청사 폭파 사건 후 FBI에는 국내테러를 전담하는 부서가 생겼고, 존 오닐은 해외테러를 전담했다. 오닐은 당시로선 이름도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오사마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한 위협임을 알아차리고 그를 추적했다. 한편, FBI의 테러 대응팀을 이끌던 오닐은 여자관계가 복잡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생활로 인한 실수로 나중에 FBI를 떠나게 된다.   

1996년 6월 25일, 사우디에 주둔 중인 미 공군 막사 코바 타워에 강력한 폭발이 일어나서 미군 19명이 사망하고 400명이 다쳤다. 오닐은 수사팀을 이끌고 현지로 향했고, FBI 루이 프리 국장도 이에 합류했다. 그러나 사우디 당국의 비협조로 FBI 수사팀은 특별한 성과를 얻지 못했다. 1997년 초, 오닐은 FBI 뉴욕 지부의 국가안보팀 책임자로 발령이 닜다. FBI 뉴욕 지부에서 오닐은 중동의 테러 조직을 담당하던 대니엘 콜맨을 만났다. 오닐을 만나기 몇 달 전에 콜맨은 미국을 위협하는 테러 조직원이었다고 주장하는 자말 알  파들을 독일의 비밀장소에서 심문하고 ‘알 카에다’라는 테러 단체를 처음 알게 됐다. 콜맨과 오닐은 알렉 스테이션이란 비밀 사무실에서 그곳의 CIA 책임자 마이클 슈어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하지만 FBI의 오닐과 CIA의 슈어는 서로 견제하고 좋아하지 않았다. 

당시 CIA는 알 카에다나 탈레반에 대한 인적 정보망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다. CIA는 아프간에 침투해서 빈 라덴을 납치하는 방안도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CIA는 사우디 정보부를 통해서 오마르에게 빈 라덴을 사우디로 인도해 주도록 요청했으나 오마르는 이를 거절했다. 결국 사우디 정보부는 오마르에게 4륜구동 픽업 트럭 400대와 현금을 전달하고 빈 라덴을 인도받기로 했으나, 오마르는 도착한 차량을 갖고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하고 빈 라덴을 인도하기로 한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1998년 7월, CIA는 아제르바이젠의 바쿠에서 자와히리의 조직원을 납치했는데, 그의 랩톱 컴퓨터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 구성표 등 중요한 정보를 획득했다. 그러나 CIA는 이 정보를 FBI에 넘겨주기를 거부했고, FBI가 독자적으로 그 컴퓨터를 손에 넣는 등 부처간 갈등양상을 초래했다. 

1998년 8월 7일 미 대사관 폭탄 테러

1998년 8월 7일, 페르시아계 시아파 주민이 살던 마자르 이 샤리프를 점령한 탈레반은 처참한 학살극을 자행해서 주민 약 5,000~6,000명과 이란 외교관 10명이 죽었다. 서방 언론은 탈레반의 잔인성에 경악했으나, 같은 날 탄자니아와 케냐에서 빌생한 폭탄 테러로 인해 이 뉴스는 가려졌다.

같은 날 알 자와히리의 조직원이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TNT 2,000톤 등 강력한 폭발물을 제조해서 토요타 트럭에 실었고, 사우디 출신의 또 다른 조직원 두 명이 이 트럭을 몰고 미국 대사관에 돌진해서 대폭발을 일으켰다. 자폭테러를 감행한 사우디인 두 명은 ABC 방송이 빈 라덴을 인터뷰했을 때 함께 있었던 자들이었다. 같은 날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 에스 살렘에서도 미국 대사관이 폭탄 차량 테러로 폭파됐다.

나이로비 대사관 폭발로 여성인 미국 대사 푸르던스 부시넬 등 미국인 12명 등 213명이 죽고 4,500명이 부상을 당했다. 다르 에스 살렘에선 폭탄 차량과 대사관 사이에 물 탱크 트럭이 있어서 피해가 적어서 현지인 11명이 죽는데 그쳤다. 사건이 발생하자 FBI 요원 수 백 명이 아프리카 현지로 향했다. 해외의 미국 시설에 대한 이 대담한 테러는 향후에 전개될 알 카에다의 테러가 어떤 양상을 띠게 될 것을 잘 보여 주었다. FBI는 나이로비 현지에서 거동이 수상한 아랍인을 구금해서 심문한 결과 알 카에다의 예멘 조직책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이 과정에서 알 카에다가 미국 본토를 겨냥한 테러를 계획 중임을 알게 됐다.

수단과 아프간에 대한 미사일 공격

CIA는 빈 라덴이 수단에서 화학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CIA는 빈 라덴 수하에 있다가 미국에 전향한 자말 알 파들의 이 같은 진술을 신뢰했다. CIA는 아랍 출신 스파이를 고용해서 의심스러운 화학공장이 있는 알 시파 주변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서 분석했는데, 거기에서 신경가스를 만드는 물질인 EMPTA 성분을 발견했다.

1998년 8월 20일, 백악관 인턴과의 섹스 스캔들로 곤란한 지경에 빠져 있던 빌클린턴 대통령은 수단의 알 시파 화학공장과 아프가니스탄 코스트 부근의 알 카에다 훈련 캠프에 대한 크루스 미사일 공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7억 5천만 달러가 소요된 이 공격은 완전한 실패였다. 미사일 공격으로 완전히 파괴된 수단의 화학공장은 의약품과 농약을 생산하던 수단의 유일한 공장이었다. 근로자 300명이 일하던 수단에서 몇 안 되는 공장을 미국이 파괴해 버린 것이었다. CIA는 아프리카에서 흔히 사용되는 살충제 잔존성분을 신경가스 제재로 오판했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코스트에 대한 공격은 국가안보국(NSA)이 어렵게 잠시 확보한 위성통화를 근거로 한 것이었다. 빈 라덴과 일행이 코스트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빈 라덴은 그 곳으로 가지 않았다. 코스트에선 알 카에다 대원 6명이 사망했을 뿐이며 그나마 리더급은 모두 무사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날아가던 미사일 중 몇 개는 파키스탄 영토에 떨어졌다. 코스트에 떨어진 토마호크 미사일 중 몇 개는 탄두가 폭발하지 않았다. 빈 라덴은 불발한 크루스 미사일 탄두를 1000 만 달러 이상을 받고 중국에 팔아 넘겼다. 파키스탄은 자국 영토 내에 떨어진 불발탄을 수거해서 자국의 미사일 개발 연구에 사용했다. 아랍권 국가들은 클린턴이 자기의 섹스 스캔들을 덮기 위해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비아냥거렸다. 8월 20일의 미사일 공격은 미국 정보력과 군사 능력이 얼마나 한심한 지경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 슬픈 사건이었다.

오마르의 선택

빈 라덴이 미국에 대한 성전을 선포했을 때 그와 오마르와의 관계는 불확실했다. 그러자 이라크 정보당국은 사람을 보내서 자와히리를 만났다. 이라크 정보부는 알 카에다의 본거지를 이라크로 옮기자고 제안했지만, 빈 라덴은 사담 후세인이 독재자라고 생각해서 이 제안을 거절했다.

사우디와 파키스탄의 정보당국은 탈레반 수장 오마르에게 동 아프리카 미국 대사관 폭탄테러의 배후에 빈 라덴이 있으며, 빈 라덴을 추방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오마르는 “빈 라덴은 명예로운 사람”이라면서 자신을 만나러 온 사우디의 투르키 정보국장과 파키스탄의 정보국장 라나 장군을 오히려 힐란했다. 빈 라덴과 알 카에다는 인구가 많은 칸다하르와 카불 부근으로 그들의 캠프를 옮겼다.

1999년 2월, CIA는 다시 한번 빈 라덴을 공격할 기회를 포착했다. 아랍 에머레이트의 왕자들이 아프간에 사냥을 하러 가던 중 빈 라덴을 만날 것이라는 정보를 얻었던 것이다. 그러나 외교관계와 민간인 피해를 우려한 국방부의 반대로 공격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알렉스 스테이션의 CIA 책임자 마이크 슈어는 경질되었다.

1999년 9월, 자와히리는 위조 여권을 이용해서 이라크를 방문했다. 요르단 출신으로 아프가니스탄에 별개의 테러 캠프를 갖고 있던 알 자르카위도 이라크를 방문 중이었는데, 이라크 정보당국이 이 두 사람을 만났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자르카위는 나중에 이라크 내의 알 카에다 조직을 이끌었다.

2000년 테러설(說)

1999년 6월, FBI는 비로서 빈 라덴을 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FBI와 CIA는 알 카에다가 21세기로 접어 드는 1999년 연말과 2000년 연초에 동시다발적 테러를 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1999년 12월, 요르단 정부당국은 요르단 내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왕래하는 호텔 등을 폭파하려는 테러 음모를 적발했는데, 자르카위가 배후로 지목됐다.

그 해 12월 14일에는 미국 워싱턴 주 포트 앤젤레스에서 미 국경경비대원이 거동이 수상한 알제리아인을 체포해서 조사하던 중 그의 차량에서 다량의 폭발물을 발견했다. 한 때 알 카에다 소속으로 테러 훈련을 받은 그는 캐나다에서 자신만의 세포 조직을 만들어서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을 21세기 첫날 폭파하려고 했던 것이다. 존 오닐은 21세기 첫날 테러가 있다면 그것은 뉴욕시 타임 스퀘어일 것으로 생각하고 뉴욕 시장이 진행하는 뉴 밀레니엄 행사현장을 지켰다. 2000년 1월 1일은 이렇게 해서 무사하게 지나갔지만, 미 본토를 타깃으로 테러 계획은 진행되고 있었다.

빈 라덴, 9-11 테러를 구상하다

빈 라덴의 훈련 캠프를 찾아오는 아랍 젊은이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해 있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였다. 사우디에 살았던 예멘인, 스페인에 살았던 모로코인 등이었다. 이들은 알 카에다 캠프에서 훈련을 마치고 각기 적성에 맞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이들은 모두 죽음으로서 영광을 찾는다고 믿었다. 독일 제1의 도시 함부르크에는 20만 명 이상의 아랍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1992년 가을에 함부르크 기술대학에 유학생으로 온 모하메드 아타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독일은 학비가 없을 뿐더러 학생 신분을 유지하는 한 무제한 체류할 수 있었고, 유학생 여권으로 유럽연합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함부르크에 머물던 모하메드 아타, 람지 빈 알 시부, 마르완 알 세히, 그리고 지아드 자라는 1999년 11월에 아프가니스탄의 빈 라덴 캠프에 도착했다.

빈 라덴은 항공기를 납치해서 미국의 주요 목표를 동시에 공격하자는 발상을 처음 제시한 칼레드 세이크 모하메드를 칸다하르로 다시 불렀다. 두 사람은 구체적 방안과 목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빈 라덴은 의회와 백악관을 제시했고, 모하메드는 자신의 조카가 폭파하려던 뉴욕의 세계무역센터를 제시했다. 이 계획을 시행하기 위해서 미국에 입국할 수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영어를 해득해야 하며, 초보적 비행기술을 익힐 수 있어야 만 했다. 여하튼 빈 라덴은 그가 가장 신임하는 4명을 골라서 이 일을 맡기려 했는데, 사우디 국적의 나와프 알 하즈미, 칼레드 알 미다르와 예멘 출신의 다른 두 명이었다. 사우디 국적은 미국에 입국할 수 있지만 예멘 국적은 미국 입국도 어려웠다. 이들은 영어도 못했고 비행기술도 물론 없었다. 이들의 미국 입국이 어렵다고 생각한 빈 라덴은 이들을 쿠알라 룸푸르로 보냈다. 빈 라덴은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인물을 자신의 캠프 내에서 구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 시점에 아타 등 4명이 함부르크에서 빈 라덴의 캠프로 찾아 온 것이다. 빈 라덴은 초보적 영어를 할 수 있고 서방 생활에 익숙한 이들을 환영하고 특별히 관리했다. 이들은 나중에 9-11 테러에 가담하게 된다.

빈 라덴이 쿠알라 룸푸르로 보낸 4명 중 예멘 출신으로 칼라드라고 불리는 인물이 있었다. 아프간 내전 때 오른 발을 잃어버린 칼라드는 아덴 항에 머물던 미 군함 설리번호(號)를 폭파시키려는 음모에 가담한 적이 있었다. 칼라드가 같이 쿠알라 룸푸르에 도착한 사우디 출신의 미드하와 통화한 것을 미 국가정보국(NSA)가 도청하는데 성공했다. CIA는 미국 비자를 갖고 있는 미드하의 쿠알라 룸푸르에서의 행적을 감시하고 말레이지아 당국에 도청을 요청했으니 말레이지아 당국은 도청을 하지 않았다. 알 카에다를 추적하던 알렉 스테이션은 CIA 책임자이던 마이크 슈어가 떠난 후라서 이런 조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때 칼라드와 미드하 등 일행의 대화를 도청했다면 미 구축함 콜호(號)(USS Cole) 테러와 9-11 테러는 예방할 수 있었다.

CIA는 미국 비자를 갖고 있던 하즈미와 미드하가 2000년 1월 15일에 로스앤젤레스를 통해 입국했음을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CIA는 이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FBI에 알리지도 않았다. CIA는 존 오닐이 이를 알게 되면 FBI가 주도권을 갖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CIA는 존 오닐 때문에 마이크 슈어가 알렉 스테이션 책임자 지위에서 해임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즈미와 미드하는 9-11 테러가 있기 19개월 전에 미국에 입국했기 때문에 FBI가 이 두 사람을 추적했더라면 이들을 검거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나 FBI는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했다.

존 오닐

FBI에서 알 카에다와 빈 라덴을 가장 열성적으로 추적한 요원은 존 오닐이었다. 뉴저지 출신의 존 오닐은 오래 전부터 부인과 별거하고 여러 명의 여자를 동시에 사귀어 왔고, 개인적으로 빚이 많았다. 그를 추종하는 후배도 많았지만 너무나 개성이 강해서 CIA 등 다른 기관에 적(敵)이 많았다. 오닐은 FBI 뉴욕 지부를 테러 대응 전략에 가장 강한 지부로 만들었다.

2000년 초 FBI 뉴욕 지부장 루이 실리로가 은퇴하자 오닐은 자신이 그 자리로 승진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뉴욕 지부장 자리는 배리 몬에게 돌아갔다. 오닐은 뉴저지 지부장 자리를 고사하고 뉴욕 지부에서 계속 일하기를 원했다. 그 즈음 오닐은 기밀문서가 든 가방을 분실했다가 경찰을 통해 다시 찾는 보안사고를 일으켰다. FBI에서의 오닐의 경력은 위태로워 보였다. 2000년 10월 12일, 예멘의 아덴 항(港)에 정박해 있던 미국의 최신형 이지스 미사일 구축함 콜호(號)가 폭발물 테러를 당하자 오닐은 대원들을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 오닐로서는 자신의 역량을 다시 한번 입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미 구축함 콜호(號) 폭발물 테러

알 카에다는 기획은 중앙에서 하되 시행은 철저하게 현지에서 하는 것을 관리원칙으로 삼았다. 빈 라덴은 목표를 정하고 이를 시행에 옮길 리더를 선정하고 어느 정도 자금을 대며, 그러면 리더는 자기가 알아서 구체적 공격계획을 짜고 시행하는 것이다. 빈 라덴은 예멘 항구에 정박하는 미 해군 함정을 침몰시키기를 원했다. 그러던 중 미국이 자랑하는 최신예 구축함 콜호(號)가 아덴 항에 입항했다. 토마호크 미사일을 적재한 이지스 구축함은 아프가니스탄 코스트에 미사일 공격을 할 때 가담한 군함이었다. 이 공격으로 알 카에다 대원 5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빈 라덴이 콜호를 공격할 이유는 충분했다.

2000년 10월 12일 오전 11시 15분, 작은 파이버 글라스 어선 한 척이 8,300 톤이나 되는 콜호(號) 부근으로 접근했다. 미 해군 수병들은 한가하게 쉬고 있었고, 갑판에선 한 수병이 다가오는 작은 어선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대폭발이 일어나서 콜호의 측면에 가로 세로 40피트 큰 구멍이 났고 함선 내부는 불에 휩싸였다. 미 해군 장병 17명이 사망하고 39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

존 오닐은 FBI 요원 60명과 지원 스태프를 이끌고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은 처참했고, 콜호는 침몰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예멘은 미국에게 우호적이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곳이었다. 중동 지역에 오래 근무한 예멘 주재 바바라 보다인 대사는 FBI가 대규모 수사팀을 보낸 데 대해 좋아하지 않았다. 테러 위험 때문에 수사 팀은 한 호텔에서 비좁게 지내야 했고 미 해병대가 호텔을 삼엄하게 경계했다. 테러 방조자 한 명을 어렵게 체포했으나 예멘 경찰의 비협조로 더 이상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예멘 총리는 폭탄 테러와 알 카에다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FBI 수사 팀은 테러 방조자를 심문하는 과정에서 그가 방콕에서 칼라드와 콜호 테러범 1인을 만나서 미화 3만 6천 달러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존 오닐의 팀은 이 내용을 CIA에 통보했으나 CIA는 이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때 전달된 현찰은 9-11 테러범 미드하와 하즈미가 미국행 1등석 비행기 표를 사는 데 쓰였을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의 신예 구축함을 폭파한 빈 라덴에게는 아랍세계의 성원과 후원금이 줄을 이었다. 알 카에다에 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탈레반이 빈 라덴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정도였다. 이제 탈레반은 알 카에다를 그들의 동료도 생각하게 됐다. 미국은 콜호 폭파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국은 선거운동 기간 중이었고, 클린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협상에 주력하고 있었다.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직후에 백악관 테러담당관이던 리차드 클라크는 새로 임명된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만나서 빈 라덴과 알 카에다의 위협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라이스는 알 카에다에 대해 처음 들어 본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클라크는 또한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을 이끌던 아메드 마수드와 협력해야 한다고 보고 했다. 라이스는 “그 지역에 대한 보다 큰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얼버무렸고, 클라크의 직급을 한 단계 하향조정해 버렸다. 실망한 클라크는 사임하겠다고 했고, 당황한 라이스는 10월까지만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클라크는 자기의 후임자로 존 오닐을 생각했지만 오닐은 그 자리를 사양했다.

2001년 4월, 아프간 북부동맹군 사령관 마수드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유럽 의회에 출석해서 알 카에다가 야기하는 위협에 대해 연설했는데, 특히 알 카에다가 미국에 대한 대형 테러를 계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마수드는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그의 연설이 현실로 나타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2001년 7월, 리차드 클라크는 연방항공국, 이민국, 연안경비대, 대통령 경호실, FBI 등 관련 부서 회의를 소집해서 “대단한 규모의 사건이 미국 내에서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즈음 존 오닐은 FBI를 떠나기로 결심하고 새 직장을 알아보고 있었다. FBI 내에서 진급 전망이 흐려진 오닐은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을 채우자 FBI를 떠나기로 했다. 은퇴를 앞두고 그는 애인과 함께 스페인에서 긴 휴가를 즐겼고, 퇴임 후에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보안책임자로 가기로 했다.

9-11을 향한 카운트 다운

존 오닐이 마지막 휴가를 보내는 동안에 애리조나 피닉스의 FBI 지부의 한 요원은 FBI 본부와 알렉 스테이션에 “빈 라덴이 항공공학을 공부할 학생들을 미국에 보내고 있다”는 정보가 있다고 알렸다. 그 해 8월 중순, 미네소타의 한 비행학교에서 지역 FBI 사무실에 자카리아 무사위라는 의심스런 학생에 대해 신고를 했다. 무사위는 뉴욕시 주변의 항공기 상황이 어떠하며 비행 중에 조종실 문을 열 수 있느냐는 등 의심스러운 질문을 했던 것이다. FBI 지부는 무사위가 과격한 무슬림이며 항공기를 이용한 자살테러를 계획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는 무사위는 미국 체류기간을 넘겼기 때문에 이민국은 그를 일단 구금했다. FBI는 무사위가 쿠알라 룸푸르와 관련이 있음을 알았으나 CIA가 알 카에다 구성원들의 쿠알라 룸푸르 회의에 대해 다른 기관에 알려 주지 않아서 FBI는 이에 대해 경각심이 적었다. 또한 존 오닐이 이미 알렉 스테이션을 떠났기 때문에 피닉스 지부의 보고 등 관련 정보를 연관시켜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2011년 8월 21일은 존 오닐이 FBI에서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 다음날 오닐은 세계무역센터로 출근을 시작했다. 8월 30일, 사우디 국왕은 투르키 정보국장을 해임했다. 빈 라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 대한 문책이었다. 9월 9일,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군 사령관 마수드는 아랍 기자 두 명과 TV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자와히리가 보낸 암살단이었다. 인터뷰 현장에서 카메라 맨의 가방에 있던 폭발물이 터져서 마수드는 즉사했다.

9월 11일 아침, FBI 뉴욕 지부장 베리 몬과 그의 여비서는 사무실 창으로 통해 세계무역센터 노스 타워 92층에 항공기가 충돌해서 대폭발이 일어나는 것을 목격했다. 존 오닐의 사무실은 노스 타워 하층부에 있었다. 오닐은 노스 타워에 있는 탁아소로 달려가서 아이들을 건물 밖으로 피난시켰다. 얼마 후 또 다른 비행기가 사우스 타워에 충돌했다. 뉴욕 소방대는 노스 타워 로비에 임시 지휘소를 설치했고, 소방대원들과 함께 오닐은 다시 노스 타워로 들어갔다. 잠시 후 세 번 째 비행기가 펜타곤에 추락했다. 배리 몬 등 FBI 뉴욕지부 대원들도 현장으로 달려갔으나 타워가 폭발을 일으키면서 무너져 내렸고, 엄청난 먼지 폭풍이 이들을 덮쳤다. 세계무역센터에선 2,749명이 죽었다. 존 오닐의 시신은 열흘 후에 발견됐다.

빈 라덴, 자와히리, 그리고 이들의 일행은 테러가 성공한 것을 보고 그들이 있던  곳에서 소개(疏開)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토라 보라 동굴 속으로 피난을 갔다. 12월, 아프간에 침공한 미군은 토라 보라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벙커 버스터 폭탄을 대거 투하한 후에 미군은 토라 보라 동굴 속을 수색했고 거기서 알 카에다의 고위 대원 18명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러나 빈 라덴과 자와히리는 사라져 버렸다. 이들은 파키스탄 쪽으로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 c ) 이상돈


로렌스 라이트, 타워가 다가온다 (2006년) 
진 힐리, 대통령이란 컬트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