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변호사, 소송, 그리고 법적 권리 (대한변호사협회지)
2008-02-21 00:37 1,928 관리자


무엇이 소송을 남발하게 하나 ? 

<서평> 토마스 버크, ‘변호사, 소송, 그리고 법적 권리’
Thomas F. Burke, Lawyers, Lawsuits, and Legal Rights
  (2002,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I.

변호사가 많은 미국에선 訴訟이 너무 많은 것이 큰 사회문제로 되어 있다. 1991년에 월터 올슨(Walter Olson)이 펴낸 ‘訴訟爆發’(The Litigation Explosion)이란 책은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당시 댄 퀘일 부통령은 이 책을 극찬하면서 소송남용을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訴訟濫用을 규제하려던 1990년대의 노력은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오히려 1990년대는 전에 보지 못했던 각종 소송이 연일 미디어를 장식했다.
한 나이든 여인이 맥도널드 드라이브 인에서 커피를 주문해서 무릎 사이에 놓고 있다가 엎지르는 바람에 허벅지에 화상을 입었다. 이 여인은 맥도널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1심에서 290만 달러 손해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비록 2심에서 배상액은 많이 줄었지만 이 판결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石綿 소송, 실리콘 유방 소송, 담배 소송 등 수없이 많은 集團訴訟이 제기되었고, 마치 운동경기 기록을 갱신하는 식으로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이 연거푸 내려졌다.
소송만 걸면 거액배상을 받아낸다는 통념이 팽배해져서 패스트푸드 때문에 살이 쪘다는 소송, 교수가 강의를 잘못해서 공부를 못하게 됐다고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 등 황당한 소송이 줄을 이었다. 놀이터에서 사고가 나면 배상을 하게 된 지방정부는 아예 놀이터를 없애 버렸고, 의료소송에 시달린 병원이 폐업을 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러자 툭하면 소송을 거는 풍토 때문에 미국 사회가 붕괴되고 있다는 개탄이 여기저기서 나왔다.

訴訟濫發은 ‘共同善의 몰락’

이런 모습을 보고 필립 하워드(Phillip Howard)는 소송 때문에 미국인이 자유를 상실해가고 있다고 ‘共同善의 몰락’(The Collapse of the Common Good)이란 책에서 지적했다. 신문과 TV는 집단소송으로 거부가 된 변호사들을 탐욕스러운 동물로 묘사하는 보도를 크게 다루었다. 법률평론가인 캐서린 크라이어(Catherine Crier)가 펴낸 ‘변호사를 반대한다’(The Case Against Lawyers), ‘소송폭발’로 유명해진 월터 올슨이 쓴 ‘변호사의 지배’(The Rule of Lawyers) 등 변호사를 고발하는 책이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런 책들은 소송이 난무하고 변호사가 법적 절차를 이용해서 私慾을 챙기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지만 과연 왜 이런 사태가 생겼나 하는데 대한 분석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런 점에서 웰슬리 대학의 정치학 교수인 토마스 버크가 쓴 이 책은 미국에서의 소송남용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II.

버크 교수는 일반적 통념과는 달리 미국인들이 소송을 마구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소송폭발’은 과장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통념이 생겨난 것은 불법행위 소송의 상대방인 기업, 의사 집단, 보험회사 등이 펼친 여론공세에서 기인하는 측면이 많다고 지적한다. 또한 저자는 소송을 부추기는 것은 미국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의 법률이라고 본다. 이 점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하는 핵심이다.
저자는 미국의 憲法構造가 다른 나라에 비해 소송을 보다 부추긴다고 본다. 미국 헌법은 분산된 정치권력구조를 담고 있기 때문에 公共政策과 관련한 소송이 많다는 것이다. 헌법구조도 그런데다 많은 정책이 소송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제정되고 있다. 소송을 부추기는 정책을 도입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동기가 있다.
첫째, 民權이나 雇傭平等 등에 관한 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이런 정책이 이를 적대시하는 사람들로부터 차단되기를 바라게 되는데, 이들은 소송이야말로 그 같은 정책목표를 적대세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둘째, 이런 입법을 추진하는 사람들은 소송을 통해 州와 지방정부를 통제할 수 있다는데 매력을 느끼고 있다. 셋째, 국민에게 새로운 세금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어떤 정책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 정책수립자들은 소송이야말로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정책수단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런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소송을 부추기는 법률이 많이 제정되었다는 것이다.
소송을 부추기는 이런 법률들을 개혁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첫째, 소송에 대한 代案은 결국 관료적 규제인데, 미국의 정치적 전통은 개인주의적이라서 관료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둘째, 公共政策을 對立當事者主義 절차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추세를 바꾸지 않는 한 이 같은 대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셋째, 이런 법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송에서의 원고집단과 피고집단을 공동의 이해관계에 따라 묶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넷째, 무엇보다 소송에 대한 대체수단은 불명확한 점이 많아서 선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소송에 대한 대안 마련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면서 저자는 1990년대에 소송을 줄이고 규제하려했던 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III.

본론에서 저자는 소송을 주요 정책수단으로 하는 법률의 제정, 소송을 억제하기 위한 입법적 노력의 실패, 그리고 소송개혁이 성공한 사례를 들고 있다.

저자가 소송을 부추기는 입법의 경우로 든 것은 1990년에 제정된 障碍人保護法(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이다.  이 법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 걸쳐 활발하게 전개된 새로운 형태의 장애인 인권운동이 반영된 것이었다. 1960년대-1970년대의 장애인보호정책은 장애인에게 주로 公的扶助와 의료혜택을 제공했던 데에 비해 이 새로운 법은 장애인이 일반인과 같이 사회활동을 하도록 했다. 이 법이 제정됨에 따라 건물과 대중교통시설이 장애인용 시설을 설치하게 되었다.
障碍人保護法의 핵심조항은 매우 간략하다. 새로운 공공시설과 대중교통시설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시설이 설치되어야 하며 기존의 이런 시설은 개수를 통해 장애인의 접근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법의 요건을 이행하지 않는 공공시설의 운영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이 발효하자 많은 비판이 제기됐다. 인구가 500명밖에 안 되는 아이오아州의 작은 마을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한 명도 없음에도 공공도서관에 6,500달러나 들여 휠체어  램프를 만들어야 했다. 버스회사와 기차회사들의 불만도 대단했다. 그러나 장애인 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시설은 소송을 각오해야만 했고, 실제로 많은 소송이 제기됐다. 그러다보니 이 법은 장애인을 보호하는 법률이기 보다 오히려 변호사에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법률이라는 빈정거림을 들었다.
이 법은 레이건 행정부 때 기초되었는데,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연방정부 예산을 줄이는 행정개혁에 몰두하고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비록 장애인 인권신장이 자신의 선거공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연방예산을 추가로 투입할 형편은 못되었다. 결국 연방정부는 자금을 주지 않고 의무만을 강제하는 규제(‘unfunded mandate’)를 도입한 것인데, 그런 법적 의무를 강제하는 수단으로 소송을 도입한 것이다. 의회와 행정부는 장애인의 행동권을 보장했다고 생색을 낼 수 있었지만 정작 그 집행은 소송에 미루어 버린 것이다.

저자가 두 번째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은 소송을 대체하기 위하여 캘리포니아州가 도입하려한 자동차 無過失保險(No-Fault Insurance)제도가 관계집단의 상충된 이해관계로 인해 실패한 경우이다.
  미국에서 매년 일어나는 수백만 건의 교통사고 중 2백만 건이 결국 소송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는 변호사에게 있어 큰 일거리이다. 無過失保險은 소송을 대체할 수 있는 장치로 개발된 것인데, 교통사고로 인한 손실을 사회적으로 분담시키고 당사자 간의 소송 보다 관료적 제도로서 이에 대처하려는 것이다. 1980년대 - 1990년대 초에 캘리포니아 주는 자동차 보험료의 급격한 인상으로 무보험 운전이 늘어나는 등 자동차 보험이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 이에 캘리포니아 州議會는 無過失保險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으니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소송에 시달리던 보험회사들은 無過失保險 제도의 도입을 지지했다. 이들은 변호사들 때문에 소송이 늘고 이로 인해 보험료가 올라간다고 홍보했다. 이에 대해 캘리포니아 주 재판변호사 협회(California Trial Lawyers' Association)는 無過失保險은 성실하고 조심스러운 운전자와 그렇지 못한 운전자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불공정한 제도라고 반박했다. 랠프 네이더가 이끄는 소비자 단체는 보험회사가 지지하는 제도는 믿을 수 없다면서 보험료 규제를 도입해 보험료를 인하하는 방안을 지지했다. 결국 無過失保險 도입안은 주민투표에서 패배하고 말았고, 소송은 교통사고 분쟁을 다루는 중요한 제도로 그대로 남아 있다.

저자가 마지막으로 드는 것은 소송을 억제하기 위한 개혁이 성공한 백신被害補償法(The Vaccine Injury Compensation Act)의 경우다. DPT는 매우 중요한 예방접종이지만 이로 인해 아주 드물게 쇼크사 등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1984년에 한 법원은 DPT 백신을 맞고 사망한 경우에 대해 제약회사가 보다 안전한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것은 과실이라는 이유로 113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백신 제조업체들이 경악했음은 물론이다.
몇몇 회사는 아예 백신 제조를 중단했고 또 어떤 회사는 백신 가격을 10배나 인상했다. 그러자 백신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백신 사고를 정부가 보상하는 백신피해 보상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이러 내용을 담은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이 법안이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비판하면서도 1988년 이에 서명했다. 
이렇게 탄생한 백신被害補償法은 백신피해자를 정부가 보상하도록 하고 이를 연방청구법원이 다루도록 했다. 백신피해에 대한 소송을 완전히 금지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백신접종와 관련된 소송 건수는 급속히 감소해 갔다. 이에 고무된 제약회사들은 새로운 백신을 개발하는 등 다시 백신 사업에 뛰어 들었고 보다 좋고 값싼 백신이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백신피해는 매우 독특한 사회문제이기에 정부가 개입해서 소송을 억제한 것이다.


IV.

저자는 오늘날 온갖 소송이 난무하는 미국의 현상은 사회가 썩고 있는 징조지만 위의 세 가지 예에서 보듯이 소송남용은 미국인의 책임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의 공공정책이 법원을 중심으로 놓고 수립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또한 미국 법원 체계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분산된 구조로 되어 있어, 소송이 많아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위의 세 가지 사례에서 보듯이 변호사들은 소송에 대한 대체수단을 도입하려는데 대해 저항했다. 변호사 단체 외에도 랠프 네이더 같은 소비자 운동가들은 소송을 그들의 중요한 행동수단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소송을 없애는데 미온적이었다. 
백신피해보상제도가 마련된 것은 석면 소송과 담배 소송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백신은 필수불가결한 것이기에 소송을 대체하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었다. 9ㆍ11 테러 이후 희생자보상기금(September 11th Victim Compensation Fund)을 마련하고 항공업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법률이 제정한 것도  9ㆍ11 문제를 소송에 맡길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요즘 미국을 달구고 있는 訴訟濫發에 대한 논쟁은 소송이 미국의 공공정책에서 차지하는 역할을 간과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미국의 헌법전통, 다양한 시민단체의 활동, 그리고 소송 변호사들의 역할 때문에 미국에 소송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사회정책적 관점에서 소송문제에 접근한 보기 드문 연구서이나 集團訴訟 같은 문제점에 대한 분석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게일 쉬슬러, 조국과 해병대를 위하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