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데이비드 프럼 – 리차드 펄, 악(惡)에 종지부를 (2003년)
2013-07-27 22:19 1,841 이상돈


데이비드 프럼 – 리차드 펄,  악(惡)에 종지부를 (2003, 랜덤하우스, 284쪽, 25.95 달러)

David Frum and Richard Perle, An End to Evil (2003, Random House, 284 pages, $25.95)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일단락된 후에 나온 이 책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것인가’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저자 데이비드 프럼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을 지냈고, 리차드 펄은 국방부 국방정책자문위원장을 지냈다. 이 책이 나왔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정부에서 물러난 후였다. 리차드 펄은 1980년대부터 ‘네오콘’ 그룹을 이끈 인물로, 미국의 대외정책이 보다 공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시작인데도 워싱턴에서는 승리를 향한 의지가 이미 쇠퇴하고 있다고 화두를 연다. 저자들은 비록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졌지만, 알 카에다, 헤즈볼라, 그리고 하마스는 건재하며, 이란과 북한은 핵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1991년 걸프 전쟁에서 후세인 정권을 다룬  방식이 잘못돼서 다시 전쟁을 하게 됐다고 본다. 당시 CIA는 이라크에서 시아파가 세력을 늘리게 되면 사우디가 곤란해 진다고 생각했고,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과 브렌트 스카우크로프트 안보보좌관, 그리고 콜린 파월 합참의장은 미국이 사담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로 사담 후세인은 살아 남았고, 후세인은 유엔의 결의를 무시하고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했으며, 결국 미국은 다시 전쟁을 해야만 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미국을 겨냥한 테러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강력하게 대처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9-11이 발생했다.

또 다른 악(惡)의 축(軸 : axis)은 이란과 북한이다. 2002년 6월 초, 이란 정부는 헤즈볼라, 하마스, 이슬람 지하드, 그리고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 사령부 대표를 테헤란으로 초청해서 비밀회합을 가졌다. 이란은 비밀리에 핵 무기 개발요원을 북한에 보내서 북한의 기술을 배워오도록 했다. 9-11 테러 가담자 모하메드 아타가 이라크 정보요원을 체코에서 만났다는 첩보도 있다. CIA와 FBI는 이라크가 9-11 테러와 관련이 없다고 보지만, 알 카에다 지도자 자와히리가 바그다드를 방문해서 30만 달러를 얻어갔음이 알려져 있다.

9-11 테러범들이 미국에 어떻게 입국해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를 조사했더니 미국 이민국이 제대로 이들을 처리하지 않았으며, CIA도 이들에 대한 경고를 이민국에 제때에 알리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9-11 후에 제정된 애국법(The Patriotic Act)은 테러 혐의자로 의심이 가는 사람들을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두었다. 미국은 자유로운 사회이지만, 자유를 지키기 위해선 스스로 감시를 해야 한다. 미국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약 2,000개 있는데, 그 중 80%가 과격한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자선을 내세운 이슬람 단체가 사실은 테러 조직을 위한 모금을 하는 경우도 많다. 미국에 만연한 다문화주의도 테러와의 전쟁을 하는데 있어 장애가 되고 있다.

저자들은 미국이 당면한 큰 문제는 이란과 북한이 개발하고 있는 핵무기이며,  이라크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시리아의 태도도 문제고, 석유자원 때문에 미국은 과격한 와하비 교단과 연합한 사우디 정부를 지지해 온 것도 문제라고 본다. 서유럽 국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가정에서 ‘명예살인’을 저지르고 있음에도 유럽 정부와 언론을 이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등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점증하고 있는 위험에 대해 자신들을 기만하면서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역시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테러와의 전쟁은 새로운 형태의 전쟁인데도, CIA와 FBI, 그리고 국무부는 과거의 타성과 관료주의에 사로 잡혀 있다. 사담 후세인 정부를 전복하려 시도했던 CIA 요원 로버트 배어는 오히려 CIA를 떠나야만 했다. 9-11 테러는 CIA와 FBI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음을 잘 보여주었다. 휴먼 인텔리전스 능력을 상실한 CIA가 아랍권 국가의 정보기관의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보니, CIA 자체의 정보판단 능력도 위기에 달했다. CIA는 윌리엄 케이시 같이 관료주의를 탈피한 인물이 이끌어 나가야만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국무부 또한 심각한 관료주의에 물들어 있어서 새로운 안보환경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무부는 항상 유럽 등 우방국의 입장과 여론을 핑계 삼아 미국의 대외정책이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려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저자들은 1990년대가 미국 대외정책에 있어서 환상에 젖었던 10년이었다고 지적한다.  1991년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의 동의를 얻어 다국적 군을 구성해서 걸프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후였다. 유엔의 승인을 얻어야만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관례가 생긴 것이다. 미국은 아이티, 코소보 등에 군대를 보낼 때엔 코피 아난이 이끄는 유엔 사무국의 동의를 구해야만 했다. 9-11 테러가 있은 후 나토 동맹국들은 조약상 의무에 따라 미국을 지지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전쟁노력을 저해했다. 프랑스는 노골적으로 미국의 전쟁정책을 방해했다.

냉전 시대에 소련의 위협에 대처해야 했던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도움이 없이는 자신들을 스스로 방어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자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도움이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게 됐고, 오히려 미국의 강력한 힘을 질시하게 됐다.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은 문명 세계를 위해서이고, 따라서 미국은 문명 세계의 도움을 기대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문명 세계가 미국을 돕지 않는다면, 별다른 방도가 없다. 미국은 혼자서 갈 길을 가야 한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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