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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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라퀘, 몰락 그 후 (2011년)
작성일 : 2013-08-01 09:37조회 : 2,207


월터 라퀘, 몰락 그 후 (2011년, 세인트 마틴, 322쪽, 26.99 달러)

Walter Laqueur, After the Fall (2011, St. Martin’s, 322 pages, $26.99)

문명비평가 월터 라퀘가 2006년에 <유럽의 마지막 날들>을 냈을 때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지나치게 비관적”이라고 비판적 논평을 내보냈다. 그 후 몇 년이 흘렀는데, 그의 견해가 옳았음은 이제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11년에 나온 이 책에서 라퀘는 유럽의 몰락은 필연적이고, 이제는 그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알아왔던 유럽은 사라지고 있으며, 유럽은 결국 동아시아의 부유층이 관광을 하러 오는 박물관이나 문화 테마 파크로 전락할 운명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유럽이 쇠퇴하는 것이지 붕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로버트 쿠퍼가 말한 대로 유럽은 포스트 모던한 사회이지만, 포스트 모던 사회가 정글의 법칙이 통하는 프리 모던하거나 모던한 세계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본다.

저자는 오늘날 유럽이 겪고 있는 불황은 문제의 일부이며, 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이 실패했다고 본다. 2차 대전 후 유럽의 엘리트는 빈부차를 해소하고 필수적인 사회 서비스를 정부가 제공하는 민주적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는데, 이 같은 복지국가 개념을 도입한 것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경제가 영구적으로 성장할 것이란 전제하에서나 가능하기 때문에 ‘폰지 사기’(Ponzi scheme)와 유사하다. 오늘날 유럽형 복지는 너무 비싸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미국은 부족한 재원을 갖고 세계에 지나치게 확장해서 위기를 맞았고, 유럽은 복지로 인해 큰 부담을 안고 있어 위기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2008년 위기의 주된 원인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은 엄청난 부채 때문에 큰 위기를 맞은 것이다.

유럽이 통합되었다고 하지만 대부분 유럽인들은 자기가 태어나서 살아온 나라를 고국으로 생각한다. 부유한 유럽국가는 그렇지 못한 유럽국가가 무책임하게 행동할 때 그런 나라를 도우려 하지 않는다. 63세에 은퇴하는 독일 사람들이 53세에 은퇴하는 그리스 사람들을 도와야 할 이유는 없다. 2007년에 아이슬란드는 심각한 금융위기에 빠졌고, 미국에선 베어 스턴스와 레만 브라더스가 무너졌다. 그리고 그리스 위기가 터졌다. 재정이 취약한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은 리비아 가다피 정부의 돈 줄에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유럽의 대외정책은 부적절할 수 밖에 없었다. 2010년 영국의 국가부채는 GDP의 63%에 달하며 개인부채는 3조 달러나 됐다. 보수당 정부는 공공부분 직원 50만 명을 감원하고 사회 서비스를 감축하기로 했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 무너지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 새롭고 안전한 세계가 오는 줄 알았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실패하는 국가는 늘어가고 있으며, 세계는 불안정해지고 있다. 재정압박을 받고 있는 영국은 군비를 대폭 축소해서 해외 작전능력을 거의 상실해가고 있다. 러시아는 석유 자원에 힘입어 단기간에 강국으로 부상했고, 서유럽은 러시아의 에너지에 의존하고 있다. 푸틴은 2020년까지 러시아가 강국이면서도 가장 역동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독일 등 서유럽 국가들은 자신들이 추구해 온 다문화 사회통합이 실패했음에도 그것을 용기 있게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서유럽에 거주하고 있는 무슬림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가고 있고, 러시아 또한 마찬가지다. 한편 오늘날 가장 관용적이라고 생각되어 온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네덜란드에서도 극우 정당이 지지를 넓혀가는 등 무슬림에 대한 반감은 유럽에서 증가하고 있다.

유럽은 인구학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쇠퇴하고 있다.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증가하는 무슬림 주민들은 교육수준이 낮아서 오히려 국가의 복지에 의존하고 있다. 오늘날 브러셀에서 태어나는 신생아의 55%는 이주자 자녀들이다. 독일의 루르 지역은 10~20년 내에 독일인 이외의 인종이 다수를 점하게 될 것이다. 영국의 버밍햄과 라이캐스터도 2020년까지 이민자가 인구의 과반수를 점하게 될 것이며, 런던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오늘날 유럽의 교도소에서 젊은 무슬림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놀랄 정도로 높다. 이들은 강간죄를 많이 저지른다. 무슬림 갱단들은 강간을 통과의례로 할 정도다. 독일 베를린의 판사였던 커스틴 하이지그는 다문화주의를 열렬히 주장했었다. 그녀는 베를린의 터키계 거주지역에서 발생하는 청소년 범죄를 보고 교도소에 수감된 무슬림 청소년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된 하이지그 판사는 좌절한 나머지 2010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럽 모델은 복지국가인데, 사실 지난 20년 동안 유럽국가들은 복지 혜택을 감축시켜 왔다. 그러나 사람들이 갈수록 오래 살고 의료 서비스가 갈수록 비싸지고 있으며,  경제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금을 올리는 것도 방편이지만 북유럽 국가들의 세금 수준은 이미 너무 높다. 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인상하면 이들은 다른 나라로 탈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1996년부터 복지제도를 개혁해온 스웨덴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제적 어려움을 덜 겪고 있음은 참고가 될 만하다. 2008년 경제위기 후 유럽국가들은 복지지출을 줄여나가고 있는데, 당연히 향유할 것으로 알았던 서비스를 박탈당하게 될 유럽인들은 지금까지의 그들과는 달리 폭력적으로 변할 수도 있다.

유럽은 이제 변방이 되어 가고 있다. 유럽은 저렴한 노동력으로 무장한 나라들과 경쟁을 할 수 없다. 오늘날 유럽의 병(病)을 치유할 방안은 다시 경제적 모멘텀을 회복하고 유럽국가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붕괴와 연착륙은 큰 차이가 있는데 유럽이 어느 길을 갈지 두고 보아야 한다. 유럽이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있을지, 유럽은 이제 단지 ‘지리적 명칭’에 불과하게 될지, 그것이 문제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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