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스티픈 킹, 돈이 고갈되면 : 풍요한 서방의 종말 (2013년)
2013-08-06 21:49 1,943 이상돈


스티픈 킹, 돈이 고갈되면 : 풍요한 서방의 종말 (2013년, 예일대 출판부, 287쪽,  30달러)

Stephen D. King, When the Money Runs Out : The End of Western Affluence
(2013, Yale University Press, 287 pages, $ 30.00)

영국계 은행 HSBC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저자가 펴낸 이 책의 부제는 ‘풍요한의 서방의 종말’이다. 유럽과 미국이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안고 있어서 이제 더 이상 지금처럼 풍요하게 살 수 없으니 이제부터라도 정신을 차리자는 말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대외 요소에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이 있는데다 우리도 공공부채와 개인부채가 위험수위에 이르고 있으니 저자의 쓴 소리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이야기이다. 저자는 20세기 후반부에 서방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서 사람들은 풍요한 생활을 향유하고 있으며 또한 이런 세월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그런 기대는 충족되기 어렵다면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르헨티나와 일본

책은 아르헨티나가 어떻게 해서 오늘날 이 지경에 이르렀나를 설명하면서 시작한다. 19세기 말에 아르헨티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독일과 비슷했다. 농업으로 번영을 누린 아르헨티나는 농업에 안주해서 산업화가 늦었고 그나마 뒤늦게 시작한 제조업도 국내수요를 충족하는데 그쳐 국제경쟁력을 갖지 못했다. 2차 대전 후에는 페론의 파시즘 독재와 포퓰리즘 정책으로 쇠락하고 말았다. 20세기 들어 경제적 곤란, 정책 실패, 사회의 양극화, 자급자족 경제 추구, 산업 다변화 실패, 그리고 궁극적으로 정치적 불안정으로 인해 가망 없는 쇠락의 길을 간 것이다. 문제는 아르헨티나만 이렇게 쇠퇴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 일본은 가장 막강한 경제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1991년부터 일본은 상대적 쇠락의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최고점 때 미국의 85%에 해당했는데, 이제는 72%로 떨어졌고, 1989년에 대비해서 주가 총액은 3/4이 증발했고 지가(地價) 총액은 60%가 사라졌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초기에 일본 정부가 이자율을 인하하지 못하고 재정을 통해 경기를 부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됐다. 그러나 일본의 불황은 일본이 그 이상의 중병에 걸려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일본 기업은 투자를 기피하며 나이 들어가는 인구는 소비를 절약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공공지출을 증가했지만 그 대부분이 시마네 현(縣) 하마다에 건설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다리’ 같은 사업에 소모되어 재정적자만 증가시키고 말았다.


미국과 서유럽

21세기 들어서 미국과 서유럽의 경제 성적표는 우울하다. 신경제(New Economy)가 새로운 경지를 열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경기침체가 닥쳐 오자 정책결정자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과감하게 재정을 지출하고 이자율을 낮추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주택가격 거품과 그것의 파열로 인한 은행의 도산이었다. 2007년~2011년간 미국에선 은행 500개가 파산했다. 2006년에 정점을 찍은 미국의 주택가격은 계속 하락해서 2013년에는 고점 대비 35%가 떨어졌다. 금융기관은 휘청거리고 서브 프라임 융자를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은 집을 잃어 버렸다.

서방국가의 복지 지출도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다. 영국에서 사회복지를 주창한 베버리지 보고서가 나온 1940년대에 의료에 대한 공공지출은 GNP 대비 1%였다. 영국에서 국가의료서비스가 설립된 1948년에 그 비율은 2%가 됐고, 1969년에는 4%에 달했다.  마가릿 대처가 총리가 된 1979년에는 그것이 5%가 됐고, 2010년에는 8%가 됐다. 그렇다고 영국에서 모든 질병이 정부에 의해 제공되는 것은 아니지만 재정지출이 이렇게 증가한 것이다. 1940년대에 평균적인 영국 남성이 벌어 들이는 전체 소득의 14%가 연금지급으로 소요됐지만 1980년대 들어 그 비중은 20%로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에 연금 수급자는 680만 명에서 1000만 명으로 늘었다. 20세기 초에 미국 남성의 평균 연령은 60세였는데, 지금은 그것이 80세이다. 100년 전에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일하지 못하게 늙으면 죽었지만 이제는 60세 전후에 은퇴하는 사람들이 죽기 전에 긴 세월을 은퇴자로서 살고 있다. 문제는 어느 나라도 이런 상태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영국 재무부는 영국의 연간 재정적자가 2012년에 GDP 대비 1.4%로 안정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2012년 영국의 재정적자는 GDP 대비 9.3%에 달했다. 또한 GDP 대비 40%에 달할 것으로 기대했던 영국의 정부부채는 2012년에 70%에 달했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빌려서 푼다고 해서 경기가 돌아간다는 보장은 없고 정부 부채가 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며,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긴축을 하면 경기가 더 침체에 빠지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정부 정책의 실패

밀튼 프리드먼은 미국의 대공황이 시중에 돈이 부족한 상황에 정부가 유동성을 공급하지 못해서 야기됐다고 설명했다. 프리드먼의 이 이론은 1980년대 초반부에 영국의 대처 정부와 미국의 레이건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동원한 긴축정책의 기초가 됐다. 그래서 한동안 정부 재정을 통한 경제회복을 주장했던 케인스의 이론은 더 이상 설 곳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2008~09년간 급격한 경제위기가 닥치자 케인즈 이론은 다시 돌아왔다. 돌이켜 보면, 정책 담당자들은 케인즈식(式)의 경제 구출작전에 익숙해져 있고, 이로 인해 서방의 재정적 몰락을 가속화시켰다.

1987년 주식 대폭락이 있자 새로 미국 연방준비제도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앨런 그린스펀은 이자율을 낮추고 은행가들에게 미국 정부가 은행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은 1990년대에 있었던 침체를 극복했고, 2000년의 IT 주식시장 파열에도 적응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미국 경제는 항상 좋을 것이라는 헛된 믿음이 생겼으니, 정책 결정자들이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 것이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은 감세와 정부지출 증가로, 영국은 공공부문 지출증가로 인해 정부 세입 감소를 초래했다. 좋은 시절에 저축해서 나쁜 시절에 대비해야 한다는 기초적인 재정 원리를 미국과 영국은 아예 잊어 버린 것이다. 정부 정책이란 약에 의존하다 보니 이제 정부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된 형상이다.

오늘날 미국, 영국 등 많은 나라들은 저(抵)이자율의 덫에 빠져 있다. 항구적인 저이자율은 경제회복의 조짐이라기 보다는 경제실패사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2008년 경제위기 후 미국 정부는 대대적인 경기부양책(stimulus)을 폈고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정책을 폈다. 하지만 2011년 미국 경기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양적 완화는 화장(化粧)을 하는 효과만 있으며 경제를 살리지는 못한다. 양적 완화로 인한 이자율 저하는 연기금에 나쁜 영향을 준다. 더구나 양적 완화는 믿을 수 어려울 정도의 저이자율과 역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정부부채를 초래한다. 일본의 경험이 보여주듯이, 이 두 개의 함정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양적 완화가 경제회복을 가져오지 못하면 그것은 단순히 진통제 역할 만 한 것이기 때문에 그 부작용은 엄청날 것이다.

역사의 교훈

오늘날 케인즈식 처방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학자는 폴 크루거먼이다. 크루거먼은 오늘날 미국이 처한 상황은 1930년대와 유사하다면서, 강력한 재정적 지출만이 미국 경기를 살리고 세계 경제를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크루거먼은 오늘날 미국 경제가 1930년대와는 완전히 다름을 간과하고 있다.

2000년 들어서 미국 고용에 있어 큰 지각변동이 있었다. 세계화로 인해 미국에선 제조업과 교통분야에서 200만개 일자리가 사라졌고, 대신에 건설분야에 200만개 일자리가 증가했다. 영국에서도 일자리 증가는 금융업, 건설업, 그리고 정부분야 뿐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터지고 난 후에 두 나라의 직업시장은 새로운 변화에 부응할 만큼 유연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미국과 영국에는 온건한 인플레이션이 있었는데, 그것은 생활품목의 가격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중국 등 새로 등장하는 경제권에서의 수요가 늘어서 생활품목의 가격이 불경기 중임에도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생활필수품의 가격 인상으로 인해 불경기로 가뜩이나 어려운 계층의 생활고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

크루거먼이 무시한 또 다른 요소는 정부의 재정적자 상황이다. 루스벨트가 대통령에 취임해서 뉴딜 정책을 시행했는데, 사실 루스벨트는 전임 후버 대통령으로부터 매우 건전한 국가재정을 인수받았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때와는 전혀 다르다. 루스벨트 재임시 미국의 재정적자가 가장 악화했을 때 그것은 국민총소득 대비 최고 9%에 달했다. 하지만 미국의 2012년도 재정적자는 국민총소득 대비 12%에 달해있다. 1934년에 미국의 공공부채는 국민총소득의 34%에 달했지만, 2012년에 미국의 연방정부, 주정부, 지방정부의 부채를 합친 총공공부채는 국민총소득 대비 100%에 이르고 있다. 오늘날의 이러한 경제상황은 과거에 없었던 일이다. 

신뢰의 붕괴

오늘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정부, 중앙은행, 그리고 시장이 모두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은행은 대중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과거에는 은행을 이용하는 고객이 은행을 잘 알았다. 하지만 오늘날 은행은 고객에게 주택을 살 돈을 융자해 주고 그 주택담보를 증권화해서 다른 금융기관에 팔아 넘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노르웨이의 연기금이 미국 애리조나 주의 주택담보 금융소비자에게 돈을 빌려주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그리스, 스페인 등 남부 유럽국가 정부는 외국 은행으로부터 많은 돈을 무책임하게 빌렸는데, 만일에 그리스가 빚을 갚지 못하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금융업이 세계화된 데서 유래하는 위험한 현상인 것이다.

20세기 후반기 반세기 동안 채권자와 채무자는 소득과 생활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그 과실(果實)을 행복하게 향유했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지 않으면 채권자와 채무자는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복잡한 요소가 개입됐다. 중국은 미국에 대한 큰 채권자이고, 북유럽국가들은 남유럽국가들에 대한 채권자이다. 과거에는 빚을 안 갚는 채무자를 감옥에 보내곤 했다. 하지만 경제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곤경에 처한 채무자들을 제재하기는 어렵고, 채무자가 국가라면 더더구나 그렇다. 오늘날 독일과 일본은  국내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남유럽 국가들은 외국에서 돈을 빌리는 수 밖에 없다.

경제가 나빠지면 돈이 고갈되고 그러면 실망과 곤경, 그리고 분노가 생긴다. 2012년 11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선 담보 잡힌 집을 잃어 버린 53세 여성이 자살을 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2008 - 2012년간 스페인에선 집주인 40만 명이 은행 빚을 못 갚아서 주택을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부유한 사람과 가난한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어 문제가 더 복잡해 지고 있다. 급격한 성장을 한 중국은 도시와 시골 간의 빈부격차가 극심하다. 미국의 경우는 2005년 ~ 2007년 기간 중 상위 소득자 20%의 세후(歲後) 소득이 나머지 80%의 소득 보다 더 크다. 1979년 미국의 상위 소득자 1%의 세후 소득은 전체 미국인 세후 소득의 10%였는데, 2007년에는 그것이 20%가 됐다. 영국에선 상위 1%의 세후 소득이 전체 영국인 세후 소득의 15%에 달하고 있다. 이렇게 부(富)가 편중되면 다수 국민의 생활수준이 저하되기 때문에 사회 전체에 나쁜 영향을 준다.

‘세대간 전쟁’

이런 상황에서 노령화에 따라 복지부담이 커지면 ‘세대간 전쟁’(intergenerational war)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리스, 이탈리아, 독일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다. 오늘날 미국의 50개 주 중에 34개 주가 재정자립도 80%에 미달하고 있는데, 가장 큰 원인은 공공분야에서 주 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연금 부담 때문이다.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가 가장 상황이 나쁜데, 특히 일리노이 주는 ‘다음 번 그리스’(The Greece Next Door)라는 말마저 나돌고 있다.

연금혜택이 삭감되지 않는 한 재정위기가 해소될 가능성은 없는데, 당사자들이 거세게 반대하고 선거에 나가야 하는 정치인들은 이들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해결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대공황이 있었던 1930년대에는 정부가 항구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막대한 연금 부채 같은 것은 없었다. 기득권이 된 연금 개념은 20세기 후반기 복지국가가 만들어낸 현상이다.

‘반(反)이상향’을 피하기 위해서

20세기 말에 세계화와 규제완화로 인해 시장이 승리하는 시대가 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21세기에 우리는 ‘반(反)이상향’(Dystopia)를 맞고 있다. 경제성장이란 장미 빛이 없어지자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유럽에선 극우정치 현상이 고개를 들고 있다.

19세기 말 유럽 역사를 보면, 장기 침체로 인해 국가주의와 인종주의가 일어났고, 그로 인해 세계는 무한한 비극을 경험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반이상향 상황을 피해야 한다. 세계화로 인해 채권 채무 관계로 세계 각국이 얽혀 있어서 한 나라가 문제를 풀기가 어렵다. 그리스가 채무를 갚지 못하면 채권자들이 곤란해 질 것이다. 유로존이 붕괴하면 독일 경제는 심각한 위험에 처할 것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재정이 통합하지 않으며 화폐가 통합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구속력 있는 재정협정이 있지 않는 한 유로존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답은 지속적인 긴축재정(austerity) 뿐이다. 이러한 노력은 장기적으로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취했던 것 같은 균형재정 노력이 필요하다. 정부는 매년 적자를 줄여 나간다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대간의 이해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회계약’이 필요하다. 자본이 국경을 넘어서 쉽게 이동하다 보니 오늘날 자본이 잘못 배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금융기관이 비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경우에 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국경을 넘어 활동하는 은행을 보다 효과적으로 규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경제학자들에게도 적절한 교육을 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법이 적용되지 않는 ‘정글의 세계’인 것처럼 알고 있는 사람들을 재교육해야 한다. 근자에 경제학에서 수학 모델과 엔지니어링을 강조하고 경제사를 백안시한 것도 오늘날의 경제위기를 불러 온 원인 중의 하나다. 오늘날 대학에선 경제에 관한 역사를 가르치지 않으며 전공교수도 없다시피 하다. 경제학자들이 수학 모델로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것 같이 행세하더니 오늘날 이 같은 파멸상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의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것은 환상이었다.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와 힘든 싸움을 해야 하다.

( c ) 이상돈


루 캐논 – 칼 캐논, 레이건의 제자 (2008년) 
월터 라퀘, 몰락 그 후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