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발리 나스르, 필수적이지 않은 나라 (2013년)
2014-02-01 22:00 1,951 이상돈


발리 나스르, 필수적이지 않은 나라 (2013, 더블데이, 300쪽, 28.95달러)

Vali Nasr, The Dispensable Nation (2013, Doubleday, 300 pages, $28.95)

존스 홉킨스 대학 국제학대학원장인 발리 나스르는 이란 출신으로 중동 문제에 대한 많은 저술을 내어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자 가족과 함께 미국에 정착한 그는 터프트 대학에서 공부하고 MIT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2006년에 펴낸 ‘시아의 부활’(The Shia Revival)에서 그는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이슬람 시아파(派)의 종주국인 이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을 경고했다. 나스르는 카터 행정부와 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무차관보와 주(駐)독일 대사를 지낸 리차드 홀부르크를 2006년에 처음 만났고, 홀부르크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힐러리 클린턴 캠프에 가담하자 함께 참여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클린턴을 국무장관에 임명했고, 홀부르크를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문제 특임대사로 임명했다. 홀부르크는 나스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이렇게 해서 나스르는 오바마 정부 초기에 중동정책에 간여하게 됐다. (클린턴 장관은 홀부르크를 국무차관으로 임명하고자 했으나 오바마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나스르는 홀부르크 대사를 도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문제를 다루었으나, 홀부르크가 2010년 12월에 별안간 사망하자 그만 두었다. 홀부르크 대사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구상을 끝내고 오바마를 면담하기를 기다렸으나 건강을 해쳐서 갑자기 사망했고 특임대사실은 폐쇄되었다. 저자는 홀부르크의 때이른 죽음으로 미국은 이 지역의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상실했으며, 오바마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이란, 이라크 문제를 미숙하게 다루어서 세계 속에서 미국의 지위를 훼손했다고 이 책에서 주장한다. 부제 ‘미국 대외정책 쇠퇴하다’(American Foreign Policy in Retreat)가 잘 보여 주듯이, 미국이 세계 질서에서 필수적인 국가가 아닌 상태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문제

오바마 1기 행정부에서 클린턴 국무장관과 홀부르크 대사가 미국의 대외정책을 이끌고자 했지만 홀부르크 대사는 실패했고, 클린턴 장관은 간신히 성공할 수 있었다. 이런 결과로 대(大)중동(Greater Middle East) 지역에서의 미국의 국익은 훼손됐다. 대외정책에 무지한 백악관 참모들이 중동 문제를 오직 국내정치에서의 당파적 관점으로 보아서 미국의 대외정책은 손상됐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은 세계의 크고 작은 문제를 풀어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난 필수불가결한 나라(‘indispensible nation’)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국내여론에선 대외정책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는데, 전략적 결정을 하기 보다는 여론을 만족시키는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세계를 이끌던 역동적인 미국은 사라졌고,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지쳐서 도망가는 강대국 신세가 됐다.

부시 행정부는 아프가니스탄 및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활동하는 알 카에다를 섬멸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나아지지 않았디.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나토군 사상자가 늘어나서 2006년에는 최고조에 달했고, 2008년 들어서는 탈레반이 다시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접경지대에 근거지를 두고 활동했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인도의 영향력으로부터 보호한다고 보아서 탈레반의 활동을 방조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끄는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마약거래로 돈을 버는 부족장들과 부패한 거래를 하고 있었고, 정부의 영향력은 수도 카불에 국한되고 있었다. 언론은 카르자이 대통령을 ‘카불 시장’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알 카에다에 승리하기 위한 필요적 전쟁”이라고 불렀다. 취임 후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병력을 증강해서 이라크에서 했던 것 같은 비정규전을 확대했다. 광활한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보내면 탈레반은 다른 지역으로 신속히 숨어 버려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비정규전이 성공하기 위해선 국가재건(nation-building)이 필수적인데, 그것은 너무나 많은 돈이 들어갔다. 전쟁이 장기화함에 따라 국내에서 부정적 여론이 일자 오바마는 “아프간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했다”면서, “2014년에 철군하겠다”고 발표했다. 2012년 1월, 오바마는 국방예산 축소를 발표하면서, “군사력을 동원한 국가재건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정책변화는 급격한 것이라서 미국을 장기 전략을 갖고 있지 못한, 신뢰할 수 없는 나라로 만들었다.

리차드 홀부르크와 힐러리 클린턴

홀부르크는 군사적 해결에 의존하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접근법이 실패할 것으로 확신했다. 홀부르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카르자이 정부와 탈레반 사이에 화해를 가져와야만 미군이 철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국방부와 CIA는 탈레반과의 대화는 테러를 용인하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오바마 정부 내에선 클린턴 장관만 외교적 해결을 주장했다. 백악관 참모들은 아프가니스탄 정책을 논의할 때 클린턴 장관과 홀부르크 대사를 소외시켰다.

백악관은 클린턴 장관의 인기가 올라갈 가능성을 경계했고, 클린턴 장관을 소외시키고 현지 대사들에게 직접 지시를 했다. 홀부르크 대사가 사망하자 클린턴 장관은 클린턴 대통령 시절에 비서실장을 했던 존 포데스타를 임명하고자 했으나 백악관은 이를 거절했다. 클린턴 장관은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대해 이란과 협의하자고 제안했으나 백악관은 핵 문제가 걸려 있는 한 이란과의 협의는 불가능하다고 잘라버렸다.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사라졌고, 외교적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미군이 철수하면 아프가니스탄은 혼미한 상태에 빠져 버릴 것이 확실하다. 

파키스탄

탈레반은 2008년~2010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대공세를 폈는데, 파키스탄에서의 준비가 없이는 이러한 대규모 공격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무샤라프 대통령은 탈레반을 키운 장본인이지만 9-11 테러 후에 파키스탄은 미국과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샤라프에 이어서 대통령이 되고자 한 베나지르 부토는 탈레반을 공공연하게 비판했는데, 결국 파키스탄 내 탈레반에 의해 암살됐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인도에서 공부한 카르자이 대통령을 친(親)인도 성향으로 생각하고 좋아하지 않는다.

백악관, 국방부, 그리고 CIA는 파키스탄이 탈레반과 관계를 끊고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홀부르크 대사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관계를 정상화하기 전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 사람들은 미국이 파키스탄 영토에서 군사작전을 하거나 무인항공기를 동원해 공격하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클린턴 장관은 홀부르크 대사가 권고한 대로 파키스탄과 외교적 접촉을 늘렸으나 국방부는 이에 관심이 없었다. 2011년 11월 26일, 탈레반을 쫓던 미군과 아프간 정부군이 파키스탄 국경에 도달하자 파키스탄 국경 수비대가 아프간 정부군 방향으로 사격을 했고, 그러자 미군기와 헬기가 파키스탄 진지를 맹폭해서 파키스탄 군인 24명이 사망했다. 이 사건으로 파키스탄과 미국의 관계는 매우 악화됐다. 미국이 파키스탄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는 동안 그 공백을 중국이 메워가고 있다. 미국은 파키스탄과의 외교에서도 실패하고 있다.

이란

이란의 핵 개발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과장된 위협, 잘못된 전제, 그리고 지나치게 협소한 논리로 구성돼 있는데, 미국이 베트남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빠진 것도 바로 이런 논리 때문이었다. 미국은 이란을 지난 30년 동안 적대적으로 무시하는 전략을 써 왔다. 이란은 이라크에서 미군을 상대로 한 공격을 지원했고, 과격한 팔레스타인 집단을 지원해서 이스라엘을 위협해 왔다. 이란이 핵 무기를 갖게 되면 미국은 이란을 공격할 수 없게 된다.

9-11 테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때 이란은 미국을 잠시 도운 적이 있다. 이란은 미국이 북부 연합군을 지원해서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데 힘을 보탰고, 추락한 미군기 조종사 구조를 돕기도 했다. 이란 지도자들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이해를 같이 했지만 미국과의 협력에는 선을 그었고, 얼마 후 부시 대통령은 이란을 ‘악(惡)의 축’이라고 선언했다. 2003년 들어서 이란은 미국에 대해 양국간 모든 문제를 다룰 협상을 제안했다. 개혁성향의 카타미 이란 대통령은 헤즈볼라에 대한 지원도 중단할 수 있다고 미국에 대화를 제의했으나, 부시 정부는 이를 간단하게 거부했다. 부시 정부의 강경파들은 이란이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잘못되어 갔고, 이란은 오히려 강해졌다.

오늘날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은 미국에게 큰 고민이 돼 있다. 이란은 핵 무장을 통해 사우디를 포함한 전 아랍권의 패자(覇者)가 되어 이스라엘과 미국을 견제하고자 한다. 미국은 이란의 핵 무장을 절대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2005년에 카타미 후임으로 강경한 아마디네자드가 이란 대통령이 됐다. 부시 정부는 이란이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이는 이란으로 하여금 항복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사우디와 아랍 에머레이트는 미국이 이란을 파괴해 주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대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경제제재 밖에 없었다.

2009년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가 재선에 성공했다. 테헤란 등 대도시에선 수백만 군중이 거리에 나와서 부정선거에 항의를 표시했다. 체제에 위협을 느낀 이란 정부는 진압에 나섰고 시위는 잦아 들었다. 그리고 그 해 9월 제네바에서 미국, 유럽 국가, 그리고 이란이 회의석상에 자리를 같이 했다. 미국은 이란이 갖고 있는 저농축 우라늄 물량의 80%에 해당하는 1.2톤을 러시아에서 처리한 후 제3국에서 연료봉으로 사용토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으나 이란은 이를 거부했다. 외교 채널을 상실한 오바마 정부는 경제제재에 기대는 수 밖에 없었다. 유엔에서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이끌고 가기 위해선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다. 오바마가 그루지아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개입에 침묵하고, 러시아가 서유럽에 천연가스 공급을 늘리고 중국이 중동 석유에 대한 접근을 늘릴 수 있게 된 데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형식적인 경제제재를 유지하기 위해 미국이 양보를 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실효성도 없는 이란 제재를 위해 더 큰 라이벌인 러시아와 중국을 돕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아마추어 외교는 2010년에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바마는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이란과의 조정을 부탁했다. 두 사람은 테헤란을 방문해서 “이란은 저농축 우라늄 1,200 Kg을 반출하고 대신에 20% 농축된 우라늄을 받아 들인다”는 내용의 테헤란 선언을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오바마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미국은 룰라와 에르도안이 이란과 협상을 이루어내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의 태도에 불쾌해 진 터키와 브라질은 유엔안보이사회 결의에서 미국의 입장에 반대표를 던졌다. 2011년 국제원자력기구는 이란 핵 개발의 군사적 목적에 대한 경고 수준을 높인 보고서를 냈다. 이란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실패한 것이다.

이라크


2007년 부시 정부는 이라크에 병력을 증파해서 혼미에 빠진 상황을 안정시키고 시아, 순니, 그리고 쿠르드가 골고루 대표된 이라크 정부를 탄생시켰다.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는 2011년까지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약속했다. 2011년 12월 18일, 미군 지휘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미군을 완전히 철수시켰다. 이에 앞서 말라키 이라크 총리는 백악관을 찾아가서 오바마를 만났다. 말라키는 순니파(派)를 대표해서 내각에 참여한 “알-하세미 장관이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면서 오바마에게 의견을 구했다. 오바마는 “그것은 이라크의 국내문제”라고 답했다. 말라키는 그것을 미국의 동의로 해석했다.

레온 파네타 국방장관이 바그다드 공항에서 미군 철수를 기념하는 행사를 하던 순간에 이라크 군 병력이 알-하세미 장관의 집을 포위하고 급습했다. 하지만 낌새를 알아차린 알-하세미는 북쪽 쿠르드 지역으로 피신한 후였다. 그러자 이라크의 순니 지역은 자치권을 주장하면서 반발을 시작했고, 알 카에다는 그 후 몇 달 동안 이라크 전역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해서 수백 명이 죽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섣부른 한마디로 인해 2007년에 부시 정부가 어렵게 이룩한 이라크 내 파벌간 조정이 무너져 버렸고, 이라크 사태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라크 국민들은 말라키가 순니를 대표해서 총리가 된 것은 미국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말라키는 이란의 선택이었다. 이란 최고 지도자 카메이니는 이라크 내의 시아파 지도자들에게 말라키를 지지하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오바마는 “이라크에서 목적을 달성하고 철군한다”고 밝혔지만, 헤즈볼라 대표 하산 나스랄라는 “미국이 이라크에서 패배하고 후퇴했다”고 주장했다. 바그다드를 탈출한 알-하세미는 쿠르드 지역에서 환영을 받았고, 터키 정부는 이스탄불을 방문한 알-하세미를 환대했다. 이라크는 이제 시아, 순니, 쿠르드로 분할되어가고 있으며, 군벌들간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패로 끝난 ‘아랍의 봄’

2011년 1월 튜니지아의 한 젊은이가 분신을 함으로써 시작된 ‘아랍의 봄’은 튜니지아와 이집트에서 정권 교체를 가져왔다. 이러한 변화가 아랍권에 민주주의를 가져올지, 또는 장기적 불안정을 가져 올지에 대해 오바마는 전혀 인식이 없었다. 오바마 정부는 아랍 사태에 대해 미국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생각만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랍의 봄’은 민주주의를 가져 오기 보다는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대두를 초래했다. 그런 점에서 1979년 이란 샤 정권의 붕괴가 호메이니의 신정(神政)을 초래했던 역사의 교훈을 떠 올리게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랍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수사(修辭)만 늘어 놓았고 아무런 실질적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동유럽 공산권이 붕괴하고 나서 10년 동안 서방국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에게 1,000억 달러를 제공했던 것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특히 이집트에선 무바라크 정권이 무너지고 난 후 무슬림 형제단의 지지를 받는 모르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등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오바마 정부는 아무런 전략을 갖고 있지 못했다. 리비아는 국가가 붕괴했고, 시리아는 내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집트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로 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장기적 국익을 해할 것이 분명함에도 오바마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폭풍전야

파키스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대중동 지역은 인구는 너무 많고 자원은 너무 부족하다. 파키스탄, 이집트, 예멘 등 많은 나라들이 전기, 물,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이란 장점을 잃어버리면 튜니지아, 요르단, 및 모로코는 제조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로 실패한 국가들의 벨트가 생길 수도 있다. 이란은 국민들은 자유를 희망하지만 압제적 정부가 군림하고 있어서 그 앞날이 불안하다.

에로도안 총리가 이끄는 터키는 유럽연합 가입이 좌절된 후에 관심을 동쪽과 남쪽으로 돌려서 이 지역에서 역할을 늘려가고 있다. 터키는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과 교류를 늘려가고 있다. 앙카라-리야드-도하를 잇는 순니 벨트가 있다면, 테헤란-바그다드-베이루트를 잇는 시아 벨트가 있는 셈이다. 미국은 원래 의도와 관계없이 순니 벨트에 엮인 형상이다. 터키의 다수 국민은 순니 무슬림인데, 이들은 과거에 터키를 지배했던 알레비파(派), 그리고 같은 계열인 시리아의 지배계층인 알라위츠파(派)를 진정한 무슬림으로 보지 않는다. 에르도안 총리는 발칸에서 중동에 이르는 순니 세계를 이끌어 가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순니 세계에서 터키의 라이벌은 사우디 아라비아인데, 메카와 이스탄불이 이슬람 세계의 패권을 두고 다투었던 과거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집트에 민주정부가 들어서는 것도, 이슬람 정부가 들어서는 것도 불편해 하고 있다. 사우디로서는 무바라크 같은 권위주의적 정부가 이집트에 있는 것이 가장 편하다. 페르시아 만 연안의 작은 왕국들도 ‘아랍의 봄’ 같은 민주주의 운동에 취약한 상태에 있다. 아랍 경제는 근본적인 개혁이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프래킹 기술에 힙 입어 석유 생산이 늘고 있어서 석유가격이 떨어진다면 사우디 등 전 아랍국가가 파멸적 상황에 처할 것이다. 미국이 몇몇 압제자들과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동 지역에서의 이익을 지킬 수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힘은 통치자에서 대중으로, 세속적 엘리트에서 이슬람 도전자로, 아랍 중원에서 페르시안 만과 터키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외교도 광범한 지역 전체를 고려해야 하며, 통치자뿐 만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해야 한다.

중국의 도전 

오바마 정부는 이제는 중동 보다 중국이 미국 외교의 주된 관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동지역이 중국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오판이다. 미국은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으로부터 출구전략을 쓰고 있는데, 그 공백을 중국이 메워가고 있다. 에너지 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중국은 이미 중동 산유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다. 파키스탄 대도시에선 중국 사업가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터키와 중국도 급속하게 가까워지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는 중국을 방문했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터키를 방문했다. 중국은 터키에 원전과 항구를 건설하기로 하는 등 두 나라의 경제협력은 공고해 지고 있다. 중국과 이란과의 관계도 깊어가고 있다. 중국은 이란이 수출하는 에너지의 최대 수입국이며, 이란은 중국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공급하는 나라이다. 중동 지역의 안정은 중국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나, 미국은 중동에서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은 미국이 일본과 한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일본과 한국도 중동의 석유에 의존하고 있어서 그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은 이제 중동을 아시아와 연결시켜서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역할

미국이 쇠퇴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미국은 결코 쇠퇴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미국의 영향력은 감소해 가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고, 또 세계 속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잘못 보기 때문이다. 오바마 정부 4년 동안 미국은 대외관계에 가급적 적게 간여하고, 가급적 발자국을 남기지 않으려 했다. 지난 10년 동안 미국은 세계 곳곳을 이끌려고 했다가 어느 곳도 이끌지 않으려 하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의 이 같은 미국의 변신은 놀라운 것이다.

‘아랍의 봄’ 시위가 중동 각지에서 발생하자 오바마는 미국이 민주주의를 선물할 것 같이 말했지만, 실제로 미국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미국이 중동 지역에 개입하지 않으면 중동은 스스로 세력균형을 맞추어야 하는데, 결국에는 불안이 조성되다가 질서가 와해되고 말 것이다. 중동에서 미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면 그 공백을 중국과 러시아가 차지할 것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국가(indispensable nation)가 되어야 한다.

( c )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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