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리차드 모란, 사형집행관의 전류 (2002)
2008-02-22 16:31 1,896 관리자


전기의자를 고안한 에디슨

리차드 모란, 사형집행관의 전류(電流), 알프레드 노프, 2002, $25.00
      Richard Moran, Executioner’s Current, Alfred A. Knopf, 2002, $25.00

미국의 많은 주(州)는 사형제도를 두고 있는데 집행수단으로는 주로 독물(毒物)주사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는 전기의자와 가스실을 이용했었고, 보다 전에는 교수형을 사용했었다. 사형방법이 바뀌어 온 것은 새로운 수단이 사형수의 고통을 줄여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운트 홀리요크 대학의 리차드 모란 교수가 펴낸 이 책은 19세기 말에 뉴욕주(州)가 도입한 전기의자 사형을 둘러싼 흥미로운 논쟁을 다루고 있다.
19세기까지 미국은 교수형을 사형집행 수단으로 사용했다. 그러나 교수형은 사형수가 죽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등 기술적 문제가 많았고, 교수형을 공개로 하던 시절에는 사형수가 영웅으로 행세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뉴욕주는 1888년에 전기의자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당시는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할 때였는데 직류를 쓰느냐 교류를 쓰느냐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있었다. 전기의자에 어떤 전기를 쓸 것인가가 논의됐는데, 사람을 죽이는 데는 교류가 더 효과적이라는 이유에서 교류를 쓰기로 했다.
전기의자 전류를 교류로 하기로 한데는 직류를 발명해서 전기회사를 차린 토머스 에디슨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에디슨은 해롤드 브라운이라는 대리인을 내세워서 교류가 위험하기 때문에 사형집행에는 교류가 적절하다고 주장했고, 직접 전기의자를 고안해서 동물을 전기살(電氣殺)해 보였다. 교류전기를 공급하는 회사를 세운 조지 웨스팅하우스는 교류가 위험하다는 것은 과장이며 에디슨이 교류 발전기를 부당하게 구입해서 전기의자를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웨스팅하우스는 멀리 송전할 수 있는 교류 전기의 장점에 힘입어 보다 많은 도시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전기사업이 망할 것 같은 위협을 느낀 에디슨은 교류를 이용해 사형집행을 해 보임으로써 교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려 했다. 
최초로 전기의자 사형을 당할 사람은 동거하던 여인을 참혹하게 살해한 윌리엄 케믈러였다. 그는 범죄를 인정하고 전기의자에서 죽는 것에 대해 동의했다.  하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윌리엄 코크란 등 당대의 일급 변호사들을 동원해서 전기의자 사형이 ‘비정상적이고 잔인한 형벌’로서 헌법위반이라고 제소했다.
재판과정에서 에디슨이 교류를 모함하기 위한 공작을 총지휘했으며, 이 위대한 발명가가 전기에 관한 기초이론도 모를 정도로 무식함이 폭로됐다. 하지만 뉴욕주 최고법원과 연방대법원은 전기의자 사형이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1890년 8월6일 케믈러는 전기의자에서 최후를 맞았는데, 사형집행은 기술적 실패였다. 17초 동안 전기를 통해 죽은 줄 알았던 그가 숨을 쉬자 당황한 사형집행관은 2000볼트 전기를 10여분동안 더 보냈다. 케믈러의 몸에는 불이 붙었고, 살이 타는 연기가 자욱히 나서 사형집행을 참관하던 사람 중 몇 명은 기절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전기의자 사형이 이루어 졌다. 여론은 교류 전기의자를 고안할 정도로 교활한 에디슨 보다 사형집행을 지연시킨 웨스팅하우스를 더 비난했다. 에디슨은 소송에서는 교류전기로 사형을 집행해 보이는 데는 승리했지만 전기공급시장은 이미 교류 쪽으로 기울어 진 후였다. 경영난에 처한 에디슨 전기회사는 1892년에 다른 회사와 합병해서 제네랄 일렉트릭(GE)이 됐다. 에디슨은 전기사업에서 손을 뗐고, 웨스팅하우스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저자는 잊혀져 가는 이 논쟁을 통해 아무리 고통 없는 사형방법을 고안해도 사형은 결코 인간적일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전기의자를 두고 전기기술자과 변호사들이 대논쟁을 벌이는 동안에 문맹(文盲)인 케믈러에게 이름 쓰는 방법을 가르치고 또한 그를 하나님의 세계로 인도한 교도소장 부인의 이야기가 더욱 뭉클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게일 쉬슬러, 조국과 해병대를 위하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