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토마스 릭스, 대실패 (2006년)
2008-04-04 10:26 2,425 관리자



미국을 ‘이라크 수렁’에 빠뜨린 사람은 누구인가 ?

  토머스 릭스, 대실패, 2006년 펭귄 프레스, 482쪽, 27.95달러
  Thomas E. Ricks, Fiasco, 2006, Penguin Press, $ 27.95

워싱턴 포스트의 토머스 릭스 기자가 펴낸 이 책은 부시 정부의 이라크 침공이 실패한 사정을 파헤치고 있다. 책은 1991년 “걸프 전쟁에서 미군이 후세인 정권을 그대로 놔두고 철군한 것이 실책”이라고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당시에는 폴 울포비츠 등 네오콘이 “쿠르드족(族)과 시하派 주민을 학살하던 후세인의 친위대를 진압하자”고 주장했었지만 합참의장이던 콜린 파월은 “이라크의 내부문제”라면서 개입하기를 거부했다. 부시 행정부 들어서 국무장관이 된 파월이 네오콘에 맞서지 못한 것은 걸프 전쟁 당시 파월이 저지른 과오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저자는 이라크 침공 결정에 대해 미국의 모든 분야가 책임이 있다고 본다. 체니 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을 앞세운 네오콘은 처음부터 이라크에 침공하기로 마음먹었고, 대량살상무기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선 크게 관심이 없었다.

의회는 이라크 침공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 전혀 대비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침공 후에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행정부와 의회 모두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언론 역시 정부를 비판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도 침공을 지지했고, 주디스 밀러 기자는 검증되지 않은 정보에 근거해서 소설 같은 기사를 써서 여론을 誤導(오도)했다.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 수뇌부는 사실상 공백상태였다. 중부사령관이던 토미 프랑크 대장은 은퇴를 앞두고 있었고, 후임 아비자이드 중장은 의회의 인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전쟁을 앞둔 시점에서 럼즈펠드는 자기와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육군참모총장 신세키 대장을 해임했다.

합참의장 마이어스 공군대장은 럼즈펠드에 순응하는 스타일이어서 지휘관들의 의견은 상부에 전달되지 못했다. 국방부의 민간수뇌부가 전투를 수행할 군 지휘관들을 젖혀 놓고 침공을 결정한 것이다.
이라크 침공작전 계획을 빨리 만들어내라는 상부의 지시를 받은 기획장교들은 놀라워했다. 1990년대 말에 중부사령관을 지낸 후 퇴역한 안토니 지니 예비역 해병대장은 “이라크 침공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정부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2003년 3월 이라크를 침공한 지상군은 미 육군 3개 사단과 해병 1사단을 주축으로 한 해병 제1원정군, 그리고 영국군 2만 명 등 총 14만 5천명이었다. 지니 대장 등 비판자들은 이보다 최소한 두 배의 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후세인의 친위부대를 제압하고 바그다드에 입성한 미군은 그 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했다. 점령 후에 대한 계획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점령만 하면 미국에 우호적인 정치세력이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허망한 꿈이었다. 대규모 병력을 지탱하기 위한 군수 지원도 힘들었다. 현지 지휘관들은 병력 부족을 호소했지만 미군의 현역 자원은 이미 고갈된 상황이었다.
“럼즈펠드가 이라크에 보낸 폴 브레머 군정장관과 이라크 주둔군 사령관 산체스 중장은 무능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오만하기까지 한 브레머 군정장관은  주위의 권고를 무시하고 이라크 군경과 바트黨(당)을 해산해서 이들이 저항세력으로 탈바꿈하도록 조장했다. 브레머와 산체스로 지휘체계가 이원화되어 있어 혼란이 가중되었다.

              미군 지휘부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叛軍(반군)과 전투를 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반군을 진압하기 위해선 주민을 반군으로부터 보호하고, 반군의 이라크 유입을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해야 하는데 그런 기초적 인식이 없었다. 미군은 반군과의 교전이 격화되고 난 후에야 시리아 및 이란과의 국경을 봉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바그다드의 그린 존이라 부르는 격리된 지역에 자리잡은 미 군정 사령부는 현지 사정에 둔감했다. 결국 각 지역에 진주한 미군 부대의 지휘관들이 재량에 따라 관할 지역을 통치해야만 했다. 대규모 화력지원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육군 보병사단은 이라크 주민을 보호하기 보다는 주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특히 육군 제4 보병사단은 주민들을 마구 체포해서 포로수용소에 가두었는데, 얼마 후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포로학대 사태가 발생해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혼란 중에도 육군 101공수사단과 해병 1사단은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공수사단과 해병대는 반군과의 전투는 현지 주민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은 화력을 통한 무차별한 공격 보다는 필요한 곳을 선별 공격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지휘관이던 페트라우스 육군 소장과 매티스 해병 소장은 보기 드문 智將(지장)이고 勇將(용장)이었다.
           
            저자는 부시 정부가 이라크에 침공한 것이 실수였고, 침공한 후에 브레머 같은 무능한 행정관을 파견하고 현지 지휘관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한 것은 더 큰 실수였다고 말한다. 해병 1사단장 매티스 소장은 “팔루자에 자리잡은 반군을 조기에 소탕하자”고 건의했지만 그의 작전계획은 이라크 임시정부의 반대로 거부됐다.  팔루자는 반군세력의 결집지가 되었고, 2004년 말에 해병 1사단은 더 큰 희생을 치루고 팔루자를 탈환했다.

          저자는 미국이 베트남에서 겪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고,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럼즈펠드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지적한다. 브레머 군정장관, 산체스 사령관 등 전쟁의 주역은 모두 럼즈펠드의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잘못된 정책으로 많은 미군 장병들이 죽고 부상 당해서 미군의 사기에 두고두고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이라크 전쟁은 예방적 전쟁(preemptive war) 정책에 나쁜 영향을 주어서 북한 같은 나라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이라크에서 쉽게 철수할 수도 없다. 이라크의 미래 또한 예측하기 어렵다. 이라크가 내란의 소용돌이에 빠져서 시하파, 순니파, 쿠르드족 국가로 분할될 가능성도 있지만, 더 큰 악몽은 어느 지역에서 살라딘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다른 지역을 정복한 후 더욱 과격한 통일된 이라크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월간조선 200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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