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존 오설리반, 대통령, 교황, 그리고 총리 (2006년)
2008-04-10 00:26 2,140 관리자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레이건, 요한 바오로 2세, 대처

존 오설리반, 대통령, 교황, 그리고 총리
(레그너리 출판사, 2006년, 360쪽, 27.95달러)
John O’Sullivan, The President, the Pope, and the Prime Minister
(Regnery Publishing, 2006, 360 pages, $27.95)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체제가 붕괴했을 때 서방의 진보 좌파들은 당혹스러워 했다. 존 걸브레이스, 레스터 소로우, 폴 사무엘슨 등 노벨상을 탄 저명한 진보적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련과 동유럽 공산체제 붕괴

동유럽은 어떻게 해서 마술처럼 무너졌는가 ? 영국 태생으로 마가릿 대처의 보좌역과 정치평론지 ‘내셔널 리뷰’의 편집장을 지낸 존 오설리반이 쓴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을 주고 있다. 책은 로널드 레이건,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마거릿 대처가 각각 미국 대통령, 교황, 영국 총리가 된 후 긴밀한 협력을 통해 총 한방 쏘지 않고 소련과 동유럽의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과정을 잘 보여 준다.

1970년대의 세상은 온통 진보 성향이었다. 신(新)좌파 운동, 여성해방운동, 환경운동, 해방신학 등 혁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케인즈 경제정책과 사회복지 확충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드려졌다. 하지만 훗날 요한 바오로 2세가 된 폴란드의 젊은 추기경 보이티야, 영국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 의원, 그리고 캘리포니아 주지사이던 로널드 레이건은 신앙, 자립, 애국심 같은 전통적 가치를 신뢰했다. 보이티야는 너무나 신앙적이었고, 대처는 너무 보수적이었으며, 레이건은 너무 미국적이었기에 그 당시에는 모두 주변적 인물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75년 영국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대처는 예상을 뒤엎고 승리해서 당대표가 됐다. 대처가 보수당 대표가 된 후 두 달 후 레이건은 영국 방문 중에 대처를 만났다.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은 동지 의식을 갖게 됐다. 1976년 레이건은 보수주의원칙을 내걸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출마했으나 포드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20세기말 역사를 바꾼 세 인물

1978년 10월 바티칸에 모인 추기경들은 보이티야를 새 교황으로 선출했다. 폴란드 출신의 연로한 추기경 비진스키는 울먹이는 보이티야에게 “폴란드를 위해서 교황직을 승락하라”고 했다. 1979년 봄 총선에서 사회주의에 지친 영국민은 보수당에 승리를 안겨 주어 대처는 총리가 되었다.

              1979년 6월 요한 바오로 2세는 폴란드를 방문했고, 공산 치하에서 자유를 염원하던 폴란드 국민은 열광했다. 대통령 출마를 준비하던 레이건은 TV를 통해 교황의 폴란드 방문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1980년 11월 미국민은 레이건을 새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렇게 해서 20세기 말의 역사를 바꿀 교황, 영국 총리,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태어난 것이다.

            신(神)의 섭리

아마 신(神)은 이들에게 시련을 주고 구원해서, 과업을 완성하도록 인도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81년 3월30일 레이건은 한 젊은이가 쏜 총에 맞았다. 5월13일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암살자의 총탄을 맞았다. 당시 알려진 바와 달리 두 사람이 목숨을 건진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레이건은 자신이 살아난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고, 교황은 성모 마리아가 자신을 구했다고 믿었다. 1984년 10월에는 대처가 암살의 위기를 넘겼다. 지방 출장 중 북아일랜드 공화군이 호텔에 폭탄 테러를 가해 하원의원 등 5명이 사망했지만 대처는 무사했다.

              레이건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실용주의자들이 신봉하는 공산체제와의 共存(공존)을 거부했다. 냉전에 관한 레이건의 신념은 간단했다. “자유세계가 승리하고, , 공산세계는 패배한다”는 것이었다. 1982년 레이건은 영국 의회에서 “공산주의가 역사의 잿더미를 향해 갈 것”이라고 연설했고, 그 이듬해에는 소련을 ‘惡의 제국’이라고 불렀다. 미국의 언론과 학자들은 레이건이 외교를 모른다고 비난했지만, ‘철의 장막’ 건너편에서 공산체제에 저항하던 민주세력은 감격했다. 레이건이 도덕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처 임기 초의 영국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구조조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불경기가 닥쳐 왔다. 1982년 3월에는 아르헨티나가 영국령 포클랜드 섬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대처는 대서양 남쪽 끝으로 군대를 보내 포클랜드를 탈환했다. 레이건은 군사정보와 군수물자 지원을 통해 대처를 도왔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정권은 실각했으며, 남미에는 민주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2년 3월 레이건은 바티칸을 방문해서 교황을 만났다. 두 사람은 폴란드와 동유럽, 그리고 소련의 공산체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제 원유가격 급락으로 소련 경제는 내리막 길을 가고 있었다. 폴랜드에서는 바웬사가 이끄는 자유노조가, 체코슬로바키아에선 하벨이 이끄는 저항운동이 공산체제를 압박했다. 중남미 나카라과에선 반공 반군(叛軍)의 활동이 강력해지고 있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저항세력이 소련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레이건은 이들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했다. 1983년 10월 카리브의 작은 섬나라 그라나다에 쿠바의 지원을 받는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레이건은 미군을 파견해서 공산정권을 무너뜨리고 미국 의대생 수백 명을 구출했다. 2차 대전 후 처음으로 공산세력이 수세에 몰린 것이다. 

              냉전의 관건은 유럽이었다. 소련의 중거리 핵미사일 유럽 배치와 이에 대응한 미국의 순항 미사일과 중거리 미사일 배치 문제를 두고 서유럽의 좌파들은 대규모 반미(反美) 시위를 벌였다. 그런 와중에 레이건은 ‘별들의 전쟁’이라고 부르는 미사일 방어체제(SDI)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1986년 10월 아이슬랜드의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미소 핵 군축회담에서 레이건은 SDI를 협상에 포함시키려는 고르바쵸프의 시도를 거부했다. 여론은 핵 군축을 거부한 레이건을 비난했지만, 몇 년 후 고르바쵸프는 레이건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이 스스로 백기를 든 것이다.

            ‘희망의 미덕’을 전파

            1989년 폴란드 자유노조가 총선에서 승리해서 민주정부를 구성했다. 두 달 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고, 곧 이어 동유럽 국가 곳곳에 민주정부가 들어섰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하고 말았다.

            1989년 1월 레이건은 8년 임기를 성공리에 마치고 퇴임했다. 1990년 11월 대처는 당내 반대파들에 의해 불신임을 당한 후 총리와 보수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2004년 6월 레이건이 서거했고, 2005년 4월에는 요한 바오로 2세가 善終(선종)했다. 세계사를 바꾼 세 사람 중 대처만 생존해 있는 셈이다.

              저자는 이 세 사람이 이룬 업적에는 정신적 요소가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희망의 미덕’을 전달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평가한다.

                            (월간조선 2007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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