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에프라임 카르쉬, 이슬람 제국주의 (2006)
2008-07-30 09:24 1,752 관리자


에프라임 카르쉬, 이슬람 제국주의 (2006년, 예일대학 출판부, 276쪽, 30달러)
Efraim Karsh, Islamic Imperialism (Yale Univ. Press, 276 pages, $30.00)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의 역사학 교수인 에프라임 카르쉬는 50대 중반의 이스라엘 학자로, 히브리 대학을 나오고 텔아비브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컬럼비아, 소르본 대학 등에서 中東(중동) 역사를 가르친 그는 여러 권의 저서를 냈다. 그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현대사를 수정해서 해석하려는 일련의 이스라엘 학자들(‘新역사학파’라고 부른다)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정통파로서 이름이 높다.

카르쉬 교수가 2006년에 출간한 ‘이슬람 제국주의’는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불법으로 점거했고, 따라서 아랍의 투쟁을 이해할 만하다”는 式(식)의 修正主義 (수정주의)  해석을 정면으로 타파한다. “이슬람은 원래 평화적 종교이며 테러는 이슬람 정신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슬람은 제국주의 발상지 

카르쉬는 西(서)유럽과 이슬람의 대립을 ‘문명의 충돌’로 보는 시각은 물론이고, 서유럽의 제국주의가 이슬람의 낙후를 가져와서 오늘날의 문제를 야기했다는 견해도 거부한다. 그는 제국주의는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등에서 보듯이 원래 中東에서 생긴 것이고, 서유럽의 제국주의가 쇠락한 후에도 이슬람 제국주의는 건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랍권의 悲劇(비극)이 마치 서유럽의 제국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카르쉬 교수는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메드가 “神(신)의 이름을 빌어 왕국을 건설했다면서, 이슬람은 원래부터 제국을 지향한 종교”라고 말한다. 기독교 문명권이 종교와 정치적 제국주의를 결부한 것은 이슬람 보다 훨씬 늦었으며, 또 기독교 문명은 제국주의를 이슬람 보다 빨리 폐지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슬람은 오늘날까지 제국주의를 지향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무하마드가 주창한 唯一神(유일신)을 내세운 제국주의

책은 무하메드가 7세기에 알라라는 새로운 唯一神(유일신)을 내세우며 제국 건설에 나선 때부터 시작한다. 무하메드는 아라비아 반도에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그곳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을 贖罪羊(속죄양)으로 삼았다. 8세기 초에 이슬람은 콘스탄티노플에서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제국으로 통합했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자들은 잔학한 拷問(고문)을 동원해서 제국을 통치했다.

11세기 말,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거쳐 예루살렘을 점거하는 과정에서 이슬람 제국의 분열이 조장됐다. 쿠르드 출신의 살라딘이 새로이 제국의 지배자가 됐으나, 그의 제국도 얼마 가지 못했다. 기독교 군대와 충돌이 계속됐고, 몽골의 군대가 동쪽에서 몰려와서 방대한 지역을 지배했다.

14세기 들어서 오토만 왕국이 통치지역을 넓혀가더니 15세기 중엽에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을 장악했다. 이 새로운  이슬람 제국은 서유럽을 향해 쳐들어 갔으나, 1683년 비엔나 전투에서 합스부르크 王家(왕가)의 군대에 패배했다.

카르쉬는 “오토만 제국의 지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견해도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아르메니아 민족 대학살에서 보듯이 오토만의 통치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오토만 제국은 종말을 고했지만, 아랍 제국주의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 문제

로마 시대부터 시작된 박해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다. 1492년에는 스페인에서 추방된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집단적으로 移住(이주)했다. 18-19세기에 걸쳐 유럽의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했고, 시온주의 운동은 유태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를 촉진시켰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유태인들의 이주에 반대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요르단 왕국은 유태인 지역을 포함한 제국을 건설하려 했다. 유엔이 팔레스타인을 이스라엘 독립을 인정하자 이집트와 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을 침공해서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이슬람 제국을 꿈꾸는 사람들

카르쉬는 ‘범(汎)아랍주의’란 제국주의의 또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고 본다. 1950년대부터는 이집트가 범아랍 제국주의의 맹주로 등장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나세르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내세운 범아랍주의가 국내외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일 것임을 알아 차렸다.

하지만 나세르의 꿈은 1967년 ‘6일 전쟁’에서 무참하게 무너졌다. 카르쉬는 1979년에 이란에 근본주의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것과, 1990년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것도 모두 제국주의의 발로라고 지적한다.

테러는 이슬람 제국주의의 연장

왕족과 정치인만이 알라의 帝國(제국)을 건설하려는 꿈은 꾼 것이 아니다. ‘무슬림 형제회’라는 단체를 만든 교사 출신의 하산 알 바나는 이집트에 진정한 이슬람 정부를 세우고 싶어했다. 1949년에 그가 정부 요원에 의해 암살되자 사이드 큐트브가 조직을 이끌었다.

1966년에 큐트브가 처형되자 알 자와히리가 이 단체를 이끌었다. 알 자와히리는 1981년에 사타트 이집트 대통령을 암살하는데 성공했다. 알 자와히리는 빈 라덴과 함께 알 카에다를 만들어서 9×11 테러를 일으켰다. 

저자는 아랍과 무슬림의 反美(반미)주의는 미국의 대외적 행동방식이나 중동 정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세계에서 미국이 차지하고 있는 우월적 지위로 인해 아랍과 이슬람의 제국주의가 좌절되고 있기 때문이 이들은 미국을 적대시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빈 라덴과 알 자와히리의 지하드는 汎세계적 이슬람 제국을 건설하려는, 이슬람 지하드의 최근의 한 표현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월간조선 2007년 12월호)
( 책 표지는 첨부를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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