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도널드 케이건 외, 미국이 잠든 사이에 (2000년)
2008-10-28 08:47 1,554 관리자


      도널드 케이건 – 프레데릭 케이건,  미국이 잠든 사이에 (2000년, 세인트 마틴, 483쪽)

          Donald Kagan and Frederick W. Kagan, While America Sleeps (2000, St. Martin, $ 32.50)

1938년에 윈스턴 처칠은 독일의 재무장과 전쟁 가능성을 경고한 자신의 연설문을 모아 ‘영국이 잠들었을 때’(‘While England Slept’)란 책을 출판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군비를 축소한 영국은 전쟁이 눈앞에 닥쳐오는데도 이를 못 본체했고,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것이다. 

‘미국이 잠든 사이’(‘While America Sleeps’)의 저자인 도널드 케이건과 프레데릭 케이건은 역사학을 전공한 부자(父子)이다. 도널드 케이건은 코넬 대학 교수와 예일대 학장을 역임한 역사학자로, 고대 그리스사(史)를 전공했다. 그는 원래 진보적 성향의 학자였으나 1960년대 말에 코넬 대학이 흑인학생들의 주장에 떠밀려 ‘흑인학(Black Studies)’란 전공을 개설하자 환멸을 느껴 보수주의자가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일대의 명예교수인 도널드 케이건는 아들과 며느리 등 온 가족이 보수성향의 대외정책 연구가로 명성이 높다. 

도널드 케이건의 작은 아들인 프레데릭 케이건은 예일대에서 소련과 동유럽사(史)를 전공한 공부한 역사학자로 미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연구위원이다. 프레데릭의 아내인 킴벌리 케이건도 전쟁사를 전공한 역사학자로 미 육군사관학교 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민간단체인 전쟁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를 이끌고 있다. 카네기 평화연구소의 대외정책전문가인 로버트 케이건은 도널드 케이건의 큰 아들이다. 

저자들이 200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나온 이 책에서, 클린턴 행정부의 유화적 대외정책이 장기적으로 세계평화를 위협했다고 지적하면서, 공화당 후보에 대해 군비(軍備) 확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책의 모두(冒頭)에서 저자들은 1990년대의 미국의 안보태세가 1930년대의 영국과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책의 제1부는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의 영국의 대외정책을 분석하고 있다. 국제연맹을 탄생시킨 베르사이유 조약 체제가 무너지고, 독일과 이태리가 평화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영국의 지도자들은 전쟁 가능성을 애써 부인했다. 전쟁의 위험을 깨달았을 때 영국의 군사력은 너무 쇠퇴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히틀러의 나치 제국이 군사력을 키우지 전에 영국이 독일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했더라면 제2차 대전의 참극을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제2부는 냉전이 종식된 후의 미국의 안보정책을 다루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미국이 새로운 평화질서를 지킬 의무가 있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부시의 공언은 반(半)만 지켜졌다. 1990년 여름, 이라크는 미국의 의지를 시험하듯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그 다음해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군은 쿠웨이트를 해방하고 이라크로 진격했다. 하지만 다국적군이 이라크 주력부대인 공화국 수비대를 포위해서 섬멸할 수 있는 시점에 미국 정부는 돌연 철수명령을 내렸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오랫동안 미국이 진주하면 미국이 이라크의 수렁에 빠져 베트남 전쟁에서 겪었던 상황을 다시 겪게 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 후 10년이 넘도록 사담 후세인은 건재하고 있으며, 이라크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는 별다른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이라크에 관한 국제사회의 조치는 또 다른 베르사이유 체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저자들은 세르비아 사태에 대한 미국의 대응도 실패작이라고 본다. 미국은 유고 연방 붕괴 후의 내란사태를 유럽이 스스로 해결하기를 기대했지만 유럽연합은 군사적으로 무력했다.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에 대한 세르비아 군(軍)의 만행이 극(極)에 달했지만 미국 역시 개입을 꺼렸다. 1999년 들어 코소보 상황이 악화되자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군(軍)은 세르비아에 대해 공습을 감행해서 사태를 수습했다. 밀로세비치는 결국 퇴진했지만, 그럼에도 세르비아 사태는 혼미한 상태에 있다.

저자들은 북한에 대해서도 미국이 무력했다고 지적한다. 1994년에 미국이 북한과 체결한 제네바 핵(核)협정은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에 대해 미국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북한이 핵폭탄 물질을 추출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했지만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속수무책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정책 수뇌부는 한반도에서의 전쟁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들은 북한을 굴복시키기 위한 90일 전쟁에서 미군 사상자 5만 2천 명, 한국인 사상자 49만 명이 생길 것으로 예측했다. 무엇보다 미국은 지상군 40만 명을 투입해야만 했다.

하지만 당시 미 육군 전체 병력은 54만 명에 불과했다. 미국은 북한에 대처할 수 있는 병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미국은 유화책(宥和策)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은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고 북한은 그 대신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그 후로도 계속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고, 이로 인해 핵비확산(核非擴散) 체제는 훼손되고 말았다.

  저자들은 이라크와 북한이 평화를 위협하고 있지만 미국은 양면(兩面) 전쟁 수행 능력을 상실했다고 본다. 유일한 강대국이 무기력해지면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은 군비를 확충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 책 표지는 첨부 파일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게일 쉬슬러, 조국과 해병대를 위하여 (200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