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로버트 케이건, 돌아온 역사와 끝나버린 꿈(2008)
2008-10-31 01:00 1,838 관리자



로버트 케이건, 돌아온 역사와 끝나버린 꿈 (2008년, 알프레드 노프, 117쪽)
Robert Kagan, The Return of History and the End of Dreams
(2008, Alfred A. Knopf, $19.95)

1992년 당시 조지 메이슨 대학 교수이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이란 책을 펴냈다. 후쿠야마는 냉전 종식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는 최종적으로 승리했고, 더 이상 이념적 진화는 없다고 선언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카네기 평화연구소의 로버트 케이건은 ‘천국과 힘’(‘Of Paradise and Power’)라는 작은 책자를 펴내서 미국은 미국의 길을 갈 것이고, 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됐고,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가 한계에 도달했음이 분명해졌다. 2006년 후쿠야마는 2006년에 ‘기로에 선 미국’(‘America at Crossroads’)를 펴내서 자신의 견해를 수정해야 만 했다.

2008년 봄에 나온 로버트 케이건의 이 책의 제목은 후쿠야마의 1992년 책 제목을 바꾸어 붙인 것이다. 끝난 것으로 알았던 역사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케이건의 통찰력이 번득이는 이 책을 읽다 보면, 닥쳐올 미래가 두려워지기도 한다. 케이건의 주장을 보기로 한다.

세상은 다시 정상(normalcy)으로 돌아왔다. 냉전이 끝나자 이념이 사라지고, 모든 국가가 같이 자유롭게 소통하고 같이 번영하는 새로운 국제질서가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신기루였다. 미국은 아직도 유일한 초강대국이지만, 러시아 중국 유럽 일본 인도 이란 등 열강(列强)이 지역 패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는 시대가 다시 도래(到來)했다. 전제적(專制的)인 러시아와 중국이 상승세에 있고, 과격 이슬람 세력이 투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민주주의 세력은 분열되어 있다. 역사는 돌아왔으며, 민주주의가 돌아온 역사를 만들어나가지 못하면 다른 세력이 민주주의를 주무를 것이다.

냉전이 끝난 후 유럽연합을 모델로 한 새로운 세계질서가 생길 것이라는 희망에 섞인 구상이 있었지만, 그 구상은 생기자 마자 몰락하고 말았다. 러시아야말로 역사가 가장 극적(劇的)으로 돌아온 나라다. 오늘날 러시아는 가장 강력한 열강 중의 하나로 뽑힌다. 1998년-2006년 간 러시아의 경제규모는 50% 증가했고 1인 당 국민소득은 65% 증가했다. 유럽은 에너지에 대해 중동 보다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러시아는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군비(軍費)를 20%씩 증가시키고 있다. 러시아는 핵 무기를 현대화하고 있으며, 100만이 넘는 상비군을 두고 있다. 이런 변화는 1990년대에 러시아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원조를 주었던 서방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이 가는 길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유럽에 있어 악몽(惡夢)이 1930년대 였다면, 러시아의 악몽은 1990년대였다. 유럽은 국가와 힘을 초월함으로써 1930년대의 악몽을 씻으려 하는데 비해, 러시아는 국가와 힘을 복원함으로써 1990년대의 악몽을 씻으려 한다. 러시아는 친(親)서방 성향의 그루지아, 우크라이나, 라트비아 등 과거에 그들의 영향권내에 있던 나라들에 대해 경제제재를 통해 압박하고 있다.

중국도 번영하는 경제와 강력한 군대를 갖고 지정학적 및 경제적으로 거인이 됐다. 중국의 정책결정자들과 사상가들은 동아시아에서 중국 패권시대가 다시 시작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의 급속한 군비(軍備)확장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주변국가는 물론이고 심지어 유럽까지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냉전 종식 후 미국인 구상했던 세계 질서는 미국이 지배하는 질서임을 잘 알고 있었다. 중국은 1989년의 천안문 사태에 대해 미국이 국제적 규탄을 주도했음을 기억하고 있다. 중국의 군사력은 유사시 타이완을 둘러싸고 미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미국 외에 일본과 인도도 주역으로 등장했다. 일본은 매년 국가 총생산량의 1%만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액수는 연간 400억 달러에 달한다. 일본은 핵 무기를 갖고 있지 않지만 유사시에 신속하게 핵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인도는 아시아에서 세번 째로 강한 국가이며 인도 대륙의 패자(覇者)이다. 서아시아에선 이란이 핵 무장을 통해 패자로 군림하고자 한다.

문제는 미국이다. 이론적으로 미국은 주변의 세계를 형성하는 일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에 있어 미국은 잠시도 그러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의 요구대로 세상을 형성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에 따르는 비용을 회피하려는 욕구를 조정해 왔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 냉전은 공산주의에 대한 이념적 투쟁이었지만,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바랐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제 세계는 ‘민주주의의 축(軸)(axis of democracy)’와 ‘전제(專制)주의의 연합(association of autocrats)’으로 구성되어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전제적일 뿐만 아니라 전제주의를 신봉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오늘날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1999년에 유럽과 미국이 코소보 사태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자 러시아와 중국은 유럽과 미국을 비난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국가주권을 중시하는 국제질서를 고양(高揚)하고 있다. 랑군, 카르투움, 평양, 그리고 테헤란은 그들에게 적대적인 세계에서 자신들이 종국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곳은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과격 이슬람 세력이 꿈꾸는 세상이 돌아올 가능성은 없다. 과격 이슬람은 현대를 거부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이슬람 세계를 1400년 전으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과격 이슬람이 야기하는 위협에 대해 미국, 유럽, 러시아, 그리고 중국은 통일된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아 그러한 위협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평양, 테헤란, 카르투움에 버티고 있는 전제주의 세력을 보호하려는 러시아와 중국은 테러리스트와 핵 무기가 연계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 세계는 미국의 역할이 줄어 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의 여파(餘波)로 세계는 ‘미국 문제’(‘American problem’)에 봉착해 있다. 분명히 ‘미국 문제’는 존재하고 있다. 일방주의(unilateralism)를 선호하고 국제기구를 불신하며, 주권에 집착하고, 국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미국의 성향은 부시 행정부에서 처음 생긴 것이 아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런 성향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계의 주요 분쟁 가능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은 아직도 중요하다. 동아시아, 유럽, 그리고 중동에서 미국은 아치의 주춧돌이다. 주춧돌이 빠지면 아치는 붕괴하기 마련이다.

강력한 전제국가의 대두(擡頭)와 이슬람 과격세력은 국제질서를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국제질서에 있어서 투쟁은 계속되고 있고, 미국은 다른 민주주의 세력과 함께 이에 대처할 의무를 지고 있다. 미래의 국제질서는 힘과 의지를 갖고 있는 국가에 의해 형성될 것이다. 문제는 민주주의 세력이 이런 도전에 대처할 수 있나 하는 점이다.
© 이상돈
(* 책 표지는 첨부 파일을 클릭하면 볼 수 있습니다. 로버트 케이건의 사진은 갤러리 자료사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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