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파리드 자카리아, 포스트-아메리카 세계 (2008년)
2008-12-08 00:06 2,339 이상돈



파리드 자카리아, 포스트-아메리카 세계 (2008, 노턴, 292쪽)
Fareed Zakaria, The Post-American World (2008, Norton, $25.95)

이상돈 (2008년 12월 8일)

파리드 자카리아는 뉴스위크 국제판 편집인으로, 우리에겐 2003년에 나온 ‘자유의 미래(The Future of Freedom)’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1964년에 인도 뭄바이에서 유력한 정치인이던 라피크 자카리아의 아들로 태어났다. 런던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영국의 법정변호사가 된 당대의 지식인이었던 라피크 자카리아는 뭄바이의 검사장과 국회의원을 지냈고, 여러 개의 사립학교를 세워서 운영했는데, 그는 무슬림이었다.

라피크 자카리아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파리드 자카리아는 인도의 특권 계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학교를 나온 후 미국에 건너가서 예일대학을 나오고 하버드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했다. 포린 어페어지(誌)의 편집자로 일하다가 2000년에 뉴스위크 국제판의 에디터가 되었고, 2003년에 나온 ‘자유의 미래’가 베스트셀러가 되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미국과 외국의 비(非)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는 부제를 붙인 ‘자유의 미래’에서 파리드 자카리아는 “입헌적 자유주의가 확립되어 있는 나라에서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하며”, “경제적 자유와 법치주의가 확립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전락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으로 인해 그를 자유주의자 또는 보수주의자로 보기도 하지만, 이라크 전쟁 등 대외관계에 관한 그의 칼럼은 전형적인 다원주의와 국제주의를 강조하는 중도적 진보성향이었다.

2008년 5월에 나온 파리드 자카리아의 이 책 ‘포스트-아메리카 세계(The Post-American World)’는 제목만 보면 이라크 전쟁 후의 다극화된 세계(multi-polarized world)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제의 책 내용은 그와는 거리가 멀다. 2008년 10월에 ‘흔들리는 세계의 축’이라는 제목으로 우리 말로 번역 출간되었는데, 이런저런 사회 명사들이 ‘대단히 훌륭한 책’이라는 식으로 듣기 좋은 평을 쏟아냈다. 미국발(發) 경제위기로 세계가 휘청거리는 데다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오바마가 당선될 것으로 보이던 시기에 그럴싸한 제목을 붙인 책이 나왔으니 너나없이 듣기 좋은 서평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게 되면 파리드 자카리아가 닥쳐 오는 미증유(未曾有)의 경제위기를 예상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라크 사태와 과격 이슬람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지나치게 낙관적임도 알 수 있다. 2008년 11월 26-29일간 자카리아의 고향 붐바이에서 일어난 이슬람 테러조직의 공격으로 거의 200명이 사망하고 300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발생하자, 자카리아는 “인도 사회에서 무슬림이 여러 면에서 차별 받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과격 세력이 내부의 불만세력과 연계해서 테러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카리아는 “인도는 테러의 충격에서 곧 회복할 것이고, 이를 계기로 인도의 정치가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카리아가 이 책을 내년 초에 냈다면 지금 나와있는 책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띄고 있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자카리아의 주장을 살펴 보기로 한다.

자카리아는 우리는 지금 15세기-18세기 말에 이르는 유럽의 등장, 19세기말에 시작한 미국의 등장에 이어 이제 다른 나라들이 등장하는 세 번째 권력이동을 겪고 있다고 화두(話頭)를 뗀다. 즉 미국이 세계를 이끌던 시대는 저물었고,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국제질서에서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자카리아는 경제성장과 그로 인한 글로벌 경제의 확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으로 인해 강해 진 금융, 그리고 시장경제체제를 채택함에 따라 중국, 러시아, 브라질, 동아시아 국가들, 인도 등 많은 국가들의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을 근거로 제시한다. 그는 좋은 경제로 인해 9-11 테러, 스페인의 열차 테러, 영국의 지하철 테러 같은 위기상황이 있더라도 주식시장이 곧 회복했다면서 시장경제의 힘을 강조한다.

자카리아는 유럽이 이슬람 지배 아래 들어 갈 것이라는 보수진영의 우려는 과장이라고 본다. 그는 근본주의 이슬람은 극히 일부이며, 이슬람 세계도 근대화의 길을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각국의 정부는 마치 규제기관과 중앙은행처럼 되어 버렸고, 개도국에서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로 무장한 대중에 의해 전통질서가 무너지고 있다고 본다.

자카리아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마치 19세기말에 영국이 남아프리카에서 싸웠던 보어 전쟁과 비슷하다고 본다. 그는 보기에 따라서 비극이거나 고상한 노력인 이라크 전쟁이 미국을 파산으로 몰고 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국의 GDP의 1% 미만을 차지하지만 베트남 전쟁에선 1.6%를 차지했다고 지적한다.

자카리아는 미국의 강점은 대학교육, 특히 공학교육에 있다고 본다. 비록 중국과 인도에 비해 미국이 배출하는 엔지니어의 숫자가 적다고 하더라도 공학의 수준은 다른 나라가 미국을 따라 갈 수 없다고 본다. 그는 또한 미국이 유럽은 물론이고 아시아 국가보다 인구성장율이 높은 것이 장점이며, 그것은 주로 외국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인력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 정부의 재정적자와 개인의 부채에 대해서 자카리아는 낙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비록 미국의 적자는 위험스럽기는 하지만 미국은 투자하기에 안전하고 매력적인 장소로 남아 있기 때문에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 발생하는 저축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계의 저축의 80%를 빌려서 소비하는 미국의 경제는 도전을 받고 있다고 조심스러운 관측을 했다. 자카리아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높은 의료비용 때문에 미시건 주에서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카리아는 미국은 결코 약한 국가이거나 퇴폐적인 사회는 아니지만 정치가 기능마비 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즉 정치과정이 돈, 이익단체, 선정적 언론, 이념적 비판 그룹으로 인해 마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한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 들어서 미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자신들만의 누에고치 속에 갇혀 있고, 그런 결과로 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시대에 미국은 새로운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미국이 대외정책에서 우선순위를 정할 것, 폭 넓은 원칙을 조성할 것, 조정자의 역할을 할 것, 다자 외교에 치중할 것, 비대칭적 사고(思考)를 할 것, 정통성이 힘의 원천임을 인식할 것 등을 제안했다. 그는 공화당 정치인들의 경직적인 사고를 비판하고 버락 오바마가 논리적이라고 평가했다.

오바마는 선거 운동 중에 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에는 자카리아가 국무장관이 될 것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이 책을 읽은 나의 소감은 자카리아가 자신의 정체성을 정당화하는데 너무나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즉, 객관성이 뒤진다는 말이다. 그는 경제성장이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가 열강으로 등장하도록 했다고 하면서, 그럼에도 미국이 좋은 나라이고 강한 나라라고 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의 다른 나라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라크 전쟁과 이슬람 세력의 위험은 하찮게 취급했다. 미국의 금융산업과 자동차산업에 대한 그의 진단은 너무나 피상적이다. 

이 책은 결국 인도의 부유한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나서 미국에서 대학교육을 받고 당당하게 미국 언론계에서 성공한 저자가 자신이 걸어 온 과정을 합리화시킨 것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앞서 지적했듯이, 책이 나오고 몇 달 후에 세계 경제는 앞을 볼 수 없게 되어버렸고, 인도에선 대규모 이슬람 테러가 발생했다. 세상은 그가 생각하듯이 그렇게 친절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오바마가 이라크에서 미군을 철수시킨 후에 이라크와 중동이 더 큰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고, 파키스탄, 사우디 등 여러 나라에서 근본주의 이슬람 세력이 정부를 장악한다면 자카리아는 무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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