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가브리엘 쉔펠드, 돌아온 반유태주의 (2004년)
2009-03-20 09:02 1,383 이상돈



가브리엘 쉔펠드, 돌아온 반(反)유태주의 (2004년, 엔카운터 북스, 193쪽)

Gabriel Schoenfeld, The Return of Anti-Semitism (2004, Encounter Books, $25.95)

이 책의 저자 가브리엘 쉔펠드는 유태인으로, 하버드 대학에서 정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커멘터리지(誌)의 편집인을 지냈다. 저자는 최근에 전세계적으로 팽배해 지고 있는 반(反)유태주의(anti-semitism)를 분석하고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에는 유럽의 극우가 반유태주의를 선동했지만, 이제는 이슬람권이 자신들의 낙후성과 불행에 대한 구실로 나치를 무색하게 하는 반유태주의를 주창하고 서방의 진보좌파가 이에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반유태주의는 원래 유럽에서 발달해서 히틀러에 의한 대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초래했다.  미국은 반유태주의와는 무관했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옛날 말이 되었다. 미국에서도 대학 캠퍼스와 미디어 엘리트 사이에서 반유태주의가 성행하고 있다. 이슬람 국가와 아랍권의 반(反)유태, 반(反)이스라엘 선동은 광적(狂的)인 집착이 되고 말았다. 말레이지아의 마하티르 같은 교육 받은 지도자들도 이스라엘과 유태인에 대한 저주를 퍼붓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란의 근본주의 이슬람 정부는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는 존재하지 않은 사실이고 유태인들이 꾸며낸 거짓이라고 주장하면서, 핵무기로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이집트에도 반유태주의가 팽배해 있어서, “나는 이스라엘을 저주해’라는 가요가 유행할 정도이다. 많은 아랍인들은 9-11 테러가 “유태인이 지배하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믿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현상은 아랍권이 그들의 좌절을 외부의 탓으로 돌린 데서 비롯됐다고 본다. 오늘날 아랍권은 비민주적 체제 아래에서 대부분의 국민들이 빈곤한 생활을 하고 있고, 문화 교육 과학기술의 수준도 한심할 정도로 미미하다. 이 같은 내부 문제에 대한 불만을 ‘외부의 적(敵)’인 유태인과 이스라엘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과의 몇 차례 전쟁에서 번번히 완패한 아랍권 정권은 이스라엘과 미국을 한데 묶어서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무능을 가려버리려 하고 있다.

9-11 테러를 주도한 과격 이슬람단체의 창시자인 사이드 큐트브는 기독교와 유태교 세계를 없애버리라는 독트린을 만들어서 종교학교 등을 통해 전파시켰다. 뉴욕 한복판에서 유태인 성직자가 살해되는 등 유태인을 상대로 한 테러가 늘어가고 있다. 서유럽에서는 유태인 묘지와 유태 교회(시냐고그)가 파괴되어도 정부와 언론은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서유럽에 무슬림의 인구가 늘어나서 정부와 언론이 오히려 무슬림의 눈치를 보고 있다. 오늘날 서유럽의 지식인과 언론인이  이슬람을 비판하면 테러 위협을 감수해야 할 정도가 됐다.

저자는 유럽의 반유태주의는 기독교 문명에 뿌리깊이 박혀있다고 본다. 유태인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보지 않고 골고타의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도 반유태주의를 선동했고, 그런 연유로 루터교에는 반(反)유태 정서가 아직도 강하다. 가톨릭 교회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못한데 대해 사과했지만 개신교는 이에 대해 별다른 책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紙)와 영국의 가디언지(紙) 같은 유럽의 진보언론은 과거에 히틀러가 가졌던 것과 똑 같은 시각에서 중동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중동분쟁은 전적으로 이스라엘 때문이라고 쓰지만, 아랍 테러단체의 반인간적 잔인성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다. 유럽의 좌파 정치인과 지식인들에게 반유태주의는 가장 편리한 발언대가 되고 말았다.

미국에서도 반유태주의가 노골적으로 번져가고 있다. 과거에 반유태주의를 선동했던 백인 극우세력은 오클라호마 정부건물 폭파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이제 거의 사라졌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랍 이민자들이 증가한데다가, 흑인 중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경우가 늘어나서 미국에서도 반유태주의가 갈수록 강해 지고 있다. 미국의 교도소는 이슬람이 번져가는 온상 역할을 하고 있다. 다른 종교가 교도소 선교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안에 이슬람이 흑인 등 소수민족 죄수들사이에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루이 파라칸이 이끄는 ‘이슬람 네이션’(The Nation of Islam)이란 단체는 폭력적 반유태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백인 정치인이 유태인을 비하하거나 근거 없이 비난하면 비판을 받지만, 흑인 정치인이나 시민 운동가가 유태인을 비난하는 데 대해선 아무런 비판이 가해지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흑인들을 비판하면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듣기 때문에 아무도 흑인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고, 이에 따라 제시 잭슨 , 알 샤프튼 등 흑인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마음 놓고 유태인 때리기를 자행하고 있다.

미국의 대학에서는 수정주의 학자들이 반유태주의 선동에 앞장서고 있다. 노암 촘스키는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로베르 뽀리송과 함께 반유태주의 선전에  앞장서고 있고, 유태계 학자 중에도 반유태주의를 내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뉴욕타임스의 모린 다우드 같은 진보성향의 칼럼니스트들도 반유태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진보 언론은 이라크 침공을 주장했던 더글라스 페이스, 리차드 펄, 폴 울포비츠 등 ‘네오콘 3인방’이 유태인임을 들어서 조지 W. 부시가 이스라엘 로비에 의해 납치됐다는 식으로 썼다. 중동 문제가 난마(亂麻)와 같이 얽혀서 풀기가 어려워지고 미국이 중동의 수렁에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자, “무슬림의 바다에 작은 유태인 국가를 세운 것이 20세기 최대의 실책”이라는 주장이 미국에서도 대두되고 있다.

저자는 세이트 루이스호(號) 사건을 상기시킨다. 1930년-40년대에 미국은 유럽의 유태인 난민들을 수용하기를 거부했고, 그 덕분에 세인트 루이스호(號)를 타고 탈출한 979명의 유태인은 다시 유럽으로 돌려 보내져서 결국 수용소에서 모두 죽었다. 저자는 아랍권의 반유태주의와 중동 문제는 하나의 현실이지만, 이를 경계해야 할 서방의 정치적 도덕적 지성적 장벽이 무너져 내리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c) 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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