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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나키가 다시 오는가
작성일 : 2020-06-15 08:53조회 : 1,642


4월 7일 ·

아나키가 다시 오는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식량 공급 체인이 위협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이쯤되면 우리는 더이상 후쿠야마가 말하는 Last Man이 아니라고 해야겠다. 크루즈선이나 타고 다니면서 이루어 놓은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라스트 맨이 아니라 스스로 생존과 자유를 쟁취해야 하는 퍼스트 맨 신세를 닮아 가는게 아니냐는 말이다.

후쿠야마가 버지니아의 조지 메이슨 대학에서 <역사의 종언>을 쓸 때 로버트 카플란은 내란과 기근, 압제와 테러가 지배하는 아프리카, 중동, 중앙아시아를 누비면서 이들 지역의 생생한 현실을 글로 옮겼다.이렇게 해서 2000년에 나온 책이 <아나키가 다가 온다>이다.

카플란은 이들 지역에서 자연자원파괴, 인구증가, 질병, 종족주의, 범죄 등이 전세계의 안전을 파괴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이런 지역에 심으려는 노력은 의미가 없으며 오히려 지역을 불안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 책이 나오고 1년 후 9-11이 발생했다. 카플란이 말하는 아나키가 미국의 심장부를 찌른 것이다. 역사는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 중이었다.

9-11 후인 2002년, 카플란은 <전사 정치>를 펴냈다. 그는 20세기에서와 마찬가지로 21세기도 유토피아를 내세운 위험한 포퓰리즘이 서방을 위협할 것이며, 따라서 지도자들은 희생과 과정을 중시하는 기독교 윤리를 벗어나서 결과를 추구하는 이교도의 전사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계는 모던하지도, 포스트모던하지도 않으며, 책의 표지가 상징하는 고대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조지 W. 부시는 이 책을 읽고 이라크 침공을 결심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여하튼 20년에 걸친 테러와의 전쟁은 세계를 보다 위험하게 만들었고 미국의 국력을 소진시켰다. 그리고 통화공급과 재정적자로 버텨오던 경제는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계는 위험으로 가득차 있고 평화와 번영은 환상이라고 경고한 카플란도 미국과 유럽이 바이러스로 휘청거릴 줄은 당연히 예상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서며, 무엇보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꼴을 보면 특히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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