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2012 박근혜 비대위 회고
2020-06-28 11:57 8 이상돈

4월 28일 ·


2012 박근혜 비대위 회고


통합당이 추진하는 김종인 비대위가 난항을 겪는 것으로 보인다. 아니, 통합당 중진의원들은 자기들 명분도 살리고 김종인 비대위를 무력화시키기로 담합을 했던 것 같다. 그 모습을 보니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에 힘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과반수 의석을 훌쩍 뛰어 넘는 대단한 승리를 거두었고 그것을 기초로 미디어법, 4대강 사업을 밀어 부쳤다. 그러나 그런 독단적 국정운영의 끝은 2011년 말 홍준표 대표가 이끌던 여당 지도부의 붕괴였다. 그것으로 이명박 정권은 선거에 앞서서 심판을 받은 셈이다. 그리고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섰다.

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어느 시점이 오면 나를 부를 것으로 생각했고 마음의 준비도 하고 있었다. 나는 박 대통령이 나를 부르면 그것은 이명박 폭정과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고, 또 그래야만 총선에서 승리하고 대선으로 순항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재오 의원 등 이른바 친이 핵심은 불출마를 하거나 공천배제를 하는게 옳다고 믿었다. 김종인 박사도 같은 생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박 의원은 비대위에 포함시키지 않고 그 대신 쇄신파인 김세연 주광덕 의원을 포함시켰다.

총선을 앞둔 비대위는 공천권을 갖게 되는데, 친이실세 용퇴론이 나오자 친이계 의원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반면에 친박 의원들과 총선출마를 앞둔 친박들은 숨죽이면서 나와 김종인 박사가 벌이는 대리전을 보고 있었다. 이 정도의 싸움은 현실정치에선 불가피하고, 또 비상한 상황을 맞아 대책을 세운다는 위원회가 들어섰는데 그 정도도 안 하면 이름 값도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는 단순한 세력다툼이 아니라 여당이 스스로 노선을 바꾸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박근혜 비대위 관련 기사는 민주당 관련 기사를 우선 분량면에서 압도해 버렸다.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도 그러했다. 박근혜 비대위 관련 뉴스가 많기도 하고 재미있다 보니까 새누리당을 출입하던 진보언론 기자들이 우스개 소리로 자기들 정체성을 잃어버리겠다고도 했다.

당시 박근혜 비대위에 가장 적대적인 언론은 이른바 보수지라는 동아일보였다. 동아는 틈만나면 박근혜 비대위를 비판 또는 비난했다. 물론 동아는 4대강 사업을 가장 열심히 지지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총선에서 민주당이 이기길 원했던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된다. 한번은 아침 회의 앞서 박근혜 위원장과 차를 같이 했는데, 테이블 위에 놓인 동아일보에 뭔지 우리를 안 좋게 쓴 기사가 있었다. 그걸 본 박근혜 위원장은 '저 신문이 원래 그래요'라고 했다.

박근혜 비대위에 대한 당내 비판은 1월 중순에 있었던 비대위/의원총회 연석회의를 계기로 잦아 들었다. 회의라기 보다는 비대위원들을 앉혀 놓고 의원들이 발언을 하는 자리로서 부담스러웠다. 오후에 네 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김종인 박사는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불참해서 내가 제일 앞 줄에 박근혜 위원장 옆에 앉았다. 오랜 시간 동안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말한마디 없이 경청하는 그 모습은 지금도 내 뇌리에 생생하다. 진수희 의원이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김종인 박사를 비난하는 등 비판 발언도 많았지만 이럴 때 힘을 합쳐야 한다는 발언도 있었다. 전재희 의원과 김영선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두 중진 여성의원은 이미 우리당은 국민들한테 버림 받아서 비대위고 뭐고 효과가 있겠느냐고 장탄식했다. 그렇다면 탈당을 하거나 불출마하면 되지, 잘 해보겠다고 발족한 비대위에 저런 말을 왜 하나 싶었다. 두 사람은 공천은 받았지만 이언주, 김현미 후보에게 패배했다. 나는 그 결과를 보고 역시 정신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거물을 꺾은 두 사람이 크겠구나고 생각했는데, 여하튼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네 시간에 걸친 비대위 규탄대회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박근혜 위원장은 나에게 '힘 드시지요?'라고 말을 건넸다. 사실 그 말은 내가 해야 맞는 것 같았다. 이런 글을 쓰며 지난날을 되돌아 보니 지금의 현실이 현실로 느껴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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