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알렉산더 비켈 1924-1974
2020-06-30 09:46 23 이상돈


5월 1일 ·


알렉산더 비켈 1924-1974


이따금 국회의원이 자기가 링컨을 존경한다거나 루스벨트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때마다 나는 속으로 웃는다. 도무지 제대로 된 미국 역사책을 읽었을 것 같지 않은 사람이 그 복잡한 남북전쟁과 뉴딜 시대의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니 말이다. 사실 누구를 존경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50세 넘은 사람에게 당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본다면 모르거니와...

박근혜 비대위 덕분에 제법 유명해진 나에게 어느 잡지 기자가 인터뷰를 하면서 그런 질문을 하기에 나는 로널드 레이건, 윌리엄 버클리 2세, 그리고 알렉산더 비켈이라고 답한 적이 있다. 각각 정치인, 논객, 법률가인데, 20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또 지적 숙제를 안겨 준 사람은 예일대 로스쿨 교수이던 알렉산더 비켈이었다.

 미국 헌법은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공부하는 과목이고, 나는 미국 대법원이 미국 사회의 변천에 있어서의 역할을 중심으로 석사학위 논문을 썼다. 내가 서울법대 학부를 다닌 1971-73년 기간은 얼 워렌 대법원장이 퇴임하고 그 후임으로 위렌 버거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였는데, 뉴욕타임스의 국방부 비밀문서 공개사건, 워싱턴포스트의 워터게이트 녹음테이프 보도 사건 등 세기의 재판이 연방대법원에 의해 내려졌다. 닉슨의 운명은 사실상 대법원에 의해 결정지어진 것이다.

서울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미국 대법원에 관한 책(물론 모두 영어 원서)과 당시 서울법대 도서관에 있던 미국 학술지 논문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때는 대학원이 수업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오히려 강의 부담없이 공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많은 논문을 읽었는데 특히 알렉산더 비켈 교수의 논문을 감명깊게 읽었다. 우선 그의 글은 읽기가 어려웠고, 그의 지식은 역사와 정치철학 등 광범해서 나는 어떻게 이런 논문을 쓸 수 있나 하고 그 지적 깊이와 폭에 감탄했다. (그러니 내가 유신에 협조했던 헌법교수나 알량한 박사들을 어떻게 보았겠는가.)

1924년에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유태인인 비켈은 부모가 모국을 탈출해서 나치의 학살을 면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하버드라고 불리는 뉴욕시립대학을 나오고 하버드 로스쿨을 최우등으로 졸업한 후 프랑크퍼터 대법관의 연구관을 지내고 예일대 교수가 됐다. 그는 주목할 만한 논문을 연거푸 내서 30대부터 매우 영향력 있는 헌법학자로 인정받았다.

비켈은 사법부는 다수결로 움직이는 정치과정을 견제하는 반다수적 counter-majoritanian 기구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정치기구인 의회의 결정을 존중하는 소극적 미덕 passive virtue을 갖추어야 하며, 사법부는 의회법에 대한 헌법심사를 함에 있어서 원칙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켈은 흑백인종평등, 선거구 인구평등을 가져온 워렌 대법원의 판결이 법원칙에서 벗어나고 역사를 편의적으로 해석한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해서 주목을 샀다.

요약하자면, 사법부는 법원이어야지 진보를 위한 정치적 메카니즘으로 기능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비켈은 국방부 비밀문서 공개에 관한 소송에서 뉴욕타임스 측을 대리해서 닉슨 행정부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를 사전 제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켈은 또한 자신은 에드먼드 버크의 정치적 전통을 따른다면서 포퓰리즘을 경계했다. 나는 비켈로부터 지적 충격이라고 할만한 영향을 받았다.

내가 비켈에 심취해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가 74년 11월에 뇌종양으로 50세 생일을 앞두고 사망한 것이다. 나는 이런 훌륭한 학자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뜰 수 있나고 정말 안타까워 했다. 미국 법조계와 학계도 그의 때 이른 타계를 깊히 애도했다.

2005년 가을, 부시 대통령은 탁월한 법률가인 존 로버츠를 대법원장에 지명했다.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로버츠는 전임 렝퀴스트 대법원장의 연구관을 지내고 레이건 백악관 법무실에서 일한 적이 있다. 로버츠는 대법원장 취임 직후에 공영방송인 PBS와 인터뷰를 했는데, 기자가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법률가가 누구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알렉산더 비켈이라고 답했다. 로버츠는 비켈이 사망한 후인 1976년에 로스쿨에 입학했으니까 공부하면서 비켈의 논문을 읽었을 것이다.

비켈을 구태여 진보와 보수로 구분한다면 그는 자신이 버크주의자 Burkean 라고 밝혔듯이 보수라 할 것이다. 하지만 비켈은 단순한 보수주의자가 아니었다. 대의민주주의와 의회주의를 존중하면서도 다수결로서도 침해할 수 없는 항구적 가치 enduring values를 지켜야 하는 사법부, 그리고 그런 사법부가 지켜야 하는 법과 원칙을 두고 고민했던 위대한 싱커 thinker 였다.

사진은 비켈의 저서다. 모두 그가 쓴 논문을 엮어 낸 책이다. 오른 쪽 The Morality of Consent는 사후에 예일대 출판부가 펴냈는데, 추모하는 의미에서 검은 색 표지를 쓴 것 같다. 그가 남긴 책은 세권 뿐이지만 항구적 가치 enduring value를 갖고 있다고 나는 확신한다.


보수는 언제부터 몰락했나 
환경노동위원회 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