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서울법대 1971-1974
2020-07-01 09:17 20 이상돈

5월 3일 ·


서울법대 1971-1974


대학 4년 중 1학년 때는 공릉동 캠퍼스에서 교양과정을 다녔고 71년에서 73년까지 3년간 동숭동 캠퍼스에서 공부를 했다. 학부 6학기 중 72년 1학기와 73년 1학기만 온전하게 수업을 하고, 나머지는 휴교령 계엄령 등으로 학교 문을 닫았다. 그러면 한적한 사찰에 방을 얻어서 책을 싸들고 가는 친구가 많았는데, 동기생 중에는 그러다가 아예 스님이 된 경우도 있었다.

서울법대는 71년에서 73년에 이르는 기간이 수난의 세월이었다. 71년 봄에 형법을 가르치시던 유기천 교수님이 총통제 개헌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폭탄선언을 하고 미국으로 출국하신 일이 있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에서 법학박사를 하신 유 교수님은 60년대에 서울대 총장을 지냈다. 유 교수님은 그런 후 귀국하지 않아서 면직이 됐다.

10월 유신 후 교수들은 재임용 심사를 거쳐야 했는데, 미국 체류 중이던 김석조 교수님은 구차하게 그런 걸 하지 않겠다고 해서 면직이 됐다. 나보다 12년 선배인 김석조 교수는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하고 조교수로서 공법학을 가르치다가, 박사학위를 마치기 위해 다시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 10월 유신을 맞은 것이다. 그 후 미국에서 변호사를 하신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73년 가을, 최종길 교수님은 의문사를 당했다. 그 짧은 기간 중 서울법대는 매우 훌륭한 교수 세분을 잃어버린 것이다.

유신 때문에 1973년 사법시험은 6개월 늦춰졌는데, 무엇보다 헌법 교과서가 어떻게 나오냐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헌법을 가르치시던 김철수 교수님이 유신 후 헌법 교과서를 개정해서 내셨는데, 그 내용 중 유신헌법을 비판한 부분이 있어서 큰 고생을 하셨다고 우리는 들었다. 그 책은 전부 몰수되어 폐기되고 문제 부분을 고친 상태로 나와서 우리는 그 책을 보았다.

유신헌법을 기초한 한태연 교수가 펴낸 책은 “유신헌법이야말로 세계헌법역사의 최종판”이라는 식의 논리를 펴서, 우리는 그것을 곡학아세의 금자탑이라고 불렀다. 김철수 교수님은 내가 서울대 석사학위를 할 때 지도교수였고 나를 아껴주셨으나 내가 미국에서 다른 분야로 박사학위를 하고 1990년 들어서 주로 환경법 국제환경법을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됐다.

나중에 다시 쓸 일이 있겠지만 서울법대에서의 교수 인맥이 오늘날 법조계 내의 대립의 뿌리를 형성하게 된다. 그 시작은 우리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초였다. 요즘 조국 교수 사태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그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기회를 보아 말하고자 한다.

조국과의 전쟁 ? 
1971년 서울대생 야당 당사 난입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