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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다르푸르 학살도 온난화 탓 ?
작성일 : 2008-02-20 01:43조회 : 1,634


다르푸르 학살도 온난화 탓 ?
(첨단환경 2007년 11월)

1.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기고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6월 16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다르푸르에서의 기후 범인(犯人)(A Climate Culprit in Darfur)’이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반 총장은 자기가 수단의 오마르 알바시르(Omar al-Bashir) 대통령을 만나서 유엔-아프리카 연합 평화유지군(UN-African Union Peacekeeping Force)을 다르푸르에 파견하기로 합의했다면서, 이로서 지난 4년 동안 2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분쟁을 종식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르푸르 분쟁은 생태적 위기에서 시작되었으며, 그런 생태적 위기는 부분적으로는 기후변화로 인해 초래됐다고 주장했다.
반 총장은 유엔 통계에 의하면 남부 수단 지역에는 1980년대 초에 대비해서 강수량이 40%나 줄었고, 이로 인해 건기(乾期)에 다르푸르에서 폭력 사태가 발생했다고 했다. 또한 수단의 아랍 유목민들은 우기(雨期)가 오면 다르푸르의 목초지에 자유롭게 들어왔었지만, 가뭄이 오래가자 다르푸르의 흑인 부족은 펜스를 치고 유목민들의 유입을 막았고, 이로 인해 인종분쟁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엔의 노력이 성공하면 200만 명의 난민이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을 것이며, 지구의 다른 곳에서 발생하는 분쟁도 식량과 물의 위기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2. 다르푸르 사태

다르루르는 수단의 서쪽 지역으로 면적은 프랑스 보다 약간 작다. 건조한 분지(盆地) 지역으로, 6월-9월에 비가 많이 내려서 목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10월부터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가 시작된다. 우기에 부족민들은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다르푸르는 전형적으로 부족국가를 유지해 왔으나, 1875년 영국의 식민지이던 이집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83년에는 부족장이 반란을 일으켜 이집트 군대를 축출했다. 1898년에는 영국-이집트 연합군이 다시 다르푸르를 장악했다. 하지만 영국-이집트 정부는 다르푸르 부족의 자치권을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르푸르가 오토만 제국의 영향 아래 들어갈 것을 우려한 영국은 다르푸르를 침공해서 영국령 수단에 병합시켜 버렸다. 하르투움에 자리잡은 수단의 중앙 식민정부는 다르푸르를 소외시켜 왔고, 수단이 독립한 후에도 그런 정책은 계속되어 왔다.
1970년대에 다르푸르는 북쪽의 리비아와 서쪽의 차드 사이의 분쟁에 휘말렸다. 당시 수단의 대통령이던 니미에리는 차드를 공격하기 위한 전진기지로 다르푸르를 이용했다. 1983년과 1984년에 다르푸르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이로 인해 심각한 기근이 발생해서 약 10만 명이 죽었다. 1985년 니미에리는 쿠데타로 전복됐고, 망명 중이던 알마디가 돌아와서 연립정부를 수립했다. 1989년에 알바시르가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03년 들어 다르푸르에 기반을 둔 두 단체가 수단 중앙정부가 비(非)아랍 부족을 탄압한다고 주장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수단 중앙정부는 남부 수단에서 일어난 내란 때문에 다르푸르에 정부군을 파견할 수 없었다. 2003년 4월 반군(叛軍)은 정부군 기지를 급습해서 점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사태를 두고 볼 수 없게 된 수단 중앙정부는 다르푸르 지역의 아랍 유목민인 잔자위드(Janjaweed) 부족을 무장시켜서 대항하도록 했다.
전통적으로 전투적인 잔자위드는 다르푸르 반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이들은 다르푸르의 비(非)아랍 양민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2004년 봄에 수 천명이 집단 학살되자 10만 명이 차드로 도망갔다. 그러자 다르푸르는 비로소 세계의 주목을 사게 되었다. 그 후 2006년 여름까지 사태는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갔지만 유엔은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수단 정부가 국내문제라면서 안보이사회가 이 문제를 다루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2006년 8월 유엔 안보이사회는 17,300명의 평화유지군을 다르푸르에 보내기로 결의했다. 그럼에도 수단은 다르푸르 지역에 대한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2006년 11월, 유엔 인권조사위원은 수단 정부가 의도적이고 고의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반군과 정부군과의 전투는 차드와의 국경지역으로 번져가서 두 나라 군대간에 교전이 발생하는 등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 갔다. 2007년 5월, 차드의 데비 대통령과 수단의 알바시르 대통령은 평화협정을 체결했고, 2007년 7월 31일 드디어 유엔 안보이사회는 유엔-아프리카 연합 평화유지군을 다르푸르에 파견하기로 결의했다.

3. 반기문 총장에 대한 비판

반기문 총장의 기고문은 즉각적 비판을 받았다. 다르푸르 현지를 오랫동안 답사한 후 ‘긴 날의 죽음 : 다르푸르 학살의 중요한 시점(A Long Day's Dying : Critical Moments in the Darfur Genocide)'란 책을 쓴 스미스 대학의 에릭 리브스 교수는 6월 20일자 가디언지(紙) 칼럼에서 유엔이 다르푸르 사태의 악화에 큰 책임이 있다면서, 이에 대하여 침묵한 반 총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특히 반 총장이 금년 1월에 에디오피아에서 학살의 주범인 수단의 독재자 알바시르 대통령을 만나서 환담이나 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엔 안보이사회가 평화유지군 22,500명 파견을 결의했음에도 유엔은 단지 기술자 200명과 기강이 서있지 않은 아프리칸 연합군만 다르푸르에 파견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리브스 교수는 온난화가 사막의 확대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도 있지만, 다르푸르에서도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와 같이 유목민과 정착민 사이의 다툼은 늘상 있어 왔기 때문에 생태변화가 다르푸르 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리브스 교수는 다르푸르 학살 사태가 발생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수단 중앙정부가 다르푸르의 비(非)아랍 부족을 절멸시키려고 정치적으로 작정했고, 유엔이 사태에 무관심하고 미온적으로 대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6월 21일자 휴먼이벤츠(Human Events)에 실린 칼럼에서 평론가인 맥 존슨은 반 총장이 “다르푸르에서는 2003년에 비로소 식량과 물이 부족하게 됐고, 그래서 분쟁이 발생했다”고 한 부분에 대해 “에디오피아와 근접한 남부 수단은 2003년 전에는 굶주림이 없었다니, 아마 에덴 동산이 근처에 있나 보다”고 비꼬았다. 그는 2005년 가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루이지애나와 미시시피에 큰 피해를 입히자 환경운동을 한다는 로버트 케네디 2세(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가 온난화 때문에 허리케인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던 것을 상기시켰다. 맥 존슨은 케네디 2세가 헤로인 소지혐의로 1500시간의 사회봉사 명령을 받고 일한 후에 기후변화 전문가가 되어서 허리케인이 온난화 때문이라고 떠들었다고 빈정댔다. 그는 환경주의자들이 온난화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지역은 다르푸르 외에도 소말리아, 코트디보아르, 부르키나 파소 등 여러 곳이라면서, 태풍 기근 홍수 기근 질병 등 세상의 모든 비극은 미국이 뿜은 온실가스라고 믿는 사람이 많으며, 반 총장도 그러하다고 비꼬았다.
 
4. 프레드 톰슨의 기고문

현재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 나온 프레드 톰슨(Fred Thompson) 전(前) 상원의원은 6월 28일자 타운홀닷컴(Townhall.com)에 기고한 칼럼에서 반 총장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톰슨은 우선 다르푸르 사태를 관찰해 온 사람이면 반 총장의 주장이 얼마나 괴이한지를 잘 알 것이라고 했다. 그는 수단에서는 기독교 흑인과 무슬림 아랍 부족, 그리고 인근의 이집트와 리비아 사이에서 국지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오늘날 수단에서 기독교 흑인은 거의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무슬림 분파 사이에서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다. 톰슨은 주기적 가뭄은 사람의 삶을 어렵게 하지만 다르푸르에서 발생한 것 같은 비극을 일으키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톰슨은 반 총장이 기후변화를 비난하는 이유는 명백하다고 했다. 즉, 만일에 반 총장이 수단 중앙정부를 조종하고 지원하는 이슬람 국가를 비난하면 그는 온통 적(敵)으로 둘러 쌓일 것이지만, 기후변화를 비난하면 그것은 곧 미국을 비난하는 것이라서 학살에 책임이 있는 이슬람을 비난할 수 없는 반 총장은 편리하게 미국을 비난했다는 것이다. 톰슨은 유엔 사무총장이 기후변화를 핑계삼아 냉엄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유감이라고 했다.

5. 오늘날의 유엔

반 총장의 기고를 둘러싼 논쟁을 이해하기 위해선 오늘날의 유엔을 알 필요가 있다. 오늘날 유엔 회원국의 과반수는 비(非)민주적 국가이다. 유엔의 인권위원회에서 리비아, 시리아, 수단 같은 독재국가가 이사국을 역임했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유엔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냉전 이후 세계에서도 유엔은 평화유지를 위해 별다른 일을 하지 못했다. 유엔은 레바논, 소말리아, 구(舊) 유고 연방, 르완다, 수단 등 어느 한 곳에서도 평화유지에 성공하지 못했다. 유엔은 이라크, 북한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제기된 지역에서도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런 유엔의 사무총장이 유엔에 팽배해 있는 반미(反美) 정서에 편승한 글을 발표했다가 혹독한 비판을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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