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1977-78 회고
2020-07-07 19:09 21 이상돈

5월 19일 ·


1977-78 회고


나는 군 복무를 해군 단기 장교로 했는데, 유신정권 말기이자 카터 정권 초기인 77년 8월부터79년 7월 전역할 때까지 대방동에 있던 해군본부에서 근무했다. 당시 해군본부에는 나같은 서울대 출신 장교들이 많았는데, 하는 일은 공무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특히 정기국회에 대비하는 일이 비중이 컸다.

내가 여의도 국회 의사당을 처음 들어가 봤던 때는 그 시절이었다. 국방위원회가 열려서 참모총장과 부장이 참석하면 당연히 처장 과장이 따라가는데, 답변자료집과 관련자료철(전부 군사2급비밀이었다)을 들고 처장 과장을 수행한 적이 있었다. 의원이 질의하면 뒷좌석에 앉아있던 나는 내가 초안을 만든 두툼한 답변자료집을 뒤적여서 앞으로 전달할 준비를 하곤 했다. 참모총장과 부장은 당연히 훌륭하게 답변을 하지만 그런 대비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카터는 77년 초에 취임했다. 76년 여름에 도끼만행으로 전쟁이 일어날 뻔 했는데, 카터의 대선공약 중 하나가 주한미군 철수였다. 실로 기가 막힐 일이었다. 당시 미군이 철수했더라면 당연히 남한에 있던 미군 핵무기도 철수했을 것이니, 제2의 월남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런 카터가 대통령이 됐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카터를 보는 우리 국군장교단의 시각이 어땠을지는 상상이 갈 것이다. 혈기왕성한 사관학교 출신 우리 장교들은 카터를 '카터 그 개**'라고 불렀다. 특히 월남전에 참전했던 장교들이 느꼈던 배신감은 어마어마 했다.

어쩌면 그런 분위기가 자주국방을 추진하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지 않았나 한다. 민주주의도 좋지만 월남처럼 될 수는 없다는 인식이 있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그 때는 그 시대의 논리가 있었던 것이다. 풍요한 민주주의 시대에 태어나서 성장한 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운, 나름대로의 상황이 있었다고 할까

무능해야 대통령이 된다 ? 
지미 카터, 무능의 상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