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뉴올리언스 공공임대주택

작성일 : 2020-07-11 08:32조회 : 1,633

6월 2일

뉴올리언스 공공임대주택

대학시절에 나는 빈곤퇴치를 위한 강력한 복지대책을 촉구했던 경제학자 군나르 미르달이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구의 절반이 흑인이던 뉴올리언스 New Orleans에서 공부하던 중 그런 생각은 눈 녹듯이 사라지고 말았다.

내가 공부를 한 튤레인 대학 Tulane University은 남부에선 명문으로 뽑히는데, 뉴올리언스의 업타운 up town 지역의 고풍 어린 우아하고 아름다운 고급주택가 한복판에 있었다. 그 도시의 부유한 사업가, 변호사 그리고 교수들도 대개 캠퍼스 주변에 살았다. 대학에서 간선도로로 비즈니스 빌딩과 유명한 관광지 프렌치 쿼터 French Quarter가 있는 다운타운으로 가려면 공공주택 public housing 단지를 잠시 관통해야만 했다. 슬럼이 돼버린 붉은 벽돌건물이 거기부터 양쪽으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그 지역으로 들어갈 일은 전혀 없었지만 자동차로 거기를 관통하는 것조차 위험할 수 있어서 긴장해야만 했다.

뉴올리언스는 뉴딜 정책의 하나로 추진한 공공임대주택을 1940년대와 50년대에 실로 엄청나게 건설했다. 처음에는 백인들도 많이 들어가 살았으나 얼마 지나선 흑인들만 거주하는 곳이 되고 말았다. 임대주택이니 관리도 잘 안되어서 1970년대 들어선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됐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달리 살 곳이 없었다. 자연히 살인 마약 등 강력범죄가 빈발하는 매우 위험한 곳이 돼버렸다.

내가 공부했던 79년-80년대 초에 미국의 대도시는 범죄가 큰 문제였는데, 뉴올리언스는 인구 대비 살인이 가장 많은 살인의 수도 Murder Capital 이었다. 살인은 공공주택단지 내에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총질과 칼싸움은 다반사였다. 공공주택단지는 너무 위험해서 야간에 경찰차로 순찰하는 경관은 방탄복과 샷 건 shotgun으로 단단히 중무장을 해야 했다. 공공주택단지 야간순찰은 월남에서 베트콩 지역에 수색 나가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신문기사가 날 정도였다.

그러면 도대체 거기 사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했을 지가 궁금할 것이다. 이런저런 최저임금을 받는 일용직을 많이 했겠지만 단순히 복지로 먹고 살 수도 있었다. 우선 임대주택은 거의 무상이었다. 게다가 존슨 대통령이 빈곤과의 전쟁 War against Poverty을 한다면서 각종 복지를 저소득층에 제공했다. 푸드 스탬프가 나오고, 부모 중 한명이 없고 아이가 있으면 아이 숫자만큼 양육비가 나오고, 알콜과 마약 중독으로 일을 못하면 장애인 수당을 받았으니 굳이 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 현상은 뉴욕 시카고 등 어디나 마찬가지였지만 뉴올리언스는 그 비중이 컸다.

1980년 대선에 출마한 로널드 레이건은 무상복지를 없애고 그 대신 직업훈련을 제공해서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데 동참하도록 하겠다는 유명한 연설을 했지만 레이건도 이미 주어진 복지를 손대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면 당시 거기서 내가 만나고 했던 변호사 교수들은 공공주택과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 이들이라고 대책이 있을 수 없었고, 어쩌면 이들은 자신들은 세금을 낸 것으로 할 바를 다 했다는 생각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20년 세월이 흘렀다. 2005년 늦여름, 초대형 허리케인 캐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덥쳤다. 제방이 무너지자 저지대에 있던 공공주택단지는 몽땅 물에 잠기고 말았다. 그 때 CNN을 통해 전세계에 알려진, 물에 잠긴 뉴올리언스 공공주택단지의 처참한 모습은 미국이 아니라 제3세계였다. 다만 제3세계와 다른 점은 미국의 빈민은 비만이 많다는 것이다. 허리케인 덕분에 뉴올리언스 시는 그 방대한 지역을 포기했고, 거기에 살던 많은 주민들은 휴스턴 등지로 분산되어 흩어졌다. 마침내 이들이 공공주택단지란 게토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들 중 얼마가 새 환경에서 적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뉴올리언스는 극단적 경우이지만 미국의 어느 도시나 루스벨트의 뉴딜과 존슨의 위대한 사회 Great Society가 건설한 낡은 공공주택은 심각한 도시문제가 되어 있다. 정부가 임대주택을 건설하기 보다는 개인이 주택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취했던 싱가포르의 리관유 총리, 그리고 그것을 본받아 주택청약예금과 주택부금 제도를 도입한 박정희 대통령이 보다 현명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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