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국 흑인 사회에는 지도자가 없다

작성일 : 2020-07-12 17:08조회 : 1,632

6월 5일

미국 흑인 사회에는 지도자가 없다

지금 미국 주요 도시에서의 시위는 전과는 양상이 다르다. 흑인 외에도 백인 젊은이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는 트럼프 반대 시위 성격을 띄어가고 있다. CNN에 이들 도시의 시장들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흑인 시장과 여성 시장이 많다. 지난 30-40년간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던 셈이다. 물론 흑인 시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과 같은 일이 안 생긴다는 법은 없고, 흑인 시장이라고 해서 폭동과 약탈을 보다 쉽게 방지하거나 진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1992년 LA 폭동 당시 시장은 흑인인 톰 브래들리였다. 무려 20년간 시장을 지냈고 우리 교포들은 선거 때마다 그를 지지했지만 심상치 않았던 당시 상황을 억제하지 못했고, 정작 폭동이 일어나자 LA경찰은 베벌리 힐스와 유태인이 많이 거주하는 윌셔가 북쪽을 지키고 그 남쪽 코리아타운을 폭도들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그 때 해병전우회를 중심으로 교민 자경대가 조직되어 건물 옥상에 총을 들고 올라가서 지켰는데, 이 모습을 본 미국인들은 깜짝 놀랐다. 나는 1996년 가을 학기에 그곳에 있는 로욜라 로스쿨에 방문교수로 가 있었는데, 우리 교민들이 옥상에서 총을 들고 지켰던 윌셔가의 바로 그 아파트에서 4개월을 지냈다.

과거에는 경찰의 과잉조치에 흑인이 사망하는 이번 일 같은 게 생기면 흑인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현장에 나타나서 몇마디 하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암살된 후 그의 빈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제시 잭슨 목사다. 젊은 나이에 킹의 후계자로 부각된 잭슨은 Rainbow/PUSH라는 단체를 만들어서 여기저기서 막대한 기부금을 걷고 인종 문제만 생기면 간섭을 하면서 영향력을 키워가더니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와 그의 단체가 문제가 많음은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드디어 2002년에 그의 행각을 파헤친 책이 나오고 그것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어서 그가 자신이 운영하는 단체에서 일하는 여직원과의 깊은 관계를 갖고 사생아가 태어났으며, 이를 무마하기 위해 공금을 유용했음이 드러나고 말았다. 잭슨의 영향력이 실추했음은 물론이다.

잭슨 보다 10여년 나이가 젊은 흑인 목사 알 샤프튼도 흑인민권단체를 이끌면서 흑인 인권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경찰 폭력 사건 같은 일이 터지면 현장에 가서 시위를 지휘했다. 그의 연설은 너무 과격해서 사실상 폭동을 사주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일 정도였다. 그는 유태계와 몰몬교인을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그 또한 여성편력으로 구설수가 오르기도 해서 이제는 신뢰성을 잃어버렸다.

과격하기론 이슬람 네이션 Nation of Islam이란 단체를 이끄는 루이 파라칸을 능가할 인물이 없다. 1933년생인 그는 수십 년 째 이 단체를 이끌고 있는데, 백인들을 모두 죽여라는 설교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2년 LA 폭동이 발생하기 전에 LA에 방문해서 흑인들을 착취하는 한국인들을 비난하기도 했다.

LA 남부 흑인밀집 지역이 지역구인 흑인여성 하원의원 맥사인 워터스는 1991년부터 내리 당선된 15선 의원이다. 그 역시 흑인을 옹호한다면서 백인과 동양계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공공연하게 보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한국교민들이 흑인들을 착취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녔고 1992년 LA 폭동 때 약탈이 발생하자 의견을 묻는 기자에게 엄마들이 아이를 위해 우유와 신발을 가져간다고 말해서 기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이들의 영향력은 미미해졌지만, 이번 사태 같은 경우에 흑인 사회를 진정시킬 수 있는 리더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저러나 흑인 사회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던 사람은 빌 코스비일 것이다. 1937년생인 그는 흑인 중상층 가족을 그린 시트콤 빌 코스비 쇼 Bill Cosby show로 유명해졌다. 그는 실로 흑인들의 롤 모델이었다. 그런데 그가 60여명이나 되는 여성을 강간하거나 추행했다는 고발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더니 결국 장기징역형을 선고 받고 현재 복역 중이다.

흑인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일한다던 이들은 결국 자신들의 영향력과 재산을 늘리는데 보다 관심이 많았던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CNN에 자주 나오는 흑인 언론인 후안 윌리엄스가 펴낸 책의 제목대로, 이제는 충분하니까("Enough") 제발 그만하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윌리엄스의 책이 나온 지가 15년이 됐고, 윌리엄스의 말대로 그들의 시대는 저물고 말았다. 이들과 같은 이른바 거물 시민운동가들이 과연 흑인들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그것을 둘러싼 논란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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