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혼혈 흑인 문제

작성일 : 2020-07-12 17:19조회 : 1,766

6월 5일 ·

혼혈 흑인 문제

미국 주요 도시의 시위는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폭동은 잦아들었고 백인 젊은이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우리는 흔히 백인 흑인 하지만 사실 그 경계는 미국 사회에 있어서 매우 예민한 문제다. 과거에는 흑백인 혼혈을 물라토 mulatto라고 지칭했지만 그런 단어는 경멸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니그로 Negro 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오바마 처럼 아프리카 유학생이 백인 여성과 결혼해서 태어나는 경우는 근래의 일이고 드문 일이다. 남북전쟁 전에 남부에서의 흑백혼혈은 백인농장주 또는 그 자식들이 흑인 여자 노예를 범해서 태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 미국 남부의 법은 흑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흑인으로 노예신분이었다. (이를 One Drop Rule이라고 한다. 즉 흑인 피가 섞이기만 하면 무조건 흑인인 것이다.) 하지만 아주 악독한 농장주가 아닌 한 자신의 피가 섞인 흑인 노예는 특별하게 관리하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태어난 혼혈 노예들은 농장에서 가구를 만들거나 집을 고치거나 옷을 만드는 등 기능을 배웠다.

백인 농장주들은 죽기 전이나 죽은 후 유언으로 자기 피가 섞인 노예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곤 했다. 그러면 자유인이 된 이들은 북부로 올라가서 자신이 농장에서 익힌 기술을 바탕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갔고 그들의 자식들은 대학을 가고 백인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바 흑인 엘리트층을 구성하고 일찌기 전문직에 종사했으며 나아가서 선출직에도 진출했다. 내가 뉴올리언스에서 공부할 때 그곳 시장이던 더치 모리얼 Dutch Morial은 최초의 흑인 시장이었는데, 그도 과거 루이지애나에 정착했던 프랑스계 백인 혈통이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그는 피부색이 약간만 검었는데, 루이지애나 주립대를 나온 변호사였다. 그의 아들도 나중에 뉴올리언스 시장을 지냈으니, 나름대로 엘리트 계층인 셈이다.

흑인 민권운동을 시작한 인물로는 부커 워싱턴 Booker T. Washington과 두보아 W. E. B. Dubois가 있다. 부커 워싱턴 1856-1915은 백인 남성과 흑인 노예 사이에서 노예로 태어났는데 그가 일하던 버지니아의 농장이 북군에게 점령되자 농장에서 해방되어 어머니와 함께 북쪽으로 올라간 후 어렵게 흑인학교를 다녔다. 그는 흑인들이 교육을 통해 스스로를 개발시켜 백인 사회와 통합할 것을 주장해서 주목을 받았고, 백인 자선가들의 호응을 얻어서 터스커기 대학을 세웠다.

그러나 그 후 흑인민권 운동은 그가 아니라 일찌기 북부에 정착한 역시 백인혈통이 섞인 흑인가족 출신인 두 보이스 W.E.B. Du Bois 1868-1963가 이끌었다. 하버드를 졸업한 그는 자본주의가 인종주의의 뿌리라면서 보다 직접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해서 이후 민권운동의 주류를 형성했다.

1964년 민권법에 힘입어서 오늘날 미국 흑인들의 지위는 많이 좋아졌다. 흑인들은 학계 언론계 선출직 공직 등에 많이 진출해 있다. 그리고 드디어 백인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 전에 흑인 대통령이 나오게 됐다. 그러다 보니 소외된 백인계층이 늘어났고, 이들이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서 부동산 사업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놓았다.

흑인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 못지않게 어려운 것이 유태인에 관해서다. 나치의 인종이론가들은 유태인 피가 1/16만 섞여 있으면 유태인으로 간주해서 청소해 버리자고 했으나 그건 너무 폭이 넓었든지 조부모와 외조부모 중 한명만 유태인인 경우는 그냥 넘어갔다고 한다. 자신은 유대 교회에 나가지도 않는데 조상 때문에 별안간 유태인이 되어서 가스실에서 최후를 마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2차 대전 후에는 이스라엘이 유태인 고국복귀를 추진했는데, 마찬가지로 유태인의 정의를 두고 많은 혼란을 겪었다. 나치가 유태인의 정의를 확대한 것 처럼 이스라엘도 유태인의 범주를 확대해서 조부모 4명 중 한사람만 유태인이면 유태인으로 간주하고 국적을 부여했는데, 그러자 가짜 유태인이 늘어나서 이를 두고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작금의 미국의 사태를 흑인 대 백인 인종문제로 단순화시켜 보지 말라는 것이다. 그 배후에는 복잡한 역사와 정치, 그리고 인종적 사회적 문화적 계층 class이란, 대놓고 말하기 어렵고, 풀기는 더 어려운 문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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