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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남부의 역사를 지우려는 미국
작성일 : 2020-07-14 13:17조회 : 1,605
6월 12일
남부의 역사를 지우려는 미국
몇 년 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백인우월주의자가 흑인 교회에 총을 난사한 사건을 계기로 남부 곳곳에 있던 로버트 리 Robert E. Lee, 제퍼슨 데이비스 Jefferson Davis등 남북전쟁 당시 남부 지휘관과 정치인을 기리는 동상을 철거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번 미니애폴리스 사건 후에는 남군 지휘관 이름을 붙인 미군 기지의 명칭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일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실제로 버지니아, 플로리다 등지에 제퍼슨 데이비스 등 남부인사의 이름을 붙인 고등학교가 학교명을 바꾸는 일이 최근에 일어나고 있다.
내가 공부했던 뉴올리언스에는 남군 사령관이었던 로버트 리, 남부연합 대통령이었던 제퍼슨 데이비스, 그리고 뉴올리언 출신인 유능한 남군 지휘관이던 보레가드 장군(남북 전쟁의 첫 번째 큰 전투였던 불 런 Bull Run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의 동상이 도심 한가운데 있었고 로버트 리 대로, 제퍼슨 데이비스 파크웨이 등 그들 이름을 따서 붙인 간선도로가 있었다.
남북전쟁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전쟁터로 큰 피해를 본 남부 주는 종전 후 군사 통치를 했던 북부를 결코 좋게 보지 않았다. 링컨 대통령은 그의 게티즈버그 연설이 보여주듯이 남부를 통합한 하나의 국가로 만들려고 했지 남부에 보복을 할 생각은 없었다. 실제로 연방정부, 즉 북군은 남군에게 해산을 명했을 뿐이고 반역죄를 묻지는 않았고, 다만 북군 포로를 학대한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 책임자들만 교수형을 당했다. 그러나 링컨은 암살되고 말았고 대통령에 오른 앤드류 존슨은 무능했다. 공화당 정치인 중 급진파라고 불리는 의원들은 존슨을 탄핵하려 했으나 한 표가 부족해서 실패했다. 이들이 이끄는 연방정부는 남부를 재건한다는 reconstruct 명분으로 남부 주에 연방군을 주둔시켜 통치를 했다.
하지만 이런 기간 동안 남부 주의 경제는 황폐해졌고 점령군인 연방군에 대한 반감은 커져갔다. 연방군이 철수하고 선거로 주의회와 주정부가 구성되자 남부는 다시 백인우월주의 민주당 세상이 됐고 이들은 흑인의 참정권을 부인하고 흑인을 백인과 분리하는 차별정책을 펴나갔다. 이런 차별정책을 연방대법원 마저 "분리됐으나 평등하다" separate but equal는 이유로 합헌이라고 했으니, 그 후 1965년 민권법이 제정될 때까지 남부는 공식적인 인종차별이 제도화되어 있었던 셈이다.
간혹 나에게 미국 남부에서 차별 같은 것을 느껴본 적이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 적은 없었다. 1960년대 초에 그곳에서 공부했던 나의 은사이기도 한 김증한 교수님도 그곳 사람들이 매우 친절했다고 회고하셨다.
이런 패러독스를 이해하기 위해선 과연 남북전쟁이 꼭 일어나야 했나,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나, 그 기간 중 과연 무슨 일이 일어 났나 등 많은 것을 공부해야 한다. 로버트 리 등 훌륭한 장교들이 자신의 주 state의 부름에 따라 남군 지휘를 맡아서 그 어렵고 힘들고 이길 수 없는 전쟁을 하게 되는 과정은 일종의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 흑인 시위 등으로 이들을 역사에서 지우려는 시도도 만만치 않지만 그것은 한계가 있다고 본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과 토머스 제퍼슨도 노예를 소유했던 농장주였다. 로버트 리는 처가 쪽으로 조지 워싱턴과 인척인데, 로버트 리의 고향인 버지니아 주 렉싱턴에 있는 워싱턴 앤드 리 대학 Washington and Lee University의 존재가 그것을 말하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로버트 리 소유 땅에 북군이 그들의 전사자를 무단으로 매장한데서 기인했다. 그곳에 역사유적으로 남아 있는 알링턴 하우스 Arlington House는 원래 명칭이 Custis Lee Mansion이었다. 로버트 리와 결혼한 커스티스 가문의 메리 여사의 소유로, 이들은 거기서 결혼식을 올리고 살았다. 남북전쟁 후 고향 렉싱턴으로 돌아간 로버트 리는 군인묘지가 되어버린 앨링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역사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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