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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

작성일 : 2020-07-16 07:30조회 : 1,831

6월 14일

최고위원회와 비상대책위원회

어쩌다 보니까 나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국민의당 최고위원을 지냈다. 비대위는 영어로 Emergency Council이 될 것 같고, 최고위는 Supreme Council이라고 하겠다. 정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라고 하더라도 그 명칭이 너무 무시무시하다.

최고위원회, 즉 Supreme Council 의 기원은 공산혁명 후 최고 소비에트가 아닐까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프랑스대혁명 등 정변이 일어난 후 구성되는 게 전권을 장악한 최고위원회였는데, 그것은 잠정적인 게 특징이었다. 5.16 후 들어선 국가재건최고위원회도 그러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우리 정당은 저마다 명칭도 어마무시한 최고위원회를 두게 되었는지는 연구를 해 볼 과제라고 하겠다. 5.16 후 집권세력이 막강한 공화당을 만들자 거기에 대항해서 야당이 명칭만은 막강하게 만들어내다 보니 그런 명칭을 쓰게 된 것 같다.

최고위원회는 성격상 일단 합의체 구성원인 최고위원을 뽑고 최다득표자를 대표최고위원, 즉 대표로 선출하거나 호선으로 대표로 선출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랫동안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어 왔다. 과거에는 집권당의 경우 대통령이 총재를 맡으니까 거물 야당 대표도 덩달아 총재라고 불렀다. 총재는 영어로 Supreme President 쯤 되는지 모르겠다. (웃기는 표현이다)

명칭이 무시무시한데 비해 요즘 우리나라 정당 최고위는 카메라 앞에서 하는 읽기 경연대회로 전락해 버렸다. 카메라 앞에서 미리 준비해 온 종이쪽지를 돌아가면서 열심히 읽는다. 읽는 최고위원이나 그걸 열심히 노트북 자판에 담는 기자나 내가 보기는 똑 같다.

카메라 앞에서 읽기 경연대회를 하니까 그건 회의가 아니다. 물론 기자들이 나가면 비공개 회의를 하지만 저마다 읽기를 하다 보니 정작 회의 시간이 부족해서 필요한 의결이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온갖 일이 벌어지곤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를 할 때 정청래 의원과 주승용 의원이 한판 붙었던 일,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가 얼굴을 붉혔던 일 등 대단한 볼거리가 있었다. 작년(2019년)에는 하태경 의원이 바로 옆에 있는 손학규 대표를 두고 늙으면 정신이 혼미해진다고 해서 많은 사람들이 활짝 웃었다. 이런 돌발사건이 나면 모든 종편이 며칠 동안 그걸로 장사를 한다. 이게 한국 정당정치의 민낯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언제부터인지 매주 월 수 금 아침에 최고위를 할 때 매번 슬로건인지 이미지인지 하는 배경을 거대한 플래카드 같은 1회용 천으로 장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게 한번 만드는데 수십 만 원은 훌쩍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도 국민세금으로 정당에 주는 보조금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 생긴 또 하나의 현상은, 선거 때도 아닌데 색색이 당 점퍼를 입고 출연하는 것이다. 선거유세 중에 눈에 띠게 색색이 당 점퍼를 입는 것은 물론 이해가 가지만, 멀쩡하게 실내에서 회의를 하면서 싸구려 냄새가 펄펄 나는 색색이 비닐 점퍼는 왜 입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제는 제발 이런 우스운 광대놀음 모습은 그만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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