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노예제, 그리고 남북전쟁

작성일 : 2020-07-18 08:32조회 : 1,612

6월 20일

노예제, 그리고 남북전쟁

미국 뿐 아니라 영국 등 유럽에서도 인종 문제가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다. 차별은 없어야 하지만 차별이 전혀 없는 사회는 유토피아일 것이다. 여러 가지 법과 제도를 통해 차별을 해소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 같은 개선의 속도가 요구에 못 미칠 때면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새삼스럽게 처칠이 인종주의자였다는 식으로 매도한다면 분란만 커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1919년에 우리 민족지도자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감명을 받아서 삼일운동을 일으켰지만 정작 윌슨은 프린스턴 대학 총장 때나 대통령을 지낼 때나 흑인을 멸시하고 차별했다. 윌슨 행정부에선 앞선 공화당 행정부에 비해 흑인의 지위가 오히려 후퇴했다.

노예라고 하면 우리는 미국 남부를 떠 올리고 오늘날 미국의 흑백갈등은 노예제의 업보라고 생각한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노예는 어느 사회에나 있었다. 오스만 제국과 북아프리카 무슬림 국가에는 유럽에서 데려온 백인 노예가 엄청나게 많았는데, 백인 여성노예가 어떤 대우를 받았을지는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노예제는 각국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서 사라지게 되었다. 노예제를 유지했던 제국이 망하기도 했고, 노예제를 서서히 없애기도 했다. 그런데 오직 미국에선 내전이 발생해서 그렇게 엄청난 사람들이 죽었으니, 남북전쟁은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었다.

미국 역사학계는 남북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배경에 대한 연구를 의도적으로 회피해 왔고 오직 링컨이 분열될 뻔 했던 미국을 하나로 묶었다는 사실을 강조해왔다. 링컨이 진정으로 훌륭한 지도자라면 남북전쟁을 미연에 막았어야 마땅하다. 과연 남북전쟁은 꼭 일어나야 했을까?

이런 물음에 답해 줄 수 있는 책은 드물다. 그 자체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도리스 굿윈이 지은 <팀 오브 라이벌> Team of Rivals도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 된 후 암살되기 까지 링컨이 공화당 내의 라이벌이던 수워드와 체이스를 국무장관과 재무장관에 임명해서 전쟁을 끌고 간 이야기를 담고 있을 뿐이다.

오래전에 사 놓았으나 미처 읽지 못한 남북전쟁의 배경에 대한 책 두 권을 작년 정기국회가 끝나고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독파할 수 있었다. 아래 사진 왼쪽 <유성의 해> Year of Meteors 은 1860년 대선에 링컨이 당선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다루고 있다. 그 해는 유난히 유성이 낙하하는 모습이 보여서 사람들이 불길하게 여겼다고 한다. 오른쪽 책 <링컨, 전쟁을 시작하다> Mr. Lincoln Goes to War는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자 긴장이 고조되어서 결국 포성이 울리고 내전이란 대참극이 발생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1860년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자 노예문제는 남부주와 북부주 사이에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 휘그당 출신인 헨리 클레이는 점진적인 노예제 철폐를 주장했지만 즉각적인 노예해방을 주장하는 북동부 공화당원들의 목소리에 묻혔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노예문제에 덜 강경한 일리노이 주 출신인 링컨을 후보로 뽑았다. 무엇보다 일리노이에서 승리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남부 주들은 점진적인 노예철폐를 주장하는 스티븐 더글러스 대신에 노예는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브레켄리지를 독자 후보로 냈다. 버지니아, 테네시 등 북쪽에 있는 남부 주는 헌법당이란 새 정당 후보인 존 벨을 밀었다. 사정이 이러하니 링컨의 당선은 정해진 것이었다. 남부의 강경론자들은 링컨이 당선되면 연방에서 이탈할 이유가 된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이탈한다고 해서 링컨이 군대를 동원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되어 워싱턴에 도착한 링컨은 우선 신변이 위태로웠다. 워싱턴은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에 싸여 있는데, 버지니아는 남부 쪽이고 노예농장이 많은 메릴랜드는 남부에 동정적이었다. 링컨은 북동부에 배치되어 있던 미군(북군)을 워싱턴으로 불러드렸고 남부에 우호적인 미주리, 켄터키에도 미군을 파견했다. 이런 조치는 남부 주를 자극했고, 남부 극단주의자들은 전쟁을 외쳤다. 그래도 이들은 설마 링컨이 군대를 보내기야 하겠나 했다.

링컨과 그의 참모들은 오히려 남부를 우습게 보았다. 이들은 남부군은 민병대이고 자신들의 군대는 정규군이기 때문에 버지니아로 군대를 보내면 남부 주는 그대로 백기를 들 것으로 생각했다. 1861년 7월 버지니아로 진격한 북군은 워싱턴에서 멀지 않은 매나사에서 남군과 조우해서 참패했다. 링컨은 워싱턴 시내로 후퇴해온 북군 패잔병 무리를 보고 경악했다. 남부주들은 저까짓 것들 별거 아니라고 만세를 불렀다.

이렇게 해서 그 참혹한 남북전쟁이 4년간 지속됐고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그 후유증은 지금도 남아 있다. 링컨이든 누구든 전쟁이 그렇게 오래 그렇게 참혹하게 지속될 줄 알았겠는가. 전쟁은 오판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북전쟁도 그런 셈이다. 정치인들이 항상 유념해야 하는 역사의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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