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네오콘을 자처한 지식인들
2020-07-24 13:53 21 이상돈

7월 5일


네오콘을 자처한 지식인들


레오 스트라우스와 앨런 블룸은 자신들에게 당신이 보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답했다. 실제로 그들은 자유주의가 상대주의라는 미명하에 훼손되는 데 반대했을 뿐이다. 하지만 스스로를 신보수주의자 neoconservative라고 부르는 유태인 지식인 집단이 나타났으니 어빙 크리스톨 Irving Kristol(1920-2009)과 노먼 포드호레츠(Norman Podhoretz 1930- )가 대표적이다.

어빙 크리스톨은 뉴욕시립대학을 나왔고 노먼 포드호레츠는 컬럼비아 대학을 나왔는데, 이들은 뉴욕에 근거를 둔 유태인 지식인 서클에 열심히 참여했다. 이들은 인권 등 많은 이슈에 대해서 매우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었으나 미국의 진보세력과 민주당 주류가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공산주의 위협에 대해 느슨해지고 이스라엘에 비판적으로 흘러가는데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가졌다.

 포드로헤츠는 1960년에 유태인 문제를 주로 다루던 월간지 <커멘터리> Commentary 편집장으로 취임한 후 이 잡지를 시사지로 탈바꿈시켰고, 신좌파 운동이 성행해서 공산체제에 유화적이고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는 풍조가 만연하자 이를 비판하는 논조를 강화했다. 어빙 크리스톨 등 원래 진보적이되 신좌파에 반대하는 필자들이 <커멘터리>에 인권에서 대외정책에 이르는 의제에 대해 활발하게 기고했는데, 이렇게 해서 이들은 미국의 대외정책에 관한 여론도 움직이게 됐다.

이들은 자기들이 기존의 보수와도 다르고 기존의 진보와도 다르다는 의미에서 자신들을 신보수주의자라고 불렀다. (산진보 new left는 급진 진보이니까 자신들을 신진보주의자라고 부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커멘터리지는 윌리엄 버클리가 발행하던 <내셔널 리뷰> National Review 와 더불어 보수성향 필자들이 기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평론지로 성가를 누렸다. 버클리와 달리 유태인이 주축을 이룬 이들은 민주당을 지지했으나 1970년대 들어서 민주당이 대외정책에서 유화적으로 흘러가자 심각한 딜레마에 봉착했다. 유태인이며 본질적으로 진보성향인 이들은 공화당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닉슨의 공화당 행정부는 중공을 승인하고 베트남에서 철수하는 등 도저히 지지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들 네오콘은 국내정책은 진보적이지만 소련에 대해 강경한 노선을 취하고 군비강화를 주장하면서 이스라엘을 지지했던 헨리 M. 잭슨 Henry M. Jackson 상원의원( 1912-1983)을 열성적으로 지지하게 됐다. 잭슨은 대외정책에서는 매우 강경하면서도 민권법에 찬성했고 환경정책기본법을 제안하는 등 환경에 대해서도 매우 진취적인 입장을 갖고 있었다.

1970년대에 잭슨 의원은 아주 우수한 세 명의 보좌관을 채용했는데, 리차드 펄, 폴 월포위츠, 그리고 더글라스 페이스였다. 이들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국방부에서 국방정책위원장, 국방차관, 그리고 국방차관보를 맡아서 이라크 전쟁을 기획하게 된다. 그러면 1970년부터 2005년 사이에 이들에게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계속하기로 한다.

사족: 1970년대에 타임지를 열독하던 내가 가장 좋아했던 미국 정치인은 헨리 M. 잭슨 상원의원이었다. 나는 1976년에 민주당이 잭슨 의원을 젖히고 지미 카터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카터는 미국을 엉망으로 만들더니 1980년 대선에서 로널드 레이건에게 참패했다.

헨리 M. 잭슨 1912-1983 
신보수의 문화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