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헨리 M. 잭슨 1912-1983
2020-07-25 09:22 19 이상돈


7월 6일

헨리 M. 잭슨 1912-1983

헨리 M. 잭슨 Henry M. Jackson은 워싱턴주 시애틀 근교에서 노르웨이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서 스탠포드 대학과 워싱턴대학 로스쿨을 나와서 검사를 하다가 1941년부터 하원의원을, 1953년부터 사망하기까지 상원의원을 지냈다.

1982년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상원의원 6선을 기록했으나 1983년 9월 1일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에 격추된 날 소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몇 시간 후 급작스런 심혈관 파열로 사망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자신과 같은 생각이 많았던 잭슨 의원의 때 이른 사망을 애도하고 민간인에 부여하는 최고훈장인 자유메달을 추서했다.

 잭슨 의원은 1960년대 개혁입법인 민권법 등에 찬성했고, 에드먼드 머스키 Edmund Muskie(1914-1996) 상원의원과 함께 국가환경정책법 NEPA을 발의해서 1969년에 통과시켰다. 1970년대에 잭슨은 환경자원을 관장하는 상원 내무위원회(나중에 에너지 자원위원회로 명칭을 바꿈) 위원장을 지내면서 많은 환경 법률이 제정되도록 했다.

잭슨은 베트남 전쟁에 찬성했고 군비확장을 열렬히 지지했다. 그는 국방부를 가장 지지했던 의원 중 한명이었는데, 워싱턴 주에 폭격기와 미사일을 만들던 보잉사가 있어서 ‘보잉의 상원의원’ Senator from Boeing이란 말까지 들었다. 잭슨이 사망한 후 미 국방부는 잭슨기념재단에 이례적으로 거액을 기부했으니, 그와 국방부 간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한반도 상공에 이따금 나타나는 B-1, B-2 폭격기도 잭슨의 열렬한 지지에 힘입어서 개발된 것이다.

1976년 대선이 다가오자 에드워드 케네디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에서 잭슨은 민주당 후보로 선두주자였지만 공산권에 대한 강경한 입장 때문에 당내 진보파의 반대에 봉착해서 예비선거에서 지미 카터에게 패배했다. 당시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는 로널드 레이건이 현직 대통령인 제럴드 포드에게 패배했다.

잭슨 의원이 1970년대에 남긴 중요한 법안은 1974년에 통과된 잭슨-배니크 수정법 Jackson-Vanik Amendment이라고 부르는 통상협정법에 대한 수정조항이다. 이 법안은 잭슨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리차드 펄이 추진한 것으로 대외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었고 논란도 많았다.

1960년대 말부터 소련은 출국을 원하는 유태인의 해외이민을 허용했는데, 지망자가 늘자 소련당국은 고액의 출국세를 부과했다. 이에 대해 미국내 유태인들의 여론이 비등하자 당시 전략무기제한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잭슨 의원은 소련과 같은 비(非)시장 경제국가가 해외이주를 제한하면 최혜국대우를 유예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당시는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소련과 전략무기 제한과 교역확대 등 데땅트 detente(해빙 解氷)를 추구할 때였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하원법안이 배니크 의원에 의해 발의되고 유태인들이 법안 통과를 열렬히 로비하고 인권단체들도 지지함에 따라 하원을 통과하고 상원 통과를 앞두게 되자 닉슨 대통령은 소련과의 협상을 저해한다면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협박했다.

그러는 와중에 닉슨이 사임하고 포드 대통령이 취임하자 키신저 장관과 잭슨 의원과의 약간의 타협을 거쳐 최종적으로 의회를 통과했고 포드 대통령은 이에 서명했다. 이 법안을 성사시킨 잭슨 의원의 보좌관과 배니크 의원의 보좌관이 모두 유태인이었음도 흥미있는 포인트이며, 이를 계기로 리차드 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수정법이 발효한 후에도 미국과 소련간의 무역은 지속됐고 유태인의 해외이주도 지속됐으나, 유태인의 대량 해외이주는 고르바쵸프가 서기장이 된 후에야 이루어졌다. 여하튼 잭슨-배니크 수정법은 인권을 침해하는 국가에 대해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으며, 1976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자 하는 잭슨 의원의 명성을 높혀 주었다.

소련을 향한 잭슨 의원의 투쟁은 노벨상 수상자 솔제니친의 워싱턴 방문, 헬싱키 협정 등 일련의 사건을 두고 이어져갔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훗날 네오콘이라고 불리게 되는 그의 보좌관인 리차드 펄, 폴 월포위츠도 함께 성장해갔다.(계속)


1975년, 헨리 잭슨과 로널드 레이건 
네오콘을 자처한 지식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