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1975년, 헨리 잭슨과 로널드 레이건
2020-07-25 15:26 18 이상돈

7월 6일


1975년, 헨리 잭슨과 로널드 레이건


헨리 잭슨 의원은 1975년에도 포드 대통령 및 키신저 장관과 여러 차례 크게 충돌했다.

1975년 4월, 파리협정을 위반하고 북베트남군이 남쪽을 침공해서 사이공이 함락되었다. 잭슨 의원은 엘모 줌월트 제독으로부터 얻은 자료를 근거로 닉슨 대통령이 북베트남 침공시 미군이 반격할 것임을 약속했다고 폭로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사실상 월남을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1975년 6월 말, 노벨상 수상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이 소련에서 추방된 후 워싱턴을 잠시 방문했다. 7월 2일 전미노조 AFL-CIO 위원장인 조지 미니는 솔제니친을 위한 연회를 백악관에서 멀지 않은 호텔에서 주최했다. 헨리 잭슨과 제씨 헬름스 의원, 그리고 제임스 슐레징거 국방장관은 참석했으나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키신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다.

키신저 장관이 미국이 솔제니친의 견해를 따르면 소련과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고 불참 이유를 설명하자 잭슨은 솔제니친의 견해를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임기를 마친 로널드 레이건도 솔제니친을 만나기를 거부한 포드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 해 7월 30일에서 8월1일까지 헬싱키에선 유럽안보협력회의 CSCE가 열렸는데, 포드 대통령도 참석해서 서명했다. 이 협정은 동유럽에 대한 국경현상을 인정하는 것이라서 소련의 동유럽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격이었다. 공화당 보수파는 물론이고 솔제니친, 그리고 솔제니친을 지지하는 인권론자들도 비판에 나섰다.

잭슨 의원은 헬싱키 협정이 닉슨-키신저 방식의 일방적 후퇴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비난했다. 로널드 레이건도 그것이 일방통행식의 항복문서라고 비판했다.

카터 대통령 시절에도 잭슨 의원은 카터의 유화주의와 군비축소를 비판했다. 잭슨은 “어느 누구도 카터보다는 낫다” Any body but Carter고 했다. 1980년 대선에 카터가 또 출마하고 레이건이 당선되자 잭슨의 철학을 따르던 민주당원들이 대거 민주당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레이건은 조지타운대 교수이던 민주당원 진 커크패트릭 Jean Kirkpatrick 1926-2006을 유엔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 그녀는 민주당원이 레이건에 투표하는데 아무 잘못이 없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잭슨 의원은 민주당적을 지켰지만 그의 보좌관을 지낸 리차드 펄 등은 공화당원이 되었고 레이건 행정부에서 요직을 맡게 된다. 네오콘 시대의 시작인 것이다.

군인, 지식인 그리고 전쟁 
헨리 M. 잭슨 1912-19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