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루스벨트 대통령과 여비서
2020-07-30 08:03 10 이상돈


루스벨트 대통령과 여비서


미국에서도 여성이 각료급으로 본격적으로 등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고위공직이 당연히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시대에도 비서진에는 항상 여성이 있었다. 주로 일정관리, 서신 작성 등 일상적인 일을 했지만 고위직의 경우에는 비서가 하는 일 그 자체가 중요했다. 나아가서 여비서가 지시를 따르는 것을 넘어서 의견을 개진한다면 그녀의 중요성은 한층 커지기 마련이다.

직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각료급 이상의 고위공직자에게 어떤 여비서가 단순히 일을 넘어서 세밀하게 그의 일상사를 살펴서 그가 그 여비서가 없이는 일을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된다면 그런 여비서는 ‘Office Wife'라고 부를 만하다. 굳이 우리말로 번역한다면 ‘사무실 아내’가 될 것인데, 근래의 미국 대통령 중 오피스 와이프가 있었다고 할 만한 경우는 조지 H. W. 부시라고 하겠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마그레트 르핸드

여비서가 오피스 와이프 수준을 넘어서 비서실장 역할을 한 경우도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 4.12) 대통령을 뉴욕 주지사 시절부터 백악관에 이르기까지 20년 동안 하루 24시간 그의 옆에서 모든 것을 챙겨준 마그리트 (미씨) 르핸드 Marguerite (Missy) LeHand(1896-1944. 7.31)가 그러하다.

르핸드는 사실상 백악관 비서실장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며, 루스벨트 행정부에서 대통령에 이어 권력서열 2위였다는 말도 있었다. 루스벨트의 일생을 다룬 도큐멘터리 영화에도 르핸드는 잠시 나오는데, 사실 르핸드와 루스벨트의 관계는 통상적인 대통령과 비서와의 사이를 훨씬 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 부모 하에서 태어난 르핸드는 고등학교에서 비서 교과목을 공부하고 여러 곳에서 비서로 일하다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루스벨트가 차관을 지내던 해군성에서 잠시 일했다. 루스벨트가 1920년 대선에 민주당 부통령 후보로 나서자 루스벨트의 참모가 그녀를 데려와서 선거 캠프에서 일하도록 했다. 선거에서 패배한 루스벨트는 성실하게 일한 그녀를 뉴욕의 로펌에 데려왔는데, 이듬해 4월 루스벹트는 치명적인 소아마비 증세로 하반신이 마비되어 버렸다.

이 때부터 르핸드는 루스벨트의 거동을 돕고 치료차 조지아 주 웜스프링 온천 등을 갈 때에 동행해서 루스벨트의 재활을 도왔다. 루스벨트의 부인 일리노어 (1984- 1962)여사는 자기의 사회활동으로 바빴을 뿐더러 루스벨트가 자기의 여비서 루시 러더포드와 불륜관계이었던 것이 드러난 이후 남편과 사실상 멀어졌기 때문에 하반신 마비와의 힘든 싸움을 하는 루스벨트에게 르핸드는 배우자나 마찬가지였거나 그 이상이었다. 르핸드는 어릴 때 알았던 질병으로 심장이 약해서 자신도 힘들었지만 장래의 미국 대통령을 헌신적으로 보살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루스벨트는 1928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서 당선됐고, 루스벨트 가족은 뉴욕주 수도 올바니에 있는 관저로 이사를 했다. 관저에서도 루스벨트가 머무는 마스터 베드룸 바로 옆에 르핸드의 침실이 있었고, 엘리노어 여사의 침실은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침이면 일리노어 여사는 수행비서이자 경호원인 뉴욕 경찰 소속 얼 마일러 경사와 함께 자기 일정을 나갔고 루스벨트 지사는 르핸드와 함께 주지사 집무실로 출근을 했다. (건장한 체격에 미남인 얼 마일러는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계속 일리노어 여사를 수행해서 두 사람 간의 관계를 두고 루머가 많았다.)

이런 관계는 루스벨트가 대통령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르핸드는 루스벨트의 비서이자 게이트 키퍼(gatekeeper)였다. 르핸드를 통하지 않고는 대통령과 만날 수가 없었던 것이고, 그래서 사실상 비서실장이라는 말이 나왔다. (당시에 백악관 비서실장이란 직책은 없었다.) 백악관에서 업무는 워낙 격무였고, 더구나 루스벨트는 몸이 불편해서 모든 것을 르핸드에 의존해야 했다. 루스벨트가 백악관 집무실에서 물러나서 생활공간으로 퇴근한 후에도 르핸드는 옆방에서 있어야 했다.

루스벨트를 연구한 역사가들은 루스벨트와 르핸드가 육체적 관계를 가졌을 것인가에 대해서, 두 사람이 긴밀해 진 것은 루스벨트가 하반신 마비가 된 후이기 때문에 성관계는 불가능했지만 온천장 물리치료에 동행하는 등으로 보아서 신체적 접촉은 충분히 있었을 것으로 본다. 어쩌면 그런 긴밀감이 있었기에 루스벨트가 하반신마비를 극복하고 대통령이 되고 대공황과 2차대전이란 위기 국면을 감당했을지 모른다.

원래 심장이 약했던 르핸드는 1941년 6월 심장마비를 일으켜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요양을 해야 했다. 루스벨트는 르핸드의 의료비를 지불하고 치유를 기원했지만 르핸드는 회복하지 못하고 1944년 7월 사망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비통해 하면서 그녀의 때 이른 사망을 애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르핸드가 백악관에서 했던 일은 뉴욕주지사 시절부터 차석 비서였던 그레이스 튤리 Grace Tully(1900-1984)가 맡아 하게 됐다. 하지만 튤리는 르핸드가 했던 만큼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그 공백을 메운 사람은 루스벨트가 건강했을 때 불륜관계를 맺었던 루시 러더퍼드 Lucy Rutherfurd(1891-1948)였다. 그녀의 남편이 사망한 후에는 러더포드는 루스벨트가 온천장이나 휴양지를 갈 때 동행하곤 했다.

1945년 4월 12일, 루스벨트는 그가 자주 가던 조지아 주 웜스프링 온천장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다. 웜스프링에는 그레이스 튤리와 루시 러더포드가 동행했는데, 루스벨트가 운명하는 순간에 마지막으로 본 얼굴은 루시 러더포드였다. 백악관은 루시 러더포드가 웜스프링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은폐했으나 한참 후에 사실로 확인됐다. 어떤 역사학자는 르핸드의 사망이 루스벨트에게는 큰 충격이었는데, 루시 러더포드 덕분에 1년을 더 버텨서 2차 대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보기도 한다.

사진은 백악관 르핸드와 루스벨트.


조지 H. W. 부시의 ‘오피스 와이프’ 
대통령의 반려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