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조지 H. W. 부시의 ‘오피스 와이프’
2020-07-31 07:39 13 이상돈


조지 H. W. 부시의 ‘오피스 와이프’


재작년 가을에 94세로 타계한 미 41대 대통령 조지 H. W. 부시(1924 - 2018. 11.30)는 연임을 하지 못한 탓으로 과소평가되어 왔다. 그의 재임 시 독일이 통일되고 소련 등 공산권 동유럽이 붕괴했는데, 부시 행정부는 소련의 붕괴를 연착륙시키는데 성공했다. 또한 걸프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재임 중 WTO를 발족시킨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을 성사시켜서 자유무역에 기반을 둔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를 완성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부시가 완성시켰던 그 질서가 와해되어가는 순간을 살고 있는 셈이다.

조지 H. W. 부시의 정치적 이력에 대해선 추후에 기회를 보아 정리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그의 오피스 와이프 Office Wife라고 불렸던 제니퍼 피츠제랄드 Jennifer Fitzgerald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제니퍼 피츠제랄드(이하 ‘제니퍼’라고 칭한다)의 존재는 레이건-부시 행정부 12년간 워싱턴의 정치 언론계 서클에선 화제였으나, 그녀에 대한 공식적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1934년 생으로 알려져 있는 제니퍼는 보스턴의 좋은 집안 출신 모친과 영국군 고위장교 사이에서 태어났고,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서 사립학교를 나오고 지금은 조지 워싱턴 대학의 캠퍼스로 편입된 마운트 버논 대학을 다녔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으나 곧 파경을 맞아서 이혼했는데, 피츠제랄드라는 성은 이혼한 남편의 성이다. 25살 나이에 이혼한 그녀가 그 후 무엇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저런 사무실에서 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부시가 1973년 1월부터 1974년 9월까지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을 하고 있을 때 제니퍼를 처음 만났다. 당시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워싱턴이 시끄러울 때였다. 부시는 1967년에서 1971년 초까지 하원의원을 지냈는데, 1970년 중간선거 때 닉슨 대통령의 권유로 공화당 당선이 어려운 텍사스 주지사 선거에 출마해서 낙선했다. 그러자 닉슨은 그를 유엔주재 대사로 임명했고, 이를 계기로 부시는 외교 안보에 경력을 쌓게 된다.

1972년 대선 승리 후 닉슨은 부시를 공화당 전국위 의장으로 임명할 정도로 부시는 닉슨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이 본격적으로 커지고 여론이 돌아서자 부시도 닉슨이 사임해야 한다는 쪽에 서게 됐다. 닉슨이 사임하자 포드가 대통령이 됐으며, 포드 대통령은 부시를 중국 주재 대사로 임명했다.

부시가 공화당 전국위 의장으로 있을 때 당시 연방통신위원회(FCC) 위원장이던 존 버치 John Burch가 제니퍼를 부시에게 소개해주었으며, 그 후 제니퍼는 공화당 전국위에서 일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시와 막역한 사이인 존 버치는 1980년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로 나선 부시를 위해 선거자금을 모으고 했는데, 1991년에 사망했다. 존 버치가 연방통신위원회 위원장을 그만 둔 시점이 1974년 3월이기 때문에 제니퍼가 그 전에는 버치를 위해 일을 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1974년 9월에 베이징에 주중 대사로 부임한 부시는 제니퍼가 중국주재 대사관 비서로 올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해서 제니퍼는 그 해 12월 베이징에 도착해서 부시의 비서로 일하게 됐는데, 그 때 그녀의 나이가 41세였고 부시는 50세였다. 제니퍼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부시의 부인 바버라 여사는 추수감사절부터 몇 달 동안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제니퍼는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부시 대사 및 다른 대사관 직원들과 함께 호놀룰루에서 열린 12일간의 컨퍼런스에 참석했다. (이 컨퍼런스가 나중에 호놀룰루 밀애설로 소문이 나게 된다.)

베이징에서의 대사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포드 대통령이 부시를 중앙정보국장 Director of CIA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당시 CIA는 해외 공작과 인권침해에 관한 상원청문회가 열리는 등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고, 포드는 정치인 출신인 부시를 국장으로 임명해서 CIA가 신뢰를 되찾기를 원했다. 불과 몇 년 만에 부시는 유엔 주재 대사와 주 중국 대사를 거쳐 CIA 국장이 되어 외교와 안보를 아는 정치인으로 부각됐다. 1976년 1월, 부시는 중앙정보국에 부임하면서 제니퍼를 개인 비서로 데리고 갔다. 불과 몇 년 만에 40대 초 제니퍼는 어마무시한 CIA 국장의 약속과 일정을 관리하는 게이트키퍼 gatekeeper가 된 것이다.

1976년 대선에서 지미 카터가 승리함에 따라 부시는 1년 만에 CIA 국장직을 내놓고 휴스턴에 정착했다. 부시는 몇몇 로펌과 회사의 이사직을 맡았는데, 예일대 총장직을 마치고 영국 주재 대사로 부임하는 킹맨 브루스터 Kingman Brewster에 부탁해서 제니퍼를 영국 주재 대사관 직원으로 보내는 데 성공했다. (부시 본인도 예일대를 졸업해서 부시 가문은 예일대에 영향력이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부시는 공직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출장을 하곤 했는데, 행선지에는 런던이 몇 번 있어서 제니퍼를 만나러 간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중에 돌았다.

제니퍼는 1년 간 영국에 있다가 미국으로 돌아 왔는데, 그 후에는 부시가 잘 아는 대기업에서 일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공직에서 벗어난 이 기간 동안 부시는 또다른 미모의 이혼녀 및 한 여성 사진작가와의 염문이 돌았다. 한편 아이들을 키우고 메인 주 케네벙크코트에 있는 가족 별장을 관리하는 등 거대한 가정사를 도맡아오던 바버라 여사는 아이들이 성장해서 떠나간 시기인데다가 워싱턴 정가에서 들려오는 남편에 관한 소문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다.

부시는 1980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나서기로 하자 오랜 된 친구 제임스 베이커 James Baker(레이건 행정부에서 백악관 비서실장과 재무장관,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장관을 지냄)가 캠프를 책임지게 됐다. 부시는 제니퍼를 선거 캠프에 참여시키고자 했으나 베이커가 반대해서 그러하지 못했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 부시는 레이건에 패배했으나 레이건은 부시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레이건이 당선됨에 따라 부시는 부통령이 되었는데, 그러자 제니퍼를 부통령실에 비서로 데려왔다. 제니퍼는 전과 같이 부시의 일정을 관리하고 약속을 관장하는 게이트키퍼가 됐는데, 이 때에 그녀는 47세였다.

제니퍼가 부통령의 막강한 비서가 되자 말 많은 워싱턴에서는 제니퍼가 부시의 내연녀(mistress)라는 소문이 돌았다. 몇몇 기자들이 그 소문을 파고들었지만 불륜 증거는 찾지 못했다. 중국 주재 대사관, CIA 그리고 부통령실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부시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하는 제니퍼를 부시의 또 다른 아내, 즉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렀다. 부시 보다 9살 연하인 제니퍼는 금발에 키가 작고 체구도 아담했지만, 화장을 잘하고 옷을 잘 입었으며, 향수를 매일매일 바꾸어서 뿌렸으며, 항상 높은 하이힐을 신었고, 부시의 사무실에 소품, 액자, 꽃 같은 세세한 부분을 잘 챙겨주었다는 이야기가 타블로이드 신문에 의해 보도가 됐다. 사무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부시를 편안하고 활력이 있게 해주었다는 이야기다. 1974년부터 84년까지 10년 동안 그녀는 섹스만 없는, 사무실에서의 아내였던 것이다.

하지만 제니퍼가 부시의 내연녀라는 루머는 워싱턴 정가에 나돌았고, 레이건 대통령 부부에게도 흘러 들어갔다. 특히 남편 레이건을 꽉 잡고 사는 게 자랑이자 자부심인 낸시 여사는 발끈해서 부시 부통령을 더욱 싫어하게 됐다고 한다. 부담을 느낀 부시는 1985년 들어서 제니퍼를 상원의 부통령 연락관실로 파견했다. (미국 헌법에 의해 부통령은 상원 의장을 겸직하게 되어 있다.) 1988년 대선에서 부시는 당선되어서 대통령이 되었지만 제니퍼는 백악관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제니퍼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져서 부담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신 제니퍼는 국무부의 의전부과장이란 자리를 받아서 근무하게 됐는데, 국무장관은 부시의 최측근인 제임스 베이커였다.

이렇게 해서 제니퍼가 세상에서 잊혀지나 했는데, 1992년 대선 때 다시 화제가 됐다. 빌 클린턴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자 가수 제니퍼 플러워 Jennifer Flower가 클린턴이 자신과 오랫동안 불륜관계를 가졌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폭로해서 파문이 일었다. 그러자 힐러리 클린턴이 왜 언론이 내 남편의 불륜만 갖고 시비를 거냐면서, 부시 대통령도 제니퍼라는 내연녀가 있다고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한 것이다.

언론이 이에 대해 부시에게 질문하자 부시는 근거없는 저질 비난이라고 화를 냈다. 90세가 넘은 부시의 어머니 도로시 여사, 바버라 여사, 그리고 부시의 아들 딸들이 나서서 우리 아들, 남편, 아버지가 그럴 리가 없다고 회견을 했다. 이 문제를 매듭지은 사람은 다름 아닌 클린턴이었다. 여자 관계가 워낙 복잡한 클린턴은 여자 문제가 나오면 자기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이런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그어 버렸다.

대선에서 실패한 부시는 휴스턴으로 돌아갔고, 제니퍼는 그 후 유럽에 있는 미국 회사에서 일하다가 은퇴해서 지금은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 살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2015년에 욘 미첨 Jon Meacham이 펴낸 부시의 전기<운명과 권력> Destiny and Power에 제니퍼에 관한 부분이 나오는데, 말년의 부시는 자기가 제니퍼를 좋아 했지만 내연관계는 아니었고, 자기가 제니퍼를 좋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제니퍼를 싫어했다고 회고했다. 미첨은 제니퍼와도 인터뷰를 했는데, 80세가 넘은 제니퍼는 자기는 부시와 그의 가족을 존경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실은 두 사람 만이 알지 않겠는가..)

사진은 1975년 부시가 중앙정보국장일 때 상원 위원회에서 찍은 것이라고 한다. 오른쪽이 제니퍼, 왼쪽 뒤에 바버라 여사가 있다. 인터넷에 널리 퍼져있는 사진이다.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 
루스벨트 대통령과 여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