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
2020-08-02 07:49 8 이상돈

7월 17일·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
 

이재명 지사에 대해 대법원이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했다. 이를 두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이에 앞서 이재명 지사는 내가 중앙대 초임교수일 때 가르친 제자라는 점을 알리고자 한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사실심은 고등법원까지인데, 대법원이 사실판단을 다시 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대법원은 과거에도 사실에 대한 법적용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하곤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읽어 내려간 판결논지는 방송 대담 중에 나온 언급을 이유로 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로 처벌한다면 그것이 선거과정에서의 자유로운 토론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논리를 폈다. 말하자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적 효과 chilling effect가 있다는 말이다.

이재명 지사 말고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되어서 고생을 한 의원이나 단체장이 적지 않다. 선거 공보나 의정보고서 등에 자기 업적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전임 시장 군수가 시작한 사업을 자기가 완수했다고 홍보한 경우, 의원이 무슨 사업을 자기 지역구에 유치했다고 홍보했는데 사실은 전에 이미 하기로 결정되었던 것이라는 등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라서 후보자가 무심하게 의정보고서나 선거홍보물에 게재한 것이 낙선한 상대방 후보 측에 의해 고소 고발되곤 한다. 이런 경우에 대부분 벌금 80만원이 선고돼서 단체장이나 의원은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된다.

벌금 80만원이 선고됐다는 뉴스를 접한 일반인들은 그랬구나 하고 그냥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인 단체장이나 의원은 벌금 80만원 선고 받기까지 머리가 아프고 밤에 잠자리도 편치 않게 된다. 벌금 100만 원이 나오면 자리가 날라 가버리고 벌금 80만원이 나오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게 되니까 그 20만원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그 20만원이 공짜가 아니다. 웬만큼 간이 크지 않는 한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당한 사람은 돈 보따리 싸들고 유력한 로펌이나 변호사를 찾아 가게 된다.

게다가 1심에서 무죄나 벌금 80만원이 나오면 검찰은 항소를 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고등법원에서 싸우고 잘못하면 대법원까지 가야 한다. 1심법원 판결 받는 데까지 큰 로펌에 일을 맡기면 1억 원 정도는 금방 들어간다. 국회의원 연봉이 세금을 제하면 1억 원 조금 넘기 때문에 1년 봉급이 변호사 경비로 들어가는 셈이다. 2016년 총선이 끝나고 추미애, 송영길, 김진표, 박영선, 윤호중 의원 등이 허위사실 유포 등 이유로 선거법위반으로 기소되었는데, 벌금 70만원 선고유예(박영선 의원)에서 벌금 90만원까지 선고를 받았다. 추미애 의원의 경우는 검찰이 항소해서 고등법원까지 가서 80만원 벌금을 받았다. (이들 사건 중 대법원까지 간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벌금 10만원, 20만원 차이로 의원직을 지켰으니까 됐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의원들이 최소한 1년 연봉 정도는 변호사 비용으로 썼을 것이다. 이들에 대한 판결이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나왔기 때문에 사법부가 봐준 것이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의원들을 기소한 검찰은 박근혜 정부의 검찰이다. 물론 검찰은 고소 고발이 있고 현행법이 있으니까 기소했다고 주장할 것이고, 그것은 또한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벌금 70만원 선고유예 판결이 나올 정도의 사안을 구태여 기소할 필요가 있으며(박영선 의원), 벌금 80만원 나온 1심 판결에 대해 구태여 항소를 할 필요가 있는지(추미애 의원)는 정말 생각해 볼 일이다. 이런 고생을 한 의원들이 검찰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이재명 지사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변호사 비용으로만도 적어도 5억, 어쩌면 10억 원이 들어갔을 수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 볼 점이 있다. 바로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 원칙과 이중처벌금지(二重處罰禁止) 원칙이다.

일사부재리는 독일 등 대륙법계 국가의 형사소송법이 택하고 있는 원칙이다. 한 사건으로 유죄재판을 받았으면 같은 사안으로 또 다시 처벌당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경우에 검찰이 항소하는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1심에서 3심까지를 하나의 재판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1심에서 무죄나 가벼운 판결이 나오면 검찰은 항소를 한다. 그러면 고등검찰청이 사건을 넘겨받아서 고등법원에서 마치 새로운 사건처럼 다시 재판을 한다. 고등법원에서 무죄가 나와도 검찰은 그대로 승복하기 보다는 대법원에 상고한다. 검찰은 조직 논리상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와도 검찰은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는 논평을 내기도 한다. 이런 시스템 하에선 무죄 판결을 세 번 받아내야 비로서 무죄가 된다. (이른바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으로 기소된 박선숙 의원도 세 번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상에 이처럼 불공평한 제도가 어디 또 있을까 싶다.

이에 비해 영미법상 원칙인 이중처벌금지(Double Jeopardy Rule)원칙은 1심에서 무죄가 나오면 그것으로 재판은 끝이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검찰은 항소를 할 수 없고, 다만 유죄판결이 나오는 경우에 피고인은 항소를 할 수 있다. 배심재판을 하기 때문에 이런 원칙이 적용되어 온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영화배우 O. J. 심슨이 전 부인과 전 부인의 남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진행된 재판에서 심슨은 무죄 평결을 받고 그대로 석방됐다. 미국 형사절차였다면 이재명 지사 사건은 1심 무죄판결로 그대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나는 2016년 본회의 질의 때 당시 법무장관을 상대로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영미식의 이중처벌금지 원칙을 도입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당시 법무장관은 법체계가 달라서 어렵다고 답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형사 재판 1심을 보다 신중하게 하고 항소를 제한하는 식의 개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내 선거에서 유세를 한 적은 없지만 지원유세는 누구 못지않게 많이 해보았다. 그런데 그 유세 내용이란 것이 대부분 허위사실 유포이다. “우리 아무개 후보는 이 지역이 나은 훌륭한 인물이고 정직하고 능력이 있으며 여러분 고장을 확 고쳐 서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 사람입니다. 아무개 후보를 꼭 찍어 주십시오”라고 떠드는 것이기 유세이기 때문이다. 선거법을 알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는 숫자나 업적 같은 것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그러니까 거대한 추상적 허위사실은 괜찮고, 초등학교에 칠판이 170개 들어왔는데 200개 들어왔다고 하면 허위사실 유포가 되는 것이다. 역대급 허위사실 유포는 자기를 뽑아 주면 대한민국을 구하겠다고 유세하는 경우일 것 같은 데, 누가 그런 유세를 했는지는 알 것이다.

선거운동이라는 게 온갖 자기자랑을 하는 것인데, 우리는 현미경을 들어대고 보아야 보이는 작은 오류를 찾아내서 고소 고발을 함으로써 검찰과 법원으로 일을 끌고 간다. 이재명 지사의 경우는 문제를 야기한 후보는 당초에 당선가능성이 없었던 사람이었으니, 정치와 선거를 이렇게 사법화 시켜서 도대체 얻어지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백선엽과 김종오 
재선에 실패한 조지 H. W. 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