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백선엽과 김종오
2020-08-02 08:05 7 이상돈

7월 19일


백선엽과 김종오


고 백선엽 장군을 두고 많은 논란이 일었는데, 그 중에는 6.25 전쟁 당시 한국군 지휘관 중 진정한 영웅은 광복군 출신의 김홍일 장군과 개전 초에 6사단장으로서 강원도로 넘어 온 북한군을 3일 동안 막아낸 김종오 장군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겨례 TV) 전시 지휘관에 대한 평가는 평가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면 미군 지휘관들이 백선엽 장군을 한국전의 영웅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아마도 다음과 같은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한다.

6.25 한국전쟁에 관해 미국에서 나온 책은 한국전쟁에서 미군이 치른 전투를 중심으로 써 있기 때문에 6.25 남침 직후 벌어진 상황, 예를 들면 개전 초기의 서부전선 궤멸과 6사단의 선전은 한국전쟁을 다룬 미국 저자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한국전쟁에 관한 미국 책은 낙동강 전투(Pusan Perimeter라고 지칭한다),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38선 돌파와 평양 점령, 중공군 개입과 후퇴, 장진호 전투, 그리고 전선 교착과 휴전 협정으로 끝나버린다. 미군을 중심으로 책을 쓰다 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2007년에 출간된 데이비드 핼버스탬 David Halberstam의 <가장 추웠던 겨울> The Coldest Winter도 그러하다. 근래에 나온 책이고 더구나 저자 핼버스탬이 워낙 유명한 언론인이기 때문에 웬만한 미군 지휘관들은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이 책에 한국군 지휘관은 백선엽 장군만 몇 번 언급이 된다. 핼버스탬은 백선엽 장군이 “미국인에 의해 한국군 지휘관들 중 최고 지휘관이라고 생각된다”("considered by the Americans the best of the Korean commanders" p. 13), "최고의 한국군지휘관“("the best of the ROK commanders" p.549)이라고 두 군데에서 백선엽 장군을 높이 평가했다.

낙동강 전투 당시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과 그 보다 조금 남서쪽에 있었던 미 기병 1사단(US 1st Cavalry Division)이 대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북한군과 싸웠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이 때 미 1기병사단의 린치 중령이 이끄는 전투단(Task Force Lynch)은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한 후 파죽지세로 북상해서 인천에 상륙해서 남하 해 온 미 7사단 병력을 오산에서 만났다. 이어서 미 1기병사단 본진과 국군 1사단이 평양으로 향했고 한국군 1사단이 평양에 조금 먼저 도착했다. 핼버스탬은 미 기병 1사단이 한국군 1사단 보다 늦은 것은 대동강 다리가 파괴되어서 도강에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미 기병 1사단과 보조를 맞추어서 낙동강에서 평양까지 가고,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당시 미국 언론에도 보도가 됐고, 나중에 한국전쟁을 다룬 미국 책에도 항상 언급이 된다. 반면에 개전 초기에 춘천 방어선을 치고 나중에 영천 그리고 백마고지에서 전투를 지휘해서 큰 전공을 세운 김종오 장군은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했기 때문에 미군의 입장에서 쓴 책에서 다루어질 이유가 별로 없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서울에서 가까운 백마고지 전적지를 가게 되면 전투를 지휘했던 사단장 김종오 장군에 대해 알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김종오 장군은 육군참모총장을 지내고 1966년 3월, 46세 이른 나이로 지병으로 사망했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때였는데, 백마고지의 영웅이 안타깝게 돌아가셨다고 언론에 크게 보도가 되었던 것이 기억에 새롭다.

미 1기병사단 
이재명 지사에 대한 대법원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