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미 1기병사단

작성일 : 2020-08-03 08:29조회 : 2,248

미 1기병사단

6.25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 1사단과 함께 낙동강 전선을 방어하고 이어서 평양을 점령한 1기병사단 U.S. 1st Cavalry Division은 아마 미국민에게 가장 친숙한 부대일 것인데, 부대 명칭 그대로 기병대의 후예이기 때문이다. 정세현 전 장관이 얼마 전에 존 볼턴을 두고, “인디언을 죽이면서 잘 했다고 생각하는 기병대장이 생각난다”고 했는데, 서부영화에 나오는 기병대의 후예가 6.25에 참전한 미 1기병사단이다.

남북전쟁 당시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의 주력인 북버지니아군에선 J.E.B. 스튜어트(JEB Stuart 1833-1864) 장군이 이끄는 기병대가 맹활약을 했다. 버지니아가 고향인 그는 제1기병대를 이끌다가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남군에 가담해서 버지니아 기병대 Virginia Cavalry를 이끌었다. 버지니아 주의 별명이 ‘Horse Country' 이듯이 말은 원래 버지니아 등 남부 사람들이 많이 기르고 또 잘 탔다.

그런데 북군에도 말을 잘 타는 젊은 기병 장교가 혜성과 같이 나타났는데, 웨스트포인트를 꼴찌로 졸업한 조지 커스터(George Armstrong Custer 1839-1876)였다. 저돌적이고 용맹한 그는 북군 지휘관 율리시즈 그랜트 장군의 눈에 들었다. 몇 번 전투에서 기병대를 이끌고 두각을 나타낸 커스터는 게티스버그 전투에서 스튜어트 장군이 이끄는 남군 기병대를 잘 막아내는 공훈을 세웠다. 커스터는 그랜트 장군이 로버트 리 장군을 추격해서 항복을 받아내는 과정에도 함께 했다.

남북전쟁 후 커스터는 새로 창설된 제7기병대 7th Cavalry Regiment 지휘관이 되어서 캔저스에 본부를 두고 광활한 서부를 인디언으로부터 지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 커스터는 인디언 부족과의 전투에 나서서 몇 번의 승리를 거두기도 하나,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비무장 인디언 부족을 살해한 측면도 있었다고 하겠다. 그러다가 커스터는 제7기병대의 병력을 분산하여 일부를 이끌고 가던 중 몬태나의 리틀 빅혼 강 부근에서 수(Sioux)족 전사들에 포위되어 자신도 전사하고 5개 중대가 전멸을 당했다. 뒤늦게 도착한 기병대 지원군에 의해 수 족은 흩어져 버렸고, 이 사건을 계기로 기병대에 항거했던 인디언 부족들은 패망의 길을 가게 된다.

커스터의 제7기병대는 영화로도 몇 차례 만들어져서 제7기병대는 가장 유명한 미군 부대로 등극했다. 1차 대전을 거치면서 말을 탄 기병의 용도가 없어지자 미군은 제7기병대 등을 합쳐서 1기병사단으로 만들었다. 명칭만 기병이지 사실은 보병인데, 편제상으로 5, 7, 8 기병연대와 포병 등으로 구성됐다. 2차 대전 중에는 1기병사단은 필리핀과 레이테 섬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전후에 일본에 8군 휘하로 배속되어 있다가 6.25가 발발하자 24사단, 25사단과 함께 파병되어 낙동강 전선에 투입됐다.

급하게 한국에 파병된 1기병 사단의 7기병연대(7th Cavalry Regiment)는 7월 26일에서 29일 사이에 발생한 노근리 학살 사건에 책임이 있음이 1999년에 확인됐다. 당시 사단장이던 호버트 게이(Hobart Gay) 소장은 북에서 내려오는 피난민을 첩자 enemy agents로 보고 발포를 명했던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게이 소장은 1기병 사단이 평양까지 올라간 후 중공군에 밀려서 패퇴한 후에 사단장직에서 경질됐다. 1기병사단은 전후에 일본에 돌아가 있다가 다시 한국에 와서 주둔하다가 베트남 전쟁이 시작되자 베트남으로 향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1기병사단은 전체 병력을 헬기로 운용하는 에어모빌 Air Mobile 사단으로 운영되어서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베트남에서의 1기병사단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영화 두 편에 등장한다.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1979년)과 <위 워 솔져스> We were Soldiers (2002년)에서다.

<지옥의 묵시록>은 픽션이고, 그 전 해에 나온 <디어 헌터> The Deer Hunter와 함께 베트남 전쟁 후 분위기를 반영한 반전 anti-war 영화이다. <지옥의 묵시록>에 나오는, 석양 하늘을 가뜩 메운 헬기들의 모습은 장관이다. 그 부대가 제7기병연대이니까 로버트 듀벌(킬고어 중령 역할)은 조지 커스터의 후예인 셈이다. 영화 속에서 겁이라곤 없는 킬고어 중령은 갈 데 없는 커스터이다. 히틀러가 좋아 했다는 와그너를 틀어 놓고 베트콩 촌락을 공격하는 헬기들의 모습이 어찌됐든 인상적이다.

<위 워 솔져스>는 베트남전 초기에 있었던 라드랑 전투를 그대로 영화화한 것인데, 제7기병 연대의 대대장 할 무어 Hal Moore 중령 역할을 멜 깁슨이 맡았다. 굉장히 템포가 빠르고 사실적인 영화인데, 9.11 테러가 있은 후에 개봉되었으니 당시 미국에 불었던 애국적 분위기에 잘 맞았다. 두 편의 영화를 보면, 1기병사단 장병들은 노란 바탕에 말 머리가 있는, 아주 눈에 잘 띠는 견장을 달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Band of Brothers에 나오는 제101 공수사단의 흰 독수리 견장과 더불어 가장 널리 알려진 견장이라고 하겠다.

미 1기병사단의 역사를 보면, 개인이건 조직이건 영욕(榮辱)이 함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그것이 역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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