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79년 가을, <디어 헌터>

작성일 : 2020-08-03 20:09조회 : 1,892

7월 20일

1979년 가을, <디어 헌터>

벌써 40년 전인 1979년 여름, 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늦은 나이에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 때만 해도 영어 국사 국민윤리로 이루어진 유학생 자격시험이 있었다. 영어를 못하거나 국가관이 부족하면 유학을 나갈 수가 없게 되어 있었고, 유학여권을 내려면 경찰청에서 신원조회를 해주어야 했다. (전두환이 정권을 잡은 후에 제일 처음 취한 자유화 조치가 통금 폐지와 유학과 해외관광 자유화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었다.)

79년 첫 학기 때 학교의 대강당에서 학생회가 금요일 저녁에 무료 영화 상영을 몇 번 했는데, 그 때 본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그린 <디어 헌터>와 <지옥의 묵시록 >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런 영화를 학내에서 돌린 학생회가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두 영화 모두 무삭제판이니 충격적인 장면도 많았다. <디어 헌터>의 러시안 룰렛 장면이 특히 그랬다. 두 영화는 전쟁의 광기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가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그 시대의 미국을 대변한 듯했다.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은 심했다. 경제도 형편 없었고, 미국은 세계에서 고립되어 가는 듯 했다.

크라이슬러 자동차와 이스턴 항공이 파산에 몰렸고, 실제로 이스턴 항공은 몇년 후 파산해서 없어져 버렸다. 인프레가 두 자리 숫자, 금리가 두 자리 숫자였다. 집값이 폭락했지만 두 자리 숫자 금리로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서 경매처리 되기 일쑤였다. 금리가 두 자리 숫자이까 새 자동차를 사기가 어려워서 거리에는 낡은 차들이 많았다. 두 영화의 우울한 분위기가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였다.

1980년 미국 대선은 비관론과 패배주의를 상징하는 카터, 그리고 낙관론과 할 수 있다는 정신can do spirit을 상징하는 레이건의 대결이었는데, 그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톰 크루즈가 주연한 <탑 건>Top Gun이란 영화가 나왔다.

해군 조종사들을 다룬 <탑 건>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주제곡도 대히트를 쳤는데, 영화 줄거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는 타임 킬링용이었다. 1981년 여름에 리비아 근해를 초계비행 중이던 미 해군 함재기 F-14를 위협한 리비아 공군기 두 대를 미 해군기가 미사일로 격추한 시드라 만 사건에 착안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하튼 불과 몇 년 만에 할리우드가 반전anti-war에서 애국으로 선회한 꼴이었다. 영화도 시대를 따라간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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