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중앙하천관리 위원회 위원을 지낸 경위

작성일 : 2020-08-21 08:24조회 : 2,317

8월 16일

중앙하천관리 위원회 위원을 지낸 경위

1979년 가을, 미국 유학 첫 학기에 들은 수업 중 하나가 <환경법>이었는데, 교재로는 <에너지 자연자원법>Energy and Natural Resource Law라는 당시 금방 나온 케이스 북이었다. 미국에서도 로스쿨에서 환경법을 가르치기 시작한 게 1970년대 중반이고 제대로 된 교재가 나온 게 1979-80년이었다. 에너지와 자연자원 관리에 있어서 관계되는 환경정책법 등 관련 환경법을 다룬 과목이었다. 토지관리, 수자원 관리, 원자력 등 에너지 개발 등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나로선 환경법 자체 보다 그런 배경을 이해하는 게 더 어려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때 그런 배경을 공부한 것이 그 후 큰 도움을 주었다.

우리나라에서 환경법이란 게 부각된 계기는 1991년 3월, 대구 페놀 오염 사건이었다. 1990년 보사부 외청이던 환경청이 환경처로 승격되고, 3당 합당 후 거대해 진 여당이 장악한 국회가 환경정책기본법 등 ‘환경6법’을 통과시켰는데, 그러던 참에 대구에서 큰 오염사고가 터지자 환경법 환경정책 같은 생소한 분야가 별안간 주목을 받게 됐고, 자연과학이 아닌 사회과학자로서 환경을 공부한 학자가 몇 안 되던 시절이라서 나는 무척 바쁜 시간을 보냈다.

이어서 1992년 6월에 브라질 리우에서 유엔환경개발회의가 열리게 되자 국제환경법 등 지구환경문제에 대한 지적 요구가 폭증했다. 나는 유엔환경개발회의에 제출할 국가보고서를 작성하는 데 참여했고, 리우에서 채택할 마지막 문서를 채택하는 유엔 준비회의에도 한차례 참석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1990년대에 환경 관련 여러 위원회의 위원을 역임했다. 기억에 남는 위원회는 1992년 리우 회의가 끝난 후에 만들어진 차관급인 지구환경대책실무위원회, 김대중 정부 시절 물관리 정책조정을 위해 총리실에 두었던 물관리정책민간위원회이었다.

노무현 정부 초기인 2004년 1월, 당시 건교부(지금은 국토부)는 나를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이공계 학자가 아닌 최초의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이 됐다. 건교부는 그럴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지방자치 실시 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간에 수리권 및 물 값 분쟁, 그리고 지자체 간에, 또 수자원공사와 지자체 간에 물을 두고 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수리권(water right)과 용수 분쟁에 대해 공부하고 논문을 몇 편이라도 쓴 유일한 법학교수였다. 특히 당시 수자원공사는 서울시와 골치 아픈 물 값 분쟁을 겪고 있었고, 건교부는 물론 수자원공사 편이어서 이런 법적 지식을 갖고 있는 나를 위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나는 임기 2년인 중앙하천관리위원을 두 번 연임해서 2010년 4월까지 재임했다. 하지만 나는 4대강 사업에 반대해서 마지막 1년 동안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했다 하더라도 한강 낙동강에 보를 세우고 준설을 하는 ‘하천기본계획 변경안’을 저지할 수 없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 때 그 분야를 오래 공부하고 연구해 온 전문가라는 위원들이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4대강 사업에 동조하면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모습을 나는 분명히 보았다.

다시 내가 중앙하천관리위원이 된 계기인 수리권과 물 값 문제로 돌아가기로 한다.
물 값 문제를 키운 장본인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었다. 2005년에 서울시는 청계천 복원 후에 흘려보내는 수돗물 값을 안내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는데, 그 액수는 크지 않았지만 이후의 선례가 될 것이기에 굉장히 예민한 문제였다. 이 문제를 두고 중앙하천관리위원회가 회의를 열었는데, 나는 서울시가 수공에 물 값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위원장이던 윤용남 교수(서울대 총장을 지낸 선우중호 교수와 함께 수자원학계의 원로이다.)도 그렇게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 압력이 있었는지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이명박 측의 회유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건교부가 서울시 입장을 수용하자고 해서 그렇게 정리되고 말았다. 더 큰 문제는 서울시 취수장 이전으로 인한 물 값 문제였다. 이명박 시장이 서울시 취수장을 팔당댐 바로 아래로 옮기면서 그 물은 댐 물이 아니라면서 물 값을 안내겠다고 통보해 버린 것이다. 당시 서울시의 태도는 마치 자기네 시장이 대통령이 된 것 같아 보였다.

수공은 이 문제를 중앙하천위원회에 회부할지, 아니면 직접 소송을 제기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직접 소송을 제기하라고 권유했다. 소송을 하면 하천법과 수리권 법리에 의해서 100%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 해 말 수자원공사는 차기 대통령이 될 것이 유력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 소송은 서울대를 나온 판사가 주재한 1심에서는 명쾌하게 수공이 승리했으나, 고려대를 나온 판사가 주재한 2심은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만들어서 서울시에 승소를 안겨주었다. 드디어 대법원에서는 원광대를 나온 김지형 대법관이 이끄는 재판부가 2심을 파기하고 1심대로 수자원공사에 100% 승리를 안겨주었다. 내가 쓴 수리권 논문 등이 재판부를 움직인 셈이다. 그 판결로 인해 지자체의 억지 주장은 설 땅을 잃어 버렸고, 춘천시 등 많은 지자체가 대법원 판결이 천명한 수리권 법리를 수용하게 됐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이 나온 시점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에 휘말려서 엉망이 될 즈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국토부를 상대로 4대강 사업을 저지하는 국민소송을 하느냐고 바빴다. 요즘 다시 4대강 사업이 잘했다는 억지 주장이 야당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있자니, 10 여년 전 그 시절이 생각이 나서 전후좌우를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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