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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PVC 죽이기는 정당한가 ?
작성일 : 2008-02-20 01:44조회 : 1,760


‘PVC 죽이기’는 정당한가 ? 
(첨단환경 2007년 12월)


1. PVC

흔히 PVC라고 부르는 폴리비닐 클로라이드(염화 비닐)는 19세기 전반기에 유럽에서 우연한 기회에 고안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PVC가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32년에 굿리치사(社)의 과학자가 PVC에 다양한 화학물질을 가미해서 PVC를 유연하게 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자 PVC는 기적의 플라스틱으로 다양한 용도에 사용되게 되었다. 실로 PVC는 범용 플라스틱의 하나로 70년 이상 동안 인류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오늘날 PVC는 전선 피복, 파이프 등에 많이 쓰이고, 슬라이딩 단열재 도어 프레임 등 건축재로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그 외에도 바닥재, 카페트 등 건축 내장재로서도 많이 쓰인다. PVC 소비의 절반 정도는 건축 부분인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PVC는 아이들 장난감에도 많이 쓰인다. PVC가 많이 쓰이는 또 하나의 분야는 의료기구이다. 수액(水液) 백, 혈액 백 등 용기, 그리고 이 용기와 혈관을 이어주는 튜브가 PVC이다. PVC가 이렇게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프탈레이트라는 가소제(可塑劑)를 첨가해서 부드럽고 유연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2. PVC를 둘러싼 논쟁

대략 20년 전부터 PVC가 인간건강에 유해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PVC를 부드럽게 만들게 위해 첨가하는 가소제(可塑劑)가 용출(溶出)되어서 인간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주장이 환경단체에 의해 제기됐던 것이다. 어린이들이 입에 넣거나 만지는 장난감에 대해 많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가소제가 인간 건강에 유해하다는 주장은 완전히 입증된 적은 없으나 미국의 장난감 제조사들은 많이 쓰이던 가소제 DEHP의 사용을 자발적으로 중단했다.
이에 만족하지 못한 몇몇 소비자 단체는 DEHP의 대체제(代替劑)인 DINP를 사용한 PVC 장난감의 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미 연방 소비자 안전위원회에 제기했지만 이들의 신청은 기각 당했다. 한편 2005년 7월 유럽의회는 DEHP를 장난감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했다. 하지만 2006년 4월, 유럽 연합의 화학물질국은 새로운 가소제 DINP가 어린이와 신생아에 해롭다는 주장은 근거가 박약하다고 판정했다.

3. 의료기구와 PVC

장난감은 DINP라는 대체제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장난감에 DEHP 사용을 금지한 것은 DEHP가 정말로 유해한가를 떠나서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의료기구에 DEHP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DEHP를 사용한 의료기구가 환자에게 유해하다는 여하한 확실한 증거가 없지만 대체제를 가소제로 사용한 백(bag)이나 튜브(tube)는 품질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우려 때문이다. PVC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PVC 백과 튜브 때문에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비해, 업계는 PVC 아닌 다른 재질로서는 환자의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백과 튜브를 만들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건축 자재로 쓰이는 PVC는 경성(硬性)이 많아서 PVC 자체가 위험하다는 주장은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PVC를 건축자재로 쓰지 않으면 목재나 철을 사용해야 하는데, 이 경우 자연파괴와 에너지 소모가 더 많기 때문이다. 미국 그린빌딩 위원회(The US Green Building Council)는 지난 2월 PVC를 사용한 건축 자재가 건물의 사이딩, 배관, 바닥재, 창문 틀 등 모든 면에서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가장 적합한 자재라고 발표했다. 장난감은 미국과 유럽에서 업계 자체가 스스로 철회했기 때문에, 결국 의료기구가 PVC 유해성(有害性) 논쟁의 초점이 되어 버린 셈이다.

4. 환경단체의 캠페인

병원에서 쓰이는 비닐 백과 튜브를 추방하기 위한 운동은 ‘해(害)가 없는 보건(Health Care without Harm)’이란 환경단체의 영향이 컸다. 그린피스, 시에라 클럽 등 환경/보건 단체 350개가 연합해서 세운 이 단체는 PVC를 상대로 대단한 반대운동을 벌였다. 전체 의료기구의 약 25%가 PVC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대단한 충격을 가져오지 않을 수 없었다.
PVC로 만든 의료기구가 별다른 문제가 없음은 미국의 식품의약국(US FDA)에 의해서 누누이 확인되어 왔다. 위의 단체가 PVC 추방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던 지난 2003년, 당시 미국 보건국장이던 에버릿 쿠프(C. Everett Koop)는 “DEHP가 없이는 생명을 구하는 많은 의료기구가 유연성, 투명성, 그리고 장기 보존성을 상실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2000년 2월에 세계보건기구는 의료기구에 사용되는 DEHP를 ‘잠재적 발암물질(possibly carcinogenic to humans)’에서 ‘인간에 대하여 암을 일으킨다고 볼 수 없는 물질(not classifiable as to the carcinogenicity to humans)’로 위험성을 낮추었다. 
지난 2000년 당시 미국 식품의약국의 대변인도 “우리는 기존의 좋은 기록을 갖고 있는 물질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대체 물질로 쉽게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FDA는 또한 혈액을 장기간 보존할 수 있고, 신선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PVC 이외는 다른 대체물질이 없다고 지적했다.

5.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의 규제

올해 초 환경부에서는 어린이용 완구와 수액(水液) 백, 혈액 백 등에 DEHP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법률안을 공고하였으나, 규제의 근거 부족과 이중 규제 등의 문제가 있어 업계와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금년 하반기부터 수액 백 등 몇 가지 의료기구에는 DEHP를 가소제로 첨가한 PVC를 사용하지 못하게 됐으니, 세계에 유례가 없는 일이다. ‘해가 없는 보건’이란 미국의 환경단체의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환경단체들의 운동이 본토에서 보다 더 큰 성공을 거둔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적 근거가 박약한 과잉규제가 성행하는 것은 환경단체의 입김이 큰데다가 환경부가 오래 전에 ‘환경운동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좌파 정권 10년’이 빚어낸 진풍경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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