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대학입학과 소수인종 배려
2020-08-30 13:54 12 이상돈


대학입학과 소수인종 배려


남북 전쟁 후 미국 흑인들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지만 그 결과는 차별과 빈곤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부터 연방정부는 정부가 계약을 맺을 때에 흑인을 고용한 업체를 우대하는 등 흑인 고용대책을 강구해 왔다. 1964년에 민권법이 통과되자 모든 분야에서 인종차별이 금지되고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은 소수인종 고용을 의무화 하는 등 많은 조치가 취해 졌다. 1968년에 킹 목사가 암살되고 대도시에서 흑인 폭동이 일어나자 흑인에 대하 차별금지를 넘어서 흑인들을 교육 훈련시켜야 한다는 데 사회적 합의가 모아졌다.

대학은 이런 사회적 요구에 부응해서 소수인종 학생 쿼터제를 운용했다. 그러다 보니 백인 학생 같으면 입학이 안 되는 흑인 학생들이 하버드 예일 등 명문대학에 입학하게 됐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로스쿨과 메디컬 스쿨에서 일어났다. 변호사와 의사가 되는 유일한 창구인 로스쿨과 메디컬 스쿨은 어느 대학이든 입학경쟁이 치열했고, 자연히 이런 쿼터제가 백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주장이 제기 됐다.

흑인 쿼터는 위헌 (1978년)

이 문제가 미국 대법원에까지 올라갔는데, 1978년 연방대법원은 소수인종 쿼터제 입학은 백인학생에 대한 차별이라고 위헌판결을 내렸다. 이것이 유명한 UC 데이비스 메디컬 스쿨과 관련된 바키(Bakke) 판결이다. 이 판결 후에 미국 대학들은 300명 중 25명은 최소한 소수인종으로 뽑는다는 식의 쿼터제를 폐지하고 소수인종이라는 요소를 감안해서 가점을 주는 방식을 채택했다.

클라렌스 토머스 대법관이 예일 로스쿨에 입학한 해는 1971년이었는데, 당시 예일 로스쿨은 25명 정도를 흑인쿼터로 운영할 때였다. 클라렌스 토머스는 흑인이기 때문에 입학이 되었는지, 아니면 어차피 입학이 될 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외부에서는 흑인 예일 로스쿨 졸업생은 엉터리 졸업생이라고 인식된 것이다. 이것이 토머스가 로스쿨을 졸업한 후에 당했던 시련이고, 그래서 그는 소수인종에 대한 우대 조치affirmative action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다.

바키 판결 이후 미국 대학들은 쿼터제를 철폐하고 입학사정에 소수인종 요소를 반영하는 식으로 바꾸었는데, 1986년에 텍사스 등 남부 주를 관장하는 제5연방항소법원은 텍사스 대학 로스쿨 입학과 관련해서 흑인우대 때문에 성적이 더 우수함에도 떨어졌다고 소송을 제기한 백인 학생들 사건에서 입학사정에 인종 요소를 고려해서는 안 된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흑인우대 조치를 금지한 셈이다.

우대 조치는 합헌 (2003년)

2003년에 대법원은 드디어 이 문제를 다루게 됐다. 미시건 대학 로스쿨 입학과 관련된 소송에서 대법원은 5대 4 판결로 입학사정에 인종 요소를 감안하는 제도는 합헌이라고 판시했다. (Grutter v. Bollinger) 샌드라 오코너, 루스 긴스버그, 존 스티븐스, 스티븐 브라이어, 데이비드 수터 대법관이 다수 의견이었고, 소수인종 우대는 위헌이라는 반대의견은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 안토닌 스칼리어, 클라렌스 토머스,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었다.

여성 대법관인 오코너, 긴스버그는 인종배려에 찬성했고, 유일한 흑인 대법관인 클러렌스 토머스는 이에 반대했다. 샌드라 오코너는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 여성으론 최초로 대법관으로 임명됐는데, 법률가 경력은 부족한 편이나 공화당 대통령에 의해서 최초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조지 H. W. 부시가 임명한 수터 대법관은 기대와는 달리 진보성향에 서서 보수논객들에게 비난을 많이 받았다. 수터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법률가였는데,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존 수누누가 천거해서 대법관이 됐다. 존 수누누는 조지 H. W. 부시가 재선에 실패하게 된 주된 원인제공자로 뽑힌다. 루스 긴스버그와 스티븐 브라이어는 컬럼비아와 하버드 교수 출신으로 탁월한 진보성향의 법률가이며, 두 사람 모두 클린턴에 의해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클러렌스 토머스와 예일 졸업장

2007년에 나와서 베스트셀러가 된 클러렌스 토머스의 회고록 중에 아마도 가장 주목을 받았던 부분이 흑인우대로 예일 로스쿨을 나온 것처럼 폄하된 경험일 것이다. 그러나, 토머스가 예일 로스쿨을 나온 존 댄포스 당시 미주리 법무장관 덕분에 미주리 주 법무부에 취직을 해서 사회 첫출발을 했고, 대법관 인준이 상원에서 다루어 질 때도 공화당원이지만 민주당 의원들과도 교류가 좋았던 댄포스 의원 덕분에 상원에서 52대 48로 인준동의안이 간신히 통과됐으니, 예일 로스쿨 졸업장이야말로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 하겠다.


튤레인 로스쿨 
클러렌스 토머스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