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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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방송과 공정성
작성일 : 2020-09-24 20:55조회 : 1,778
9월 11일
방송과 공정성
종편 시사 프로에는 항상 여야 인사 또는 진보 보수 패널을 대등하게 출연시키고 있다. 이른바 기계적 균형이다. 방송법에 의해 공정과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TV 조선이나 채널 A가 조국 또는 추미애 장관을 상대로 마구 조질 때도 진보 패널이 나와서 멋적은 표정을 지으면서 앉아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 이른바 진보 패널은 장식물에 불과하다. 기계적 균형이란 이처럼 우스운 것이다.
반면에 라디오 아침 시사 대담 프로는 대개 한 사람씩 출연을 하는데, 균형을 맞추기는 하지만 그것은 별 의미가 없다. 청취자가 듣기 원하는 출연자 인터뷰만 듣고 듣기 싫은 출연자 대담은 안 듣기 때문이다. 어떤 방송은 이런 식의 억지로 하는 균형도 무시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국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영방송은 이 같은 정치적 균형이 필요하다고 하겠지만,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공영방송은 정치성 있는 시사프로를 삼가는게 옳다.
신문 잡지에는 요구되지 않는 이 같은 공정성 fairness이 민간방송에는 요구되는 것은 주파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케이블, 위성, 인터넷 등 채널은 거의 무제한이기 때문에 주파수 논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미국에선 오래 전부터 연방통신위원회 FCC가 공정성 원칙을 적용해서 어느 보도가 일방적이라고 생각하는 쪽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도록 했고, 이에 따라 방송은 아예 균형보도를 해 왔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다. 미국 대법원은 1969년에 Red Lion 방송사 사건에서 공정성 원칙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공정성 원칙이 헌법에 의해 요구되는 것도 아니라고 해서 FCC가 개정할 수 있음을 암시했다.
1974년에 대법원은 마이애미 헤랄드가 신문에 대한 반론권을 인정한 플로리다 주법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사건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시했다. 신문에 대한 접근권 access right은 위헌이라고, 신문의 편집권에 손을 들어 주었다. 이 판결은 어디까지나 신문에 관한 것아고, 방송은 FCC에 의해 공정성 원칙이 적용되었다.
1981년에 레이건 행정부가 들어서자 FCC는 이 문제는 검토하기 시작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75년 초에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그만 두고 나서 대통령이 될 때까지 방송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그는 인기있는 신디케이트 방송 칼럼니스트로 돈도 많이 벌었는데, 방송에 대한 그 같은 규제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방송 칼럼도 언론의 자유이고 청취자라는 시장에 맡길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1987년, FCC는 공정성 원칙을 폐기했다.
공정성을 폐지한 효과는 라디오에서 먼저 나타났다. 각종 시사 라디오 쇼가 백화쟁명식으로 나타났는데, 몇년이 지나고 보니 그 시장에선 보수가 완승을 거두었다. 특히 러쉬 림보 Rush Limbaugh라는 사람이 진행하는 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는데, 블루칼러 계층이 주로 들었다. 클린턴 정부가 들어서자 클린턴과 힐러리는 이런 라디오 쇼에게 끝없는 소재를 제공했다. 말하자면 클린턴 부부는 러쉬 림보에게 그야말로 일용할 식량이었다. 오늘날 트럼프 지지자들의 정신무장은 그 때부터 시작됐다고 보면 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폭스 뉴스나 MSNBC는 공정성 원칙을 폐기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솔직한 미국의 제도가 좋은지, 억지로 균형을 맞추는 가짜 공정성이 지배하는 우리 제도가 좋은지... 그것은 각자가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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