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LEESANGDON
나라와 사회를 올바르게 세우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칼럼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작성일 : 2020-10-04 09:00조회 : 1,656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도입을 두고 논란이 많다. 가습기 살균제 경우를 들어서 이 두 제도를 도입하자고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피해는 워낙 장기적이고 광범하기 때문에 일본의 미나마타 병 처럼 특별법을 통한 기금 조성 등 행정적 구제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일단 20대 국회에서 최소한의 시작은 했다고 하겠다.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는 미국에 특유한 제도로, 순기능 보다 오히려 역기능이 많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의 건강보험이나 자동차 보험 등 민간보험이 그렇게 비싼 이유도 소송 리스크가 커서 그런 비용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큰 병원, 큰 기업은 그런 비용을 분산시킬 수 있지만 규모가 작은 사업장은 그렇게 하는데 한계가 있다.
입법을 하는 경우에 입법자는 나쁜 사람 bad man을 의식해야 한다. 이런 법률을 만들면 좋은 효과가 있지만 새로운 법률이 남용되거나 악용될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법률이 남용될 가능성이 크거나, 그런 법률을 집행하는데 사회적 비용이 더 크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소송이 많은 사회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소송 과잉으로 인한 폐단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주장을 꾸준히 펴온 필립 하워드의 책에 대한 서평을 아래에 첨부한다. 2011년 주간경향에 실린 리뷰이다.
--------------------------
주간경향 2011년 11월 30일
[북리뷰]툭하면 소송, 법률과잉 시대
변호사가 없는 세상(Life without Lawyers) Philip K. Howard, Norton, 2009
한동안 우리나라에선 변호사가 부족해서 국민의 권익보호가 잘 안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변호사가 남아돌아가지만 정작 필요한 곳에 변호사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소송이 급증하고 있으니 우리 사회가 변호사가 많은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 필립 하워드는 변호사인데, 일찍이 맨해튼의 그랜드 센트럴 기차역을 보존하기 위한 공익소송을 성공적으로 이끈 적이 있다. 그는 변호사 과다와 소송과잉이 미국 사회를 파괴하고 있다고 경고하는 두 권의 책('상식의 사망', '공동선의 몰락')을 펴내서 파문을 일으켰다. 2009년에 나온 이 책은 소송 과잉과 관료주의로 물든 미국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2000년 기준으로 미국의 변호사 숫자는 1970년에 비해 두 배가 되었다. 변호사가 널려 있으니 소송이 대폭 증가해서 오늘날 미국인들은 '소송의 지뢰밭'에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은 더 이상 '자유와 선택의 땅'이 아니라 '법률의 질곡(桎梏)'이 되고 말았다. 지방정부는 혹시 있을 수 있는 사고로 손해배상소송의 대상이 될까 두려워서 어린이 놀이터와 비치를 폐쇄하고 있다. 제조회사가 낚시 미끼에 '삼키면 위험함' 같은 우스운 경고문을 부착하고, 의사가 필요치도 않은 비싼 검사를 하는 것도 모두 혹시 있을 수 있는 소송 때문이다.
소송 남용으로 인해 '위험을 택하는' 창의적인 문화가 위협받고 있고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 2002년 밀워키 시에서 마리아 레지오 소속의 자원봉사자가 마리아 상(橡)을 와병중인 신자에게 전달하러 차를 몰고 가던 중 교통사고를 내서 82세 노인이 불구가 된 일이 발생했다. 피해자 가족을 대리한 변호사는 돈이 많은 천주교 밀워키 교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서 1700만 달러 배상판결을 얻어냈다. 교구는 아무 잘못도 없이 막대한 배상을 하게 됐으니, 사정이 이러하다면 교회는 일체의 봉사행위를 중단해야 할 것이다.
2007년에 워싱턴 DC의 한 변호사는 한국인 이민자 가족이 운영하는 세탁소가 자기가 맡긴 바지 한 벌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세탁소 주인을 상대로 100만 달러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 변호사는 세탁소가 사기 마케팅을 했으며 잃어버린 바지를 입을 권리를 1200일간 박탈당했고, 다른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위해 매주 렌터카를 빌려야 했다는 이유를 댔다. 2년간 소송 끝에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지만 변호사 경비로 10만 달러를 써야 했던 세탁소 주인은 가게를 닫고 한국으로 돌아와버렸다.
오늘날 미국 공립학교에선 의욕적인 교사를 보기 어렵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관료적 규칙에 얽매여 있으니, 열성적인 교사들은 아예 교직을 떠나고 있다. 미국 공무원 조직은 관료주의와 무능으로 병들어 있다. 노조가 너무 강해서 가장 무능한 공무원을 파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폭설이 오면 폭설을 치워야 할 공무원들이 폭설 때문에 출근할 수 없다면서 결근을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연방정부는 1억 단어가 넘는 법률과 규칙에 의해서 크루즈 컨트롤 모드로 운항하고 있다. 정부 부채가 계속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 모드를 바꿀 방법이 없다. 워싱턴은 로비 집단과 노조 등 조직 단체가 좌지우지하고 있다. 공립학교는 교원노조, 직원노조, 교장협의체 등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한 집단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미국은 새 대륙에 온 사람들이 세운 공동체가 발전한 나라며, 훌륭한 리더가 이끌어온 나라였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 사회는 리더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 교사는 소신껏 수업을 이끌어갈 수 없으며, 법관은 터무니없는 소송을 기각할 수 있는 권한을 상실했다. 변호사와 법률이 넘쳐나는 미국은 공동체 정신과 창의성과 리더를 상실한 사회가 돼버렸다. 저자는 법률과잉과 관료주의를 씻어버리는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돈 < 중앙대 교수·법학 >
COPYRIGHT ⓒ 이상돈닷컴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