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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극단화와 타협이 사라진 정치

작성일 : 2020-10-10 08:37조회 : 1,619

이념 극단화와 타협이 사라진 정치

트럼프와 바이든 간의 대선후보 토론을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이가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트럼프라는 사람이 워낙 막가파이기 때문이겠지만, 트럼프 개인의 영역을 넘어서는 갈등이 미국 사회와 미국 정치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트럼프라는 사람 덕분에 이제 그러한 대결의 정치가 완화될 수 있다고 위안을 삼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희망적인 관측일 뿐입니다. 현실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나쁘기 때문입니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그나마 갈등을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지만 그 갈등의 뿌리는 이미 너무 깊습니다. 그리고 그 갈등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솔직히 아무도 모릅니다.

아래는 지난 2015년 4월 28일자 주간경향에 실린 서평입니다. 2012년에 출판된 책이니까, 8년이 지나서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고 해야 겠습니다. 처음에 인용한 대목은 주간경향 편집자가 뽑은 것인데,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정을 독단적으로 이끌고 간다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지금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도 똑 같이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 '이념 극단화와 타협이 사라진 정치', 오늘의 미국이고 또 오늘의 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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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의 책을 통해 세상읽기]정당의 이념 극단화, 타협이 사라진 정치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다른 경우에 강경파가 주도하는 의회 다수당이 국정을 극한대립으로 몰고가는 미국과 우리 현실에는 거리가 있다. 우리 경우는 청와대와 국회 다수당이 공고한 집권세력을 이루어서 국정을 독단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여야가 중요한 정치적 안건에 합의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시절은 3당 합당 전의 노태우 정부에서였다. 그럴 것이 당시는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이어서 여야 합의가 없이는 법안이나 예산 처리가 불가능했다. 그런 정국이었기에 정치가 기능을 했고 덕분에 5공 청문회도 가능했었다.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는 워낙 정치를 잘 아는 대통령이 이끌었던 까닭에 집권 여당은 독주(獨走)하지 않았다.

문제는 차떼기 역풍이 불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실패하면서 열린우리당이 국회 다수석을 차지하고 나서부터였다. 이념에 경도된 노무현 정권의 독선은 결국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두는 결과로 나타났다. ‘실용’을 내세웠던 이명박 정권은 임기 내내 민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독한 독주로 일관했다.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하고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사정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제는 원천적으로 대통령이 독주하는 체제인가?

대화와 협력이 줄어드는 미국 정치

교과서적인 답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제를 처음 채택한 미국 헌법은 다수지배 원칙이 아니라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다수지배 하에서는 각 정당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게 되고 소수당의 목소리는 묻혀 버리며, 소수당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할 기회는 총선을 통해 집권당이 되는 길뿐이다. 대통령제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같은 소속이 아닌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이런 경우에도 대통령과 의회는 대화하고 협력을 하는 게 통상적이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당이라고 해서 마냥 대립만 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제 국가의 의원들은 의원내각제 국가의 의원들보다 훨씬 독자적이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 상대방 정당에 동조하기도 한다. 이런 것이 미국 정치의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하지만 요즘 미국 정치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과거에는 미국 북동부에는 진보 성향의 공화당 의원이 있었고 남부에는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공화당은 모두 보수 성향이고 민주당은 모두 진보 성향일 뿐더러 각각의 성향이 갈수록 극단화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쟁점이나 현안에 대한 대화와 타협이 어려운 실정이다. 정해진 시한 내에 의회가 예산을 통과시키지 못해서 정부가 문을 닫는 상황마저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이 개선되기는커녕 악화하고 있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난 2012년 출간되어 주목을 받은 이 책 <보이는 것보다도 더 나쁘다>(It‘s Even Worse than It Looks)의 공저자 토머스 만은 브루킹스 연구소의 연구위원이며, 노먼 온스타인은 미국기업연구소(AEI)의 연구위원이다. 브루킹스 연구소는 진보 성향이고 미국기업연구소는 보수 성향이기 때문에 두 사람은 정책적 이슈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지만 이처럼 극단화되어 가는 미국 정치의 양상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데는 의견의 일치를 보아서 이 책을 펴낸 것이다.

저자들은 오늘날 미국 정치가 극단화한 주된 책임은 일단 공화당이라고 본다. 오늘날의 공화당은 이념적으로 극단적이고, 전통적인 사회·경제적 정책 레짐을 경멸하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정치세력을 무시하는 아웃라이어가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정당이 중간에서 심히 이탈하면 국가적으로 긴급한 문제를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런 현상이야말로 미국 정치가 안고 있는 큰 문제인데,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정부 자체가 기능장애에 빠지고 만다고 경고한다.

대립의 일상화 정부 기능장애 초래

저자들은 2010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해서 의회 권력을 장악한 후에 벌어진 일을 보고 이 책을 펴냈다. 민주당 집권 2년 만에 치른 중간선거에서 대승한 공화당은 오바마 정부에 대해 연방정부 부채 상한을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공화당은 타협을 거부하고 백악관을 낭떠러지 끝까지 몰고 가는 전략을 구사했다. 상원에서 공화당은 기회만 있으면 필리버스터를 이용해서 민주당이 주도한 안건 통과를 무산시키는 전략을 동원했다. 공화당 내에서 새로 등장한 강경파 의원들의 영향이 커졌고, 이로 인해 존 보이너 하원 의장은 백악관을 상대로 한 협상력을 상실했다. 저자들은 이것이야말로 일종의 ‘인질 정치’라고 질타한다.

오늘날의 공화당은 공화당원들이 내세우는 보수의 아이콘인 로널드 레이건의 보수주의와 거리가 멀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레이건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내걸고 당선됐지만 실제로는 유연한 정책을 폈고, 당시 의회 다수당이던 민주당과 대화로 정국을 이끌어갔다. 레이건의 뒤를 이은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은 재정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증세를 했다.

공화당이 갖고 있는 문제가 심각하지만 민주당도 비슷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온건실용파가 설 땅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승자독식(勝者獨食) 효과를 가져 오는 현행 소선구제의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비례대표제를 가미하고, 캘리포니아 등 몇 개 주가 도입한 결선투표식 예비선거(톱투 프라이머리)를 도입하면 강경파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한다.

저자들이 주로 문제로 삼은 것은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다른 경우에 강경파가 주도하는 의회 다수당이 국정을 극한대립으로 몰고가는 현실이다. 대통령이 속한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른 ‘분리된 정부(divided government)’에서도 과거에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었는데 근래에는 정당이 이념적으로 양극화된 탓에 갈등과 대립이 일상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들이 제기한 문제는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우리 경우는 청와대와 국회 다수당이 공고한 집권세력을 이루어서 국정을 독단적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2012년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예상을 깨고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오늘날 같은 난맥상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한다. 지금이 여소야대 정국이었더라면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각 정당이 이념적 극단화로 치닫는다면 상황이 대단히 심각해진다는 저자들의 경고를 특히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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