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버몬트 Vermont
2020-10-11 20:36 11 이상돈


버몬트 Vermont


버몬트 주가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미국의 많은 곳을 가보았지만, 아직 가보지 못한 지역이 북동부 끝인 메인, 뉴햄프셔, 버몬트, 그리고 광활한 와이오밍, 몬태나, 사우스/노스 다코다다. 이런 곳은 웬만해선 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

뉴욕 주와 뉴햄프셔 주 사이에 끼어 있고 북으로는 캐나다 퀘벡과 붙어 있는 버몬트 주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흥미로운 곳이다. 미국 50개 주 중 면적이 작기로 여섯 번째다. 로드아일랜드, 델라웨어, 코네티컷, 하와이, 뉴저지 다음으로 작은 버몬트는 육지 면적이 23,957Km2이다. 인구는 62만 5천명 수준으로 와이오밍 다음으로 가장 인구가 적은 주이다. GDP 총생산량으로 순위를 매기면 50개 주 중에서 꼴찌이고, 막강한 워싱턴 DC는 물론이고 푸에르토 리코 보다도 작다. 1인당 소득은 50개 주 중 30위 안팎을 오르내리니까 그리 나쁜 편은 아니다.

버몬트 주의 주도는 몬트펠리어 Montpelier 시로, 인구는 대략 7,500명이고, 가장 큰 도시는 벌링턴 Burlington으로 인구는 43,000명 정도다. 주민 대부분이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평화롭게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운다고 보면 된다. 버몬트는 이웃한 뉴햄프셔, 메인 주와 함께 '가장 하얀 주(州)' whitest state에 속한다. 버몬트 인구 중 백인이 94%, 흑인이 2%, 아시아계가 2%, 히스패닉이 2%를 차지한다. 온통 백인만 보이는 이런 지역을 가면 마치 북유럽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니, 다인종 multi-racial 사회인 뉴욕 캘리포니아 등 대부분 미국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이런 이유에서 예비선거를 가장 먼저 치르는 뉴햄프셔 프라이머리가 미국 평균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버니 샌더스가 뉴햄프셔에서 선두를 달린 것은 버몬트가 바로 이웃이고 인종별 인구 비율도 비슷하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늘지 않아서 타주에서 버몬트 대학으로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졸업한 후에 그대로 눌러 앉도록 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몬태나 와이오밍 유타 등에서도 하고 있지만 별로 성공적이지 않고, 거기서 태어난 젊은이들조차 대도시로 나가려고 하는 게 현실이다.)

버몬트는 여러 면에서 최초 기록을 갖고 있다. 1880년에 주 선거에서 미국 최초로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연방 차원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된 것은 1920년이니까 40년을 앞섰다. 버몬트는 먼저 헌법을 만들어서 독립국가를 선포한 후에 미국에 14번째 주(州)로 편입이 됐는데, 자신들의 헌법에서 재산 소유와 무관하게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노예를 금지했다. 재산 소유와 관계없이 모든 성인 남성에게 투표권을 인정하고 노예를 금지한 주는 버몬트가 최초다. 2000년에는 미국 50개 주 중 최초로 동성간 결혼 civil union을 인정했다.

버몬트 주는 또 다른 기록도 갖고 있다. 전체 주민 중 동성애자 LGBT가 5%를 넘어서 50개 주 중 최고 수준이다. 마리화나 등 연성마약을 일찍이 합법화해서 그런지 어떤지, 마약 중독 치료자 숫자도 인구 대비하면 가장 높다고 한다. 이혼율은 미국 50개 주 중 상위 5위에 들어간다. 교회에 나가는 인구도 인구 대비로 볼 때 매우 적어서, 교회를 나가지 않는 주(州)로 랭킹을 만들면 최상위권에 속할 것이라 한다. 이런 점에서 버몬트는 북유럽이나 국경 너머 캐나다 퀘벡과 공통점이 많다고 하겠다.

미국은 필라델피아 회의에 참가한 13개 주가 세운 나라인데, 버몬트는 독립전쟁이 끝나고 헌법이 제정된 후인 1791년에 14번째 주로 미 합중국의 일원이 됐다. ‘버몬트’라는 명칭은 그곳에 있는 그린 마운틴이 불어로 ‘베르 몽’이었는데, 그것이 영어식으로 버몬트로 굳어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북쪽에 이어져 있는 캐나다 퀘벡과 마찬가지로 프랑스계 주민이 많았던 것이다. 지리적으로도 버몬트에선 뉴욕 보스턴 보다 몬트리올이 가깝다.

버몬트는 1777년에 버몬트 공화국 The Republic of Vermont으로 독립을 했는데, 경계 분쟁이 있던 뉴햄프셔와 뉴욕이 반대해서 대륙회의에 참여하지 못하자 일단 자기들끼리 헌법을 만들고 독립을 선포하고,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이 된 후에 뉴햄프셔 및 뉴욕과 경계 분쟁을 해결하고 미국의 14번째 주가 되었다. 어떤 학자는 버몬트가 일단 독립을 한 이유는 보다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기 위함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미국 독립전쟁 때는 가구점 이름으로 유명한 이턴 앨런 Ethan Allen이 이끄는 버몬트 민병대가 영국군에 대항해서 열심히 싸워서 사라토가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데 기여했다. 프랑스계 주민이 많으니까 영국군과 싸우는데 문제가 없었을 듯하다. 버몬트처럼 일단 독립국가가 된 후에 미국에 주(州)로 가입한 경우로는 텍사스, 캘리포니아 그리고 하와이가 있다. (계속)

* 버몬트의 그린 마운틴은 애팔라치아 트레일의 북쪽 끝이다. 버몬트는 초가을 단풍으로도 유명하다.


버몬트 정치 Vermont Politics 
버니 샌더스 (1941 - )